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이가 역마살이 도졌는지 네덜란드를 가겠다고 한다.
입사 후 12번이나 전근을 다녀 자칭 타고난 역마살이라 하는데 어쩌면 아이들에게도 대물림 또는 밥상머리 교육이 되었는지 두 딸아이 모두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어쩌면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다른 아이들보다 강한 것일 수 있다.
온 가족이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봐서인지 큰 아이도 해외여행을 좋아하고 작은아이는 더 좋아한다. TV를 보다 ‘저기 한번 가볼까?’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내심 가슴이 철렁한다. 큰 아이야 취직했으니 비용을 알아서 처리하지만 작은 아이는 아직 백수다. 짠돌이 작은 아이는 용돈을 모으고 옷은 언니 옷을 입고 다닌 덕분에 아시아, 미주, 유럽을 거쳐 쿠바, 멕시코 등 남미로 영토를 넓혔다. 물론 환승해서 값이 싼 비행기티켓과 홈스테이, 쉐어하우스를 이용하니 기성세대가 상상한 비용보다는 훨씬 적은 비용으로 여행한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에 대한 사교육 투자는 많이 하지 않았다. 큰 아이는 우등생이라 학원에서 무료로 강좌를 듣고 대학 합격 후 학원 프랭카드에 이름을 넣을 수준이었지만, 작은아이는 사교육을 받았다. 짧은 기간이었으므로 사교육비 절약한 것을 견문 넓히는 여행에 투자한다고 치부하고 있다. 작은 아이가 대학 3학년 때 네덜란드에 교환학생을 가서는 취업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한편으로 놀라기도 했지만 대견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어릴 적 책을 읽지 않아 언니보다 이해력이 떨어졌고 別世界를 별 세 개(Three Star)로 알아들어 ‘사오정’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는데 혼자 세계를 누비고 다니니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 미국에 30년 넘게 살고 있는 고모 집에 놀러가서도 혼자 대중교통을 타고 놀러 다닌다며 현지인인 고모를 놀래켰다고 한다.
한동안 방안에서 칩거하던 작은 아이가 역마살이 도졌는지 네덜란드를 가겠다고 한다. 학교 서열로 따지면 1, 2위로 꼽히는 대학원에 합격했다는데 장학금 준다는 2위에 가길 바랐으나 1위 학교로 갔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공부가 먼저인지 여행이 먼저인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 이기는 부모는 흔치않다.
떠나기 전 결혼과 직장생활을 네덜란드에서 해도 된다고 이야기 했다. 세계가 글로벌화 되었는데 허락 하지 않아도 네덜란드에서 취업할 생각이면 할 것이며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또한 외국인 신랑감을 데려와도 놀랄 시대도 지났다. 상의하지 않고 이야기했다고 집사람에게 뜯겼지만 아이 인생은 아이 것이며 바른 방향이 아니면 개입하겠지만 개입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네덜란드에 간 작은 아이는 가족 카톡방에 '형광등이 너무 밝아요, 갓을 다는 방법은? 라디에이터 소리 나면 어떻게 해요?' 등등 귀찮게 하고 있지만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
나는 나주에 내려와 있고, 큰아이는 올해 가을 결혼해 분가했고, 작은 아이는 네덜란드에 유학 갔으니 집사람은 살던 집을 홀로 지키고 있다. 적적하기는 하겠지만 잘 훈련된 강아지가 심심치 않게 해줄 것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아이들뿐 아니라 나도 돌아다니는 것을 꽤나 좋아한다. 버킷리스트에도 집사람과 '해외여행 한 달하기'가 적혀있다. 포르투갈 아니면 캐나다를 가볼까 한다. 포르투갈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이며 캐나다는 집사람을 여행시켜 주고 싶은 곳이다.
은퇴 후 지방에 사는 것도 버킷리스트에 한 줄을 차지하고 있으며 40대 후반부터 지방출장을 갈 때면 거주 적합성 등을 눈여겨 봐왔다. 최종 후보지는 충무, 남해, 여수로 바닷가 보이는 언덕위의 조그만 집에서 바닷바람 맞고 비오는 날에는 막걸리 한잔하며 사는 것이나 불발에 그칠 가능성이 많다. 집사람은 일관되게 거부의사를 밝히면서 '혼자 살면서 철마다 무공해 채소 올려 보내주고, 여름에는 한번 정도 들르겠다.'하니 묘안이 없다. 1년만 살다오는 것으로 버킷리스트를 개정해야 할까 보다.
집안에서 편하게 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내 버킷은 집 떠나 노는 것이니 큰아이, 작은아이의 역마살을 탓할 수 없다. 집안내력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