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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Jun 11. 2022

546. 당신의 버킷리스트에는 무엇이 적혀 있습니까?

원고 청탁 받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 강의도 마찬가지

모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에너지CEO과정”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각계각층 인사들이 모여 공부하고 교류한다. 나는 벌써 5년 전 1기로 졸업한 학생인데 작년, 주임교수님 전화를 받았다.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참석하는 에너지CEO포럼 특강을 해달라는 부탁 말씀이시나 이것은 부탁이 아닌 지시였다. 주임교수님은 나이든 학생들 사이에서 敎授님이 아닌 敎主님으로 불리는 분으로 지시를 거역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갖고 계시다. 머뭇거리며 지시를 받았지만 에너지CEO포럼에 참석하시는 분들은 에너지업계 임원, 회장님도 계시고 국회의원, 고위공직자도 계시니 강의 주제가 막막하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하다. 그래도 작년 연말에 특강하라는 것을 바쁘다는 핑계로 해를 넘겨 미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끄적거리면서도 부담감으로 인해 원고 청탁 받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 강의도 마찬가지로 내가 강단에 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사내에서도 먼저 나서는 경우가 없다. 아마도 교주님 전화가 아니었다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많았다. 우려했던 대로 교주님 전화받고 다음날부터 업무가 한가해지면 어떤 내용으로 강의할까? 고민했다. 교주님께서 강의 주제를 특정하지 않았으니, ‘아직까지의 업무 경험?’ 나보다 많은 일을 하셨던 선배님들도 계시므로 고민되는 부분이다. 

 며칠 고민 끝에 ‘내가 살아가는 잡스런 일상’과 관련된 내용으로 하기로 했다. 인생을 다시 돌아다 보게 된 계기와 모멘트, 늦은 사춘기를 거쳐 인생 후반부를 어떻게 살고 있는지? 에너지CEO포럼에 참여하시는 분들 모두 해당분야의 일가를 이룬 분들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연배도 고만고만해서 지난날의 고민도 비슷했을 가능성이 있고, 바빠서 고민을 하지 못한 분들이라면 언젠가는 해야 할 고민이기에 느지막하게 인문학 책을 읽으며 생각했던 인생관을 들려드려도 될듯했다. 人文이란 특정인이 살아온 발자취이며 살아갈 무늬이기에 다른 사람들 강의와 중복되는 일이 절대 없으니 업무경험상 Best Practice보다 좋은 주제일수 있다.


(강연 내용중 버킷리스트 부분만 요약하겠습니다.)

 전기공학을 전공한 기술자의 강연주제가 “늦은 思春期, 思秋期”라 생소한 느낌이 들지만 그렇다고 특이한 인생을 산 것은 아니며, 내놓고 자랑할 만한 삶을 산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공채 1기로 입사 후 남들처럼 열심히 일하다가 사 창립 최초의 강등도 당해봤고, 책상에 앉아 일하는 사람 최초로 회사 최고상을 받아봤으며, 좌천, 초고속 승진을 한 것은 베이비부머인 Fast Follow들이 겪었던 비슷한 인생경로였는지 모릅니다. 

 늦은 사춘기, 다른 분들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면 철이 늦게 들은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행복은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삶일까?’에 대해 40대 후반부터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답을 찾기 위해 수백 권의 책을 읽었지만 아직까지도 정답을 찾지 못하고 책 읽고 끄적거리는 삶을 살고 있지만 내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한 하나의 선택이었습니다.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 먹어야 할 100가지, 가봐야 할 100가지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것도 모두 따라하려면 시간과 열정이 필요한데 종국에는 ‘나는 무엇을 해야 행복할까?’로 귀결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늦은 사춘기 이후 죽기 전 해보고 싶은 것들, 즉 버킷리스트를 한줄 한줄 써 내려가고 있고 하나하나 실천하고 있습니다. 

 모질고 포기할 줄 모르는 성격 탓에 많이 쓰려하지는 않았습니다. 글쓰기를 시작해 회사 이름이 박힌 책을 한권 만드는 것이 버킷리스트의 한 줄인데 10년 넘게 공부해서 겨우 한권 만들어 냈습니다. 이렇게 달팽이 같은 속도로는 여러 개를 이루지 못하니 많이 쓰게 되면 숙제에 대한 압박감으로 행복하지 않을까봐 버킷리스트의 양이 적습니다. 아직도 손에 잡히지 않는 인문학 공부는 10년을 더 하기로 했고, 집사람과 외국에서 한 달 살아보기는 남아 있습니다. 통영, 남해, 여수의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 작은집에서 읽고, 쓰고, 낚시하고, 잠자고, 친구들과 막걸리 한잔하기로 한 버킷은 집사람의 반대로 에어비앤비를 통해 한달 살아보기로 규모를 축소했고요. 붕어 50Cm 잡기는 불가능할 것 같아도 지우지 않고 있습니다.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 지거든요. 


 ‘여러 선후배님들 버킷리스트에는 무엇이 적혀 있습니까?’ ‘어떻게 사시려 하십니까?’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아가실 겁니까?’ 저는 40대 후반까지 앞만 보며 뛰어오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남들처럼 똑같이 집사고 차사고 해외여행 갔지만 진정 나의 행복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았습니다.

 버킷리스트에는 여러분들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채워 넣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이, 가족들이 행복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누구를 위해 사냐 물으면 당연히 나를 위해 산다고 해야겠지요. 인생 전반부를 가족을 위해 살았다면 인생후반부는 나를 위해 살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퇴직이 내일모레인데 이 나이에 무슨 버킷리스트를?’하시면 나이에 지는 겁니다. 피터드러커, 김형석교수는 오히려 70대에 왕성한 저술할동을 하며 인생황금기를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김교수님은 1920년생입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바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제가 해보니 커다란 것보다 소소한 것을 적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작은 것은 성취해 나가는 재미가 쏠쏠한데 ‘사장이나 회장되기’이런 것은 죽을 때까지 많지 않거든요.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버킷리스트에 한 줄을 채우는 순간 그 꿈이 벌써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퇴직 전 회사 이름이 들어간 책 발간’, 쓰는 순간 저는 이미 등단의 길로 가고 있었고 10년 내 출간이 계획되어 착착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마침 오늘 출간되어 갖고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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