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하나주면 안 잡아먹지.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한다. 과거에 발생했던 역사가 현세에 유사하게 재현되기에 정확한 표현이다. 그러면 왜, 역사는 되풀이 될까? 여러 사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견해는 ‘인간의 본성’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인간이며 인간의 본성은 수천 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쉽게 변화할 수 없기에 과거나 현재의 인간 본성은 동일하다는 생각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뿐 아니라 성선설, 성악설도 인간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미래를 내다보고자 하는 자는 과거를 돌이킬지어다. 인간사는 선대의 그것을 닮게 되나니. 이는 그 사건들이 그때 살던 사람이든 지금 사는 사람이든 동일한 성정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창조되고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그로써 그것들은 같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 마키아벨리 -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도 있으니 승자에게 유리한 기록이 역사화 되었을지 모른다는 것은 합리적 의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는 역사는 거짓역사 또는 일부의 역사일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조선부터의 역사는 사실에 근접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조선은 史官(사관)제도가 확립되어 왕은 죽기 전까지 자신의 실록을 볼 수 없었고 작성에 관여할 수 없었으므로 왕의 치부까지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한 대목이 이를 증명한다. 태종 4년(1404년) 2월 8일, 태종이 사냥 도중 말에서 떨어지는 일이 발생한다. 文武(문무)를 겸비한 태종은 落馬(낙마) 사실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태종은 이 일을 史官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하지만 태종실록에는 史官이 모르게 하라고 명령한 것까지 모두 기록되었다. 왕이 실록을 보게 되었을 때 일어난 대표적인 비극이 연산군 시절 무오사화인데 실록이 정확한 것은 史官들이 목숨 걸고 역사를 지켜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국사태는 조국교수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이며 이 또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현재진행형으로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교체 시발점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부분 기여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조국교수 자녀의 부정입학 문제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났으므로 표창장 및 인턴증명서 위조는 사실로 판명되었고 대학과 대학원입학도 취소되었다. 물론 당사자들은 억울할 수 있다. 주위의 지인들도 똑같이 했던 일상적인 일이었기에 이를 반칙으로 여기지 않고 잘못된 교육제도가 만들어 낸 시대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상식과 공정’을 훼손한 일이니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할 역사로 인정해야 한다. 진보진영도 속칭 ‘조국의 강’을 넘어야 하지만 검찰의 무리한 기소라는 생각에 강을 건널 생각조차 없는 듯하다.
조국사태만 중심으로 이야기하면, 국민들은 조국교수 개인에게만 분노한 것이 아니라 소위 사회지도층이란 자들의 염치없는 부도덕에 분노했다. 스펙 품앗이로 있지도 않은 봉사활동, 인턴활동, 논문저자를 만드는 몰염치한 불법이 사회지도층 사이에 만연되어 있다는 것에 분노했다. 또한, 반성할 줄 모르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들의 민낯에 실망했으며 그로인해 피해를 보게 된 수험생들을 대신해 분노했다. 반성할 줄 모르는 그들로 인해 소중히 지켜낸 공정과 정의가 사라질까봐 더욱 화가 났다. 어떻게 탄생한 정부인가? 세월호 진상규명과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으며 국민들이 세워준 정부 아니었던가?
태종이 낙마사실을 숨기려 했듯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잘못을 흔쾌히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오래된 역사에서 찾을 필요 없이 박근혜대통령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실을 바로 고백하고 국민께 사죄했다면 탄핵되었을까? 박근혜 탄핵으로 탄생한 정부의 장관이 치부를 인정하지 않으려하는 우매함은 정권의 종말을 예고하는 序曲(서곡)이었는지 모른다.
국민들이 느낀 배신감은 정권교체를 불러왔다. 법을 전공한 대통령에 법을 강의했던 민정수석이 만든 정부철학은 법치도 아니고 원칙도 허물어진 내로남불 이었다는 데에 배신감이 더욱 커졌을지 모른다. 국가의 통치철학이 法(법)이 되었던 德(덕)이 되었던 도덕과 상식에 기반을 두어야 하며 사회의 윤리적 잣대를 외면할 수 없다. 또한 고위층의 윤리는 일반인의 그것보다는 조금 높아야 한다. 이전 정권의 역사에서 배웠지 않은가.
국민들은 원칙과 상식을 흔든 정부를 외면하고 새로운 정부를 선택했다. 결코 후보자의 유능함으로 선택한 것은 아니나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원칙에 투철한 법률가가 집권했으니 원칙과 상식이 지켜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장관후보자 중 한 사람의 직업은 의사이며 국립대 병원장이다. 불법과 위법행위를 의심하기 이전 한명도 아닌 자녀 두 명이 아버지가 병원장으로 재직 중인 국립대 의대에 편입했다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었는가?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의 데자뷰를 보는듯한 느낌은 왜일까? 물론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된 결과일 수 있으며 탈법과 위법사항이 발견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상식을 뛰어 넘었기에 또다시 쓸데없는 소모전으로 인해 온 국민을 반으로 갈라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너무 빨리 되풀이되는 역사에 당혹스럽다.
지난 역사에서 배우듯 우리는 조국사태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공직에 나서려는 자에게 요구되는 청렴과 윤리의 수준과 입으로만 외치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란 것을 배웠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완전무결한 超人(초인)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 국민들 청렴과 윤리수준보다 적어도 같거나 아주 조금 높아야하며, 잘못에 대해서는 사과할 줄 아는 인간미 갖춘 사람을 원한다. 또한, 장관직이나 대통령직과 가족의 무게는 가늠할 수 조차 없으므로 직위보다는 가족을 우선하는 보통사람을 원한다.
박근혜대통령 탄핵과 조국사태를 보면 역사가 가르쳐 줬던 사항을 너무 빨리 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상했다. 선대대통령인 노무현대통령을 따라하지 못했던 것도 의문이다. 노대통령은 한마디로 논란을 잠재웠다. ‘장인이 빨치산이면 내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과거의 허물을 인정하고, 대통령이기 이전에 가족을 생각하는 보통사람이라는 이야기에 논란이 수그러들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도 있지만 좋은 사례는 벤치마킹하려는 것 아닌가.
과연 국민들이 ‘조국이 옳았냐? 검찰이 옳았냐?’를 따졌을까? 그들의 옳고 그름은 법정에서 법리를 다퉈 판가름 날것이다. 법정선고 이전에 국민들은 보편적 윤리와 상식(다른 말로 표현하는 국민정서법)으로 이미 판결을 내렸다. 공직을 원하는 자는 위법, 탈법 등 성문법 체계에 어긋남이 없는 것은 당연사항이지만 ‘보편적 윤리와 상식’을 갖추고 인간미 있는 ‘보통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민정서인데 이를 가볍게 봤기에 민심이 돌아선 것이다.
그리고 정의를 따지고 주장하는 자의 입에서 절대 나와서는 안 되는 발언이 있다. 이것도 가까운 역사에서 무수한 비판을 받았던 전직대통령의 발언 아니었던가. ‘왜 나만 갖고 그래 (쟤도 잘못하고 모두 잘못했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
선택적 정의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선택적 처벌 또한 정의롭지 못하다. 범법에 대해서는 진영과 무관하게 처벌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적폐청산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적폐청산에만 몰두하다가는 조국의 강도 건너야 하지만 A의 강도 건너야 하고, B의 강도 건너야 한다. B를 조사하다 불거진 사안에 대해 처벌해야 하니 C와 D의 강도 건너야 하며 다시 돌아가 A”, B”의 강도 건너야 한다. 대한민국은 강만 건너다가 익사하고 말 것이다.
억울해도 돌이킬 수 없다. 공직에 나서면 청문회와 인사검증을 거쳐야 하며 본인이 원해 신상이 탈탈 털리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로 인한 불이익은 오롯이 본인이 감수해야 한다. 아니면 나서지 말고 발각되지 않을 요행수를 바라봐야 한다.
바람직하지 못한 역사는 필히 되풀이 된다. 인간 본성은 변치 않기에
그리고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다. ‘죄송합니다.’ 한마디하고 고개 숙이면 끝날 문제를 키우고 키워 사람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이것도 변치 않는 인간 본성인가?
하긴 호랑이도 ‘떡 하나주면 안 잡아먹지.’ 하며 내 어릴 적부터 거짓말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