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
저자는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행복의 과학’이라는 강의는 ‘이 수업을 들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경고에도 수강대기자가 700명이 넘는다. 동양고전만 읽다보니 ‘행복은 마음’이라는 등식이 자리 잡았으나, ‘행복의 과학’이라는 새로운 주장에 정립된 ‘사고의 틀’이 흔들릴까 우려하며 책을 집어 들었다. 어차피 인생이란 행복을 추구하며 살다가 죽는 것이기에 혹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지 않나 하는 몹쓸 호기심이 작동했다.
서문
방글라데시가 매우 행복한 국가라는 언론보도는 학계의 결론과 다르다. 이 책은 흥미나 과장된 행복보다 행복의 적나라한, 사실적인 측면에 더 많은 관심 있는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행복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최초로 시작한 에드 디너 교수의 연구실로 유학 간 이후 반평생을 행복에 대해 읽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더 행복해지지 않았으므로 내 생각이 맞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의 내용은 과학적 연구에 기초한 것임을 알려둔다.
이 책은 행복을 소재로 한 다른 책과 세 가지 점에서 다르다.
첫째, 이 책의 핵심 질문은 ‘why'이다. 다른 책들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 지나? 'how'를 말하나 이 책은 '왜 인간은 행복이라는 경험을 할까? 이 경험이 갖고 있는 본질적 역할은 무엇일까?'를 묻는다. 이 중요한 속성을 이해하기 전에는 행복의 비결이나 기술을 찾는 것은 한계가 있다. 역으로 본질적 모습을 이해하면 행복은 단순한 현상임을 알게 된다. 똑똑한 현대인들의 실수는 그 단순성을 외면하며 돈 벌고 출세하는데 삶을 바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이 어제보다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의 본성과 궁합이 맞지 않는 삶이기 때문이다.
둘째, 행복의 이성적인 면보다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면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셋째, 행복이 궁극적 목적이라는 철학자들의 통상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일상의 노력은 삶의 최종 이유인 행복을 달성하는 과정이라 하지만 이는 극히 인간중심적 사고의 산물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 법칙의 유일한 주제는 생존이다. 행복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다시 말하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chapter1 행복은 생각인가
무의식적이고 동물적인 ‘본능’과 의식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은 평생 동안 충돌한다. 미운 시누이에게 한방 날리고 싶지만 참았으니 ’이성‘의 辛勝, 다이어트를 결심했으나 늦은 밤, 라면과 공깃밥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본능‘의 壓勝이다. 아직까지의 심리학은 ’이성적‘이어서 행복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경험인데 마치 머리에서 만들어내는 일종의 생각 혹은 가치라는 착각이 들게 했다.
불행한 사람은 긍정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본질적으로 ‘생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각만 고치라고 조언하고 있는데 생각을 바꾼다고 행복해질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행복은 사람 안에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경험이고 생각은 그 특성 중 극히 일부이다. 사실 인간의 모든 경험은 뇌에서 만들어지는 마법 같은 ‘쇼’라 할 수 있다. 빨간 사과, 사과 표면에 반사된 빛의 파장이 시각세포를 흥분시켜 신경반응이 뇌에서 ‘빨갛다’는 경험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용돈 받고 즐거워할 때 느끼는 행복역시 돈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돈이라는 자극이 뇌의 특정부분을 흥분시켜 ‘좋다’라는 경험을 합성해 내는 것으로 돈은 무조건 누구에게나 행복감을 일으키지 않는다. 색깔을 지각하는 것보다 복잡 미묘한 경험이 행복이다.
이성적으로 통제된 행위가 본능적 요구보다 무조건 좋고 바람직한 것인가? 교육을 통해 학습된 잣대로 본다면 동물적 모습보다 합리적 통제가 좋아 보이나 사회적 가치는 불변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 다수의 의견일 뿐이다. 그것은 문화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가치가 아닌 생존에 기여하는 정도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생사를 좌우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성적이 될까 아니면 더 본능적인 모습이 튀어나올까? 이성의 통제가 항상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면 인간은 극한위험 하에서도 합리적으로 진화했을 것이나 그렇지 않다. 1977년 스페인령 캐너리군도의 작은 섬에서 두 대의 비행기가 충돌해 583명의 사상자를 냈다. 상공이 아닌 활주로 사고였고 충돌 후 수십 분이 지나 폭발했으므로 탈출기회도 있었으나 승객들은 정반대로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언다, freezing'라고 표현하는데 포식자 앞에서 일시적으로 얼어버리는 것이 동물 본능중의 하나다. 오랜 시간동안 생존에 도움이 되었던 습성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생존의 위협을 느끼면 더욱 동물스러워 진다. 이성적 사고를 하는 것은 인간의 탁월한 능력이나 그 역할이 생각만큼 절대적이지 않다. 이성을 과대평가하고 본능을 과소평가하며 살고 있다.
chapter2 인간은 100% 동물이다
입시, 승진, 전철의 빈자리 하나, 무엇이나 자리보다 사람이 많으면 경쟁은 불가피하나 일상의 경쟁은 ‘생존’을 위한 자연의 경쟁 앞에서는 시시해진다. 대학간판을 놓고 벌이는 경쟁과 생명을 건 싸움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수십 마리가 모여 사는 침팬지는 몇 마리 권력층이 암컷을 독차지하고 대다수의 수컷은 짝짓기 한번 못하고 대장에 도전하는 수컷은 죽는다. 인간도 이와 비슷했으며 여자비율이 높았다. 성비의 불균형 때문에 남녀 기질차이가 발생한다. 여자는 특별한 노력 없이 엄마가 될 수 있었으니 안정적 전략을 택하는 것이 유리했고 남자는 최고가 되지 못하면 짝짓기에서 낙오되니 매사 ‘모’아니면 ‘도’의 극단적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남자들은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조그마한 골프공을 김 부장보다 5m 더 보내기 위해 쇠막대를 5천 번 더 흔드는 것이 남자다.
우리의 뇌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살벌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일종의 ‘생존지침서’다. 사자는 피하고 믿을만한 녀석과는 고기를 나눠먹는 등의 깨알 같은 생존 팁들이 유전적 정보로 담겨있다. 유전적 정보는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손가락은 다섯 개, 추우면 몸이 떨리고, 이성을 보면 정신을 쏟도록 자동 실행된다. 지방이나 단것을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21세기 세상과는 맞지 않는 습성도 있는데 이는 우리에게 긴요했던 생존 장치가 문명의 변화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600만 년간 유전자에 새겨진 생존정보가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 인간은 여전히 100% 동물이다.
동물스러움을 엿볼 수 있는 연구를 소개한다. 근친관계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유발해 혈통이 끊어지게 되므로 진화과정에서 근친관계를 방지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였고 동물들은 ‘근친 감시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스라엘 키부츠에서는 형제 아닌 남녀가 어릴 때부터 함께 생활하지만 성인이 되어 서로 결혼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는 ‘너희는 너무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어, 수상해’라는 경고등이 켜지면서 성적매력이 억제되기 때문이다. 돌 대신 돈을 들었을 뿐 구석기시대의 수컷과 무엇이 다를까 하지만 이런 동물적 모습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가임기여성이 아버지를 피하고, 다른 남자들이 등장하면 무리하게 카드를 긁는 남자들, 우리는 동물과 다르게 기품 있는 존재라며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반신반의 했으나 논문과 책을 읽어볼수록 인간은 지능이 높을 뿐 타조나 숭어나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100% 동물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 새로운 시각은 지난 20년간 공부해온 행복에 대한 근본적 생각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러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인간도 동물인데 이 동물은 왜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