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n빵' 하는 개인주의가 낯설기만 하다.
바람직한 사회 질서 또는 사는 모습이란 개인별로 다를 수밖에 없으나 기본적인 바탕은 서로 돕고, 양보하고 배려하며 역지사지하는 모습이 아닐까 한다. 예전에는 鄕約(향약)과 두레가 사회적 규범과 질서를 지키는 장치였기에 역지사지가 강제화된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향약의 규약은 지방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기본 덕목은 같았다. 유교를 바탕으로 한 德業相勸(덕업상권: 좋은 일은 서로 권한다.), 過失相規(과실상규: 잘못됨은 서로 꾸짖는다.), 禮俗相交(예속상교: 예의바른 풍속으로 서로 교제한다), 患難相恤(환난상휼: 어려운 일은 서로 돕는다.)의 기본 덕목은 마을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했다.
세부적으로 ‘상을 당한 집이 가난하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재물로 도와준다.’, ‘가난을 참고 분수를 지키는 자가 있다면 재물로 도와준다.’라는 扶助(부조)의 규약이 있었다. ‘상죄에 해당하는 부모에게 불순한 자, 양반을 능욕한 자는 관청에 알려 죄를 다스리고 교제를 끊는다.’, ‘중죄에 해당하는 친척끼리 화목하지 않을 때는 향약에서 제적하고 나이대접을 하지 않는다.’ 등의 벌칙 규약을 두었다. 여기에서 중죄에 해당하는 처벌 즉 향약에서 제적하고 나이대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요즘 말로 하면 ‘왕따’를 말하는 것이며 사회적 고립에 해당하는 아주 강력한 벌칙이므로 마을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된다.
나라가 하지 못하면 마을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재난, 질병, 가난, 상사에 대처하고 과부, 고아나 약자가 있다면 재물로 돕거나 후견인을 두어 도와주고, 미풍양속을 해치는 자는 사람 취급을 하지 않음으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향약의 목적이었다. 유교에서 말하는 大同 社會(대동사회)는 사회구성원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약자의 복지가 구현되는 사회를 말하는 것으로 향약은 이러한 이상사회를 추구했다. 베이비 부머들은 향약의 규칙 하에 살지 않았더라도 유교적 사고의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기에 딸아이가 친구들과 치킨과 맥주 한잔 마시고 더치페이로 계산하는, 소위 ‘n빵' 하는 개인주의가 낯설기만 하다.
최근 후배 간부들이 털어놓는 고민의 상당 부분은 조직에 만연된 개인주의와 관련된 사항이다. ‘급한 일이 있는데도 시간외근무를 하지 않으려 하고, 회사업무보다 개인 업무를 중요시해요. 상무님 모시고 일했을 때는 서로 간에 개인적인 고민거리도 털어놓았고 내 업무량이 많으면 동료들이 남아 같이 일하고 집에 가면서 막걸리도 한잔했었는데 그런 풍경들이 사라져 가요. 도우려 해도 상대방이 좋아하지도 않고 예전과 달리 출장을 다녀와도 호두과자 사 오는 사람도 드물어요. 손바닥도 마주쳐야 하는데 특정인만 시간외근무를 하고, 먹을 것을 사 오다 보니 손해 본다는 느낌에 모두 개인주의자가 돼가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정도 차이는 있겠으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같은 문제다. 시간외근무를 예로 들어보면 선배는 의무로 생각하는 반면, 후배는 18시에 의무가 종료되었다고 생각하니 좀처럼 접점을 찾기 어렵고 생각과 이야기가 겉돌게 된다. 이렇게 선배와 후배, 구세대와 신세대 그리고 끼인 세대, ‘n빵' 하는 아이들이 결혼하면 아이들과 빚어지는 세대 간 벌어지는 문제는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후배의 고민거리는 인류가 멸종되어야만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되나 완전해결은 불가능해도 서로 고민해야만 차이의 간극을 좁힐 수 있다.
후배 고민은 요즘 세태의 일반적 현상이기에 특정인과 특정조직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에 대한 현상일 수 있기에 반대 관점에서 보면 전혀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회식 안 하고, 호두과자 사 오지 않으며 나눠 먹지 않는다고 회사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급한 업무가 있더라도 더욱 급한 개인사가 있다면 당연히 퇴근해야 한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조직문화를 모든 직원이 원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며 생산성 향상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관리자는 인간관계 보다 업무 스케쥴관리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구성원간 상호작용 없이 조직에서 배제된 개인은 존재하기 어렵다. 인간이 태어나 가족관계를 구성해야 하나 인정받지 못한다면…. 이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친구, 학교,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면…. 이것 역시 생존하지 못한다. 이런 측면에서 조선 시대 향약의 규약에서 ‘제적하고 나이대접을 하지 않는 벌칙’은 매우 가혹하고 비인간적인 벌칙이었다.
사회적 동물이란 뜻은 구성원간 상호작용으로 창의, 협력을 끌어내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물이란 뜻도 포함되어 있다. 당연히 조직의 관리자는 ‘창의와 협력을 끌어내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하므로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당연하다. 구성원들도 개인주의가 팽배한 조직에서의 삶이 행복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선택해야 한다.
후배에게 이야기했다. ‘먼저 조직 분위기를 새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관리자가 부임하면 조직원들은 긴장하지만, 악을 써가며 독려한다 해도 약효는 6개월을 넘기기 어렵다. 사기업이면 가능한 측면도 있을 수 있으나 공기업은 해고가 쉽지 않으니 CEO의 강력한 드라이브도 구성원들 마음을 움직이기 전에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처음에는 군기잡고 잔소리해야 높은 성과를 내는 것이 확실하나 어떻게 지속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성과보다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을 우선시한 집단은 처음부터 높은 성과를 내기 어렵지만 자유로운 토론, 협업으로 창의성과 시너지효과를 창출하기 시작한다. 경험상 인간관계를 중시한 집단은 6개월 정도 지나면 성과, 효율 측면에서 골든 크로스(Golden Cross) 현상이 나타나고 개인주의 집단은 이후 영원토록 인간관계를 돈독히 한 집단을 이길 수 없다.’
한 달 전 소개한 재일 정치학자 강상중의 말이 아직 가슴에 남아있다. 사람들은 ‘일’하면 ‘월급노동자’를 떠올려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는 거죠. 그럼 돈이란 무엇인가? 일본 대지진 때는 돈이 있어도 생수한 병 사 먹을 수 없었어요. 그때는 서로 돕는 네트워크 즉 사회관계 자본이 돈보다 중요했어요. 머지않아 앞으로의 사회도 사람들은 점점 더 월급이 아닌 사회관계로 만족을 주는 회사와 일을 찾게 될 거예요. 사회관계 자본이 돈과 상품 경제보다 중요한 시기가 온다는 거지요. 행복과 풍요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어 500만엔 월급쟁이가 200만 엔 월급쟁이보다 행복할 거라는 단순비교 시대는 끝났습니다.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김지수 인터뷰, a certain book 刊)
서로 돕는 네트워크 즉 사회관계 자본이란 것이 향약의 기본정신이자 대동사회가 추구했던 이상향의 토대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조직 문화 모습이기도 하고요.
개인주의의 반대개념을 집단주의라고 할 때 집단주의자들인 선배와 간부들은 ‘n빵'에 익숙한 개인주의자들인 후배와 공통분모를 만들어가야 한다. 공통의 가치와 행복을…. 단, 양보, 배려, 역지사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