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버릇 개 못주고, 세 살 버릇 여든까지
우연히, 그리고 느지막한 나이에 인성이 개인의 역량과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검사를 받게 되었다. 공기업 임원이 되기 위한 예비고사인 역량평가를 받기 전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검사였다. 내 자신에게조차 만족스럽지 못한 성격이 있어 수년간 고치려 노력 했고 오랜만에 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기에 역량평가 합부결과보다 인성검사 결과가 더욱 궁금했다. 검사는 온라인으로 치렀고 며칠 후 결과를 받아보았다.
결론은 제 버릇 개 못주고,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며, 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물론 검사결과 ‘극히 낮고 극히 높음’이 반드시 나쁘고, 좋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지만 모집단의 평균 범위를 벗어난 항목이 더 많았다. 극히 낮고 극히 높음이 반드시 나쁘고, 좋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지만 평균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은 모집단에 비해 돌출되게 원만한 인성이 아니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인성이 원만하지 않다고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다.)
검사 결과 ‘객관적인 사고, 신중성, 현실적 사고, 다중 업무수행기피, 엄격한 자기통제, 타인에 대한 긍정적 시각, 통찰력, 성찰력, 세밀한 업무선호’는 정상범위를 초과하여 아주 높았다. ‘자기주장과 사회성’은 정상범위를 초과하여 아주 낮았다. ‘업무수행속도, 자기주도 업무수행, 자율적 업무선호, 인내심, 호감에 대한 욕구, 체계적 업무수행의 정도’는 보통수준이었다.
이야기했듯 매우 높은 항목 중 ‘객관적 사고’를 예로 든다면, 제3자적 판단을 요하는 사안인 경우에는 장점이 되지만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에는 타인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기에 시간이 소요되니 단점이 된다. 너무 낮게 평가된 항목들도 자기주장이 약하니 타인과의 원만한 관계유지나 폭 넓은 의견수렴에는 장점으로 작용하나 자기주장을 관철해야 하는 경우에는 타인을 설득하는데 주저하게 되는 약점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아주 높은 항목과 아주 낮은 항목들은 상호 연관성도 갖고 있다.
물론 인성 검사결과는 실제와는 다를 수 있다. 피검사자의 배경, 훈련, 기술적 숙련이나 경험을 고려한 것이 아니기에 타인이 보는 시각과 내가 나를 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다. 비슷한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페르소나(Persona: 가면을 쓴 인격)’라고 한다. 진정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투사된 모습은 내가 나를 보는 모습과 다른 거짓된 나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더 화려한 나를 보여주길 원한다.
사내에서 내 별명은 ‘개작두’로 물갈이와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잘한다고 부쳐진 별명이다. 별명인 ‘개작두’와 인성검사 결과인 ‘극히 낮은 자기주장’과 ‘극히 높은 타인에 대한 긍정적 시각, 업무 신중성’과는 배치된다. 매우 신중하고 극히 높은 타인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갖고 있으며 극히 낮은 자기주장을 하는 관리자가 어떻게 소속 직원들에 대한 구조조정을 잘 할 수 있을까?
업무환경과 인성검사 결과를 대입해 보면 문제 조직을 많이 담당했기에 조직이 처한 상황과 원인에 대해 신중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분석하여 현실을 바라보고 미래를 통찰하는 능력이 후천적으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물갈이 대상도 전출하는 직원들의 앞날에 도움이 될 것인지 신중히 고민한 후 선발하는 것은 어쩌면 타인에 대한 긍정적 시각이 있는 것이나 물갈이 당하는 입장에서는 악어의 눈물이라 치부할 것이다. 일을 벌이기 전에는 좌고우면하나 결정된 이후에는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것을 보면 혹시 나에게 인성검사에도 나타나지 않는 페르소나가 있는 것인지 모른다.
내게 페르소나가 존재하는지 확실치 않지만 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 만족한다. 또한, 정상범위내의 항목보다 정상범위를 초과하는 항목이 많았지만 인성검사 결과도 신뢰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정상범위를 초과하여 아주 낮았던 ‘자기주장과 사회성’은 내 자신도 불만이었던 인성으로 이를 고치려 나름 노력했었다. 이미지 변신을 위해 근무처를 옮기기도 했고 처음 만나는 사외 사람들에게는 사교성이 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모임을 주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와 상황이 행복으로 다가오지 않고 피곤함으로 느껴졌기에 사회성이 없다는 인성검사 결과를 100% 신뢰한다.
제 버릇 개 못줬고, 세 살 버릇 예순까지 갖고 왔고, 타고난 인성은 바뀌지 않는다 했으니 비정상적으로 높거나 낮은 인성요소들과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야 할 것 같다. 극히 높은 ‘객관적인 사고, 신중성, 현실적 사고, 다중 업무수행기피, 엄격한 자기통제, 타인에 대한 긍정적 시각, 통찰력, 성찰력, 세밀한 업무선호’요소들을 어떻게 통제하고 관리할 것인가? 극히 낮은 ‘자기주장과 사회성’을 어떻게 북돋을 것인가? 생각날 때마다 조심하겠지만 의식적으로 뜯어고치려 고민하지는 않으려 한다.
인성검사결과는 믿을만한 사람에게만 공개하라 했는데 모두에게 치부를 드러냈다. 혹시 내가 극히 높고/극히 낮은 언행을 하게 되면 옆에서 견제해 달라고, 아울러 반대의 모습을 봤지만 바람직한 언행이었다면 페르소나가 내게 잘 어울린다며 립 서비스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