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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May 22. 2022

722.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고

거리두기가 완화되자 찾아오는 손님들이 늘었다.

 실내 마스크 착용은 지속되지만 거리두기가 해제되었다. 기억력도 노화되어 거리두기 해제가 몇 년 만의 조치인지도 가물가물하다. 퇴직 직전 거리두기 조치로 인해 숙소에서 격리생활을 했으니 2년은 훌쩍 넘어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코로나가 한창 위세를 펼칠 즈음 새로운 직장을 얻었으나 대면 협의해야 하는 업무는 진척도가 낮다. 다음 달이면 완화되고 좋아지겠거니 기대했으나 그렇게 달이 가고 해를 넘겼다. 새해 들어 감염자 수가 만 명을 넘어가자 긴장감이 최고조에 올랐으나 개인위생에 신경 쓰면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2월에는 하루 감염자가 10만 명을 넘었으니 산 넘어 산이다. 이제는 조심한다고 해도 감염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가능한 조치는 모두 동원해 봐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은지 한참이라 식사시간에 대인접촉을 피하는 방법만 강구하면 더 이상의 조치는 없을 듯하다. 붐비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 중식시간을 30분 당겼지만 타 회사도 비슷한 전략을 사용하기에 효과가 크지 않았다. 코로나 감염자가 폭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사무실에서 중식을 해결하기로 했다. 사무실에서 식사하니 매장 내에서 옆 테이블 신경 쓰지 않고 식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주문하고 테이크아웃을 하느라 여직원이 고생 많았다. 메뉴선택을 일임했기에 젊은 메뉴인 햄버거부터 비빔국수까지 다양한 메뉴를 맛보았고 전복죽, 생선초밥, 돈가스, 모든 메뉴가 포장되니 오히려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일회용 포장재가 양산되어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이 마음에 걸리고 사무실에서 음식 냄새나고 잔반을 처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르지만 여직원 덕에 1달여를 잘 버텼다. 


 거리두기가 완화되어 사무실 밖으로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고 외부 식당을 이용해 봤다. 얼마 전까지 매일 갔던 식당인데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은 식당분위기와 음식 맛이 낯선 탓이 아니라 여러 명이 어울려 식사해봤던 기억이 흐려져 낯설었을 것이다. 식당은 예전과 다름없이 붐볐으나 그새 가격이 많이 올랐다.

 1만 원짜리 점심특선 초밥정식은 12000원이 되었다. 가격인상이 되었어도 12000원짜리 초밥정식은 점심 한 끼로 가성비가 훌륭한 편이다. 사실 가격인상 전부터 단골 초밥집 재료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었다. 저녁 손님을 끌기위해 점심 한정으로 파는 것이지만 밀반입된 생선회를 쓰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로 회의 품질이 좋았다. 튀김2쪽, 메밀국수 한 공기, 생선초밥 10개 가격이 1만원이었으니 파격적이었다. 조심스럽게 한 발 내딛고 맛본 초밥정식은 여전히 훌륭했다.


 거리두기가 완화되자 찾아오는 손님들이 늘었다. 굳이 사무실 구경을 하겠다는 손님은 할 수 없지만 서로의 건강을 위해 가능하면 좁은 사무실에는 손님을 들이지 않는다. 차는 환기 잘되는 테라스 카페를 애용한다. 

 정부는 펜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전환되는 단계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 반갑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앞선다. 2022.05.19일 코로나 확진 환자 수는 28130명, 사망자 40명으로 사무실에서 중식을 해결하던 2022년 2월초 상황과 흡사하다. 숫자로만 보면 긴장감이 최고조에 올랐던 시기와 같으나 몇 십만 명의 감염자가 쏟아져 나온 상황을 겪다보니 숫자에 둔감해 진듯하다. 조금 더디다 싶을 정도의 행보가 바람직해 보이나 5월 들어 거리두기는 해제되었다. 엔데믹으로의 전환은 유럽과 북미가 코로나 선도국가(?)이니 경험사례를 보고 뒤따라 하겠지만 선도국가 감염추이를 보면 엔데믹으로 전환은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접종자중에서도 재돌파 감염까지 발생되니 거리두기와 개인위생 철저 이외에는 특효약이 없어 보인다. 친구들 만난 지도 오래되었다. 3대가 코로나에 감염되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기러기 생활을 해야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말 못하는 갓난애가 감염된 경우도 있어 지켜봐야 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타들어 갈 것 같다. 

 분기에 한번정도 만나던 고교동창들과는 근 2년 동안 장례식장에서만 얼굴을 봤다. 가족같이 지내는 친구들이니 가족장을 치른다고 공지해도 문상 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따져보니 펜데믹 기간 중 어른들이 많이 돌아가셨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3일간 빈소를 지키는 것도 어색하지 않은 관계이나 밀접접촉자가 되어 문상을 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수의 안전을 위해 바람직한 결정이니 섭섭해 할 일이 아니다. 


 생각해 보니 펜데믹 국면에 접어들 때도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었었다. 펜데믹에 대한 경험도 없고 코로나에 대한 지식이 없다보니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고 겪어야 할 혼란이었다. 엔데믹 국면 또한 마찬가지로 경험해보지 않았던 상황이다. 시행착오에 따른 후유증이 적으려면 불편해도 신중한 접근이 최고란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20년간 살고 있는 집인데도 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 갈 때 벽을 더듬댄다. 쿠싱증후군을 앓고 있는 강아지님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조명을 켜지 않아야 한다. 어둠 속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침대모서리에 발가락을 부딪쳐 잠이 달아나는 불상사가 초래된다. 화장실 갔다가 다시 꿀잠을 자야하기에 오늘도 어둠속에서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었다. 벽을 잡고 더듬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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