법정著, 박성직엮음, 열림원刊
1955년 전남대 3학년 휴학 중이던 박재철(법정스님)은 출가를 결심하고 홀연히 길을 떠난다. 부모자식 간의 연과 형제자매의 인정을 등진 그 마음이 얼마나 비통하고 비장했을까. 그 후 그는 사촌동생 박성직에게 편지를 보내와 고향 소식과 가족의 안부를 묻고는 했다. 다른 가족에게는 비밀에 부칠 것을 당부하면서.
이 책은 1955년부터 1970년까지 법정이 박성직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것이다. 편지에는 청년 박재철이 승려 법정으로 변해가는 모습과 수려한 수필들의 모티브가 된 에피소드와 일상의 깨달음들이 새겨져 있다.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고난을 겪은 사람은 행복하게만 사는 사람보다 훨씬 인생에 대해서 경험이 많아 자신이 생기고 또한 생활에 대한 저항력도 길러지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인생에 대해서 심각하게 체험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위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할 말이 실로 많으나 한이 없겠기로 줄인다. 항상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하여라.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반복되는 일상 속의 위대함을 보아라
반복되는 생활에서 어떤 위대한 것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상황이라고 해서 조금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새로워야 하고, 또 오늘보다 내일은 한 걸음 앞서야 되는 것이다. 여기에 훌륭한 삶의 보람이 있고 인간 성장이 있는 것이다. 저 하늘의 태양을 보아라. 흐린 날에도 제 갈 길을 꾸준히 가고 있는 그 위대한 모습을!
세상일이라는 게 다 한바탕 꿈
방학에 집에 내려가거들랑 할머님, 아버님, 어머님, 동생들께 내 대신 무슨 일이고 도와드려라. 세상일이라는 게 다 한바탕 꿈처럼 허무하니라. 한데 모여 있을 동안이라도 서로 돕고 아름답게 살아야 할 것이니라.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그저 먼 날에 죽어 버렸거니 생각하여라. 실은 죽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편지는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안 하는 것이 좋다. 이곳 여러 스님네들이 덜 좋아할 뿐 아니라 공부에 방해가 되니까....
맹목적인 신앙은 미신보다 더 한 것
자기가 현재 겪고 있는 운명에 대해서 스스로 위안하는 철학을 갖는 것도 현명한 생활 태도일지 모른다. 말하자면 나는 이처럼 인생에 대해서 남이 겪지 못한 풍부한 체험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말이다. 그런 때 나는 베토벤에게서 혹은 그 밖의 훌륭한 인격들의 생애에서 위안들을 받곤 했었다.
사람은 종교적인 생활을 가져야 할 것이다. 거기에서 생활의 정화가 올 것이기에, 어릴 적부터 기독교와 너는 인연이 깊었으니까. 아무것도 신앙하지 않는 것보다는 얼마나 장한 일이냐 영세를 받아도 좋고, 세례를 받아도 좋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이 우주 주인은 항상 ‘나’라는 걸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아무 비판 정신도 없는 맹목적인 신앙은 인간 성장에 오히려 큰 해독을 끼칠 우려성이 없지도 않은 것이다. 모든 것은, 어떤 신격화 혹은 인격화된 대상에서가 아니고,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걸 잊지 말아라. 이런 태도가 없는 맹목적인 신앙은 미신보다 더 한 것이다.
울지 마라, 울지를 마라
죽는다는 건, 죽는다는 건 이 지상을 유지하던 하나의 의식이 꺼져버리는 것, 촛불처럼 꺼져 버리는 것, 아! 이것은 해결이 아니다. 다만 중단일 뿐. 울지 마라, 울지를 마라. 몇백 번 상하고 다치면서 괴롭고 절망하고 울부짖는 동안에 인간은 자란다. 자라면서 모든 것을 얻고 또 잃어버리고 그러는 동안에 인생을 알게 된다.
울지 마라. 행복은 사금처럼 가벼이 날아가 버리지만 불행은 두고두고 네 마음속에서 인생의 문을 열어 주는 귀한 열쇠가 되리라. 부디 불행에 굽히지 말고 살아라.
내가 나를 키워나가야 한다
너에게 형으로서 유산을 또는 생활신조를 주고 싶다. “진실하라.”는 것이다. 일체의 생활에서 “진실”이면 통한다. 설사 눈앞에 손해 볼 일이라 할지라도 진실이면 그만이다. 결코 거짓된 것과 비굴에 타협하지 말아라. 가령 연애에도 진실이 아니면 그건 죄악이다. 무슨 일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하여라. 여기 비로소 인간 성장의 싹이 틀 것이다. 내가 나를 키워나가야 한다. 깊이 명심하고 실행하여라.
우리는 얼마나 여물었는지
날로 짙어가는 산색을 바라보며 산승은 가을하고 있다. 건강하게. 어떤 위기에 있더라도 사람으로서 성실을 다할 것이며 내가 나를 키워가야 할 것이다. 먹고 산다는 이 엄숙한 사실 앞에서 직업의 귀천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이 수확의 계절에 우리들은 또 얼마나 여물었는지
오늘은 법당에 들어가서 많이 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오늘 오후에야 받아보았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데 요즘의 내 건강과 주위의 여러 가지 형편이 나를 부자유하게 만들고 있다. 이 세상에서 내게 가장 은혜로운 분은 작은아버지가 나를 교육시켜 눈을 띄워 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할머님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오늘은 법당에 들어가서 많이 울었다.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세월을 덧없이 흘려보내고 있다는 말이 더 적절할 듯싶다. 잠시도 멈추지 않고 밤낮으로 흘러가는 저 개울물 소리에 귀를 모으고 있으면 아하 저게 바로 세월이 지나가는 소리로구나 하고 되새기게 된다. - “산방한담” ‘가을이 불어오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