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길고 넓게 봐야 한다.
공자가 어진 마음을 갖고 예절을 지키라고 했던 것은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에서 행복을 찾아 누리라는 것이었다. 선하고 건설적인 인간관계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진 특전이다. 닫힌 마음을 가진 이기적인 사람은 행복할 수 없는데 이는 후진사회와 선진사회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며 행복과 불행을 가늠하는 사회 원칙이기도 하다. - 백 년을 살아보니(1) (김형석著, Denstory刊) -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공자와 김형석 교수는 꼰대일까? 제가 이야기하면 꼰대의 잔소리지만 공자와 김형석 교수는 적어도 꼰대가 아닐 겁니다. 모르지요, 공자도 젊은 시절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주유천하 했으니 젊은 친구가 꼰대 같은 소리만 하고 다닌다며 주위의 면박을 받았을지 모릅니다.
아무튼, 2500년 전 이야기가 현 사회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이자 미래에 펼쳐져야 할 사회상과 유사하다면 놀랍지 않습니까? 시간이 흘러도 소멸하지 않고 오히려 빛을 발하는 것이 고전의 특징이기는 하나
어떻게 250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 문명과 문화가 발전한 현대 사회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를 했을까요? 신기한 일입니다.
일억 원이란 돈을 눈으로 본 적 없는데 46억 년, 상상하기 어려운 지구 나이입니다. 우주 나이는 지구 나이의 3배인 138억 년이라 하니 어마어마합니다. 시계가 발명되기 전에도 시간이 있었습니다. 24절기가 만들어지고 절기에 맞춰 씨 뿌리고 농사도 지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추상적인 시간개념이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아주 빠른 눈 깜짝할 사이의 시간을 “刹那(찰나)”라고 하며 오랜 시간을 “劫(겁)”이라 표현합니다.
현대에 와서 저같이 따지기 좋아하고 할 일 없는 사람이 계산을 해봤나 봅니다. 생각이 스치는 순간 정도의 짧은 시간을 찰나라 하는데 1 刹那는 1/75초라 하며, 100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의 옷자락이 집채만 한 바위에 스치며 바위가 닳아 없어지는 시간인 1 劫은 4억3천2백만 년입니다. 옷깃을 스치면 오백 겁의 인연인데 우주 나이보다 많은 2160억 년 만에 한 번 있는 기막힌 인연입니다. 부부 인연은 8천 겁, 부모·자식은 9천 겁이니 동양에서는 우주 나이보다 더 기다란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불교와 동양철학의 깊이는 숫자로 나타낼 수 없는 무한 시간만큼 사유의 깊이가 깊다고 할 수 있으며 凡人은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상상의 경지라고 생각됩니다.
찰나(0.013초)는 눈 깜짝할 새(0.2초)와 비슷하나 劫은 여전히 감을 잡기 어렵습니다. 중국인의 허풍은 세계적으로 알아준다지만 劫은 인도 불교에서 사용하는 단위이니 인도의 허풍이 중국을 능가한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劫은 정신의 시간, 우주의 시간을 재는 데 사용했으며 실생활에 사용되는 단어는 아니었습니다.
장자를 보면 만화를 연상하게 됩니다. 나무가 사람을 꾸짖기도 하고 수천 리 크기의 ‘곤’이라는 물고기가 변해 수천 리 크기의 ‘붕’이라는 새로 변해 9만 리 상공으로 날아 올라가 6개월간 내려오지 않는다. 황당하고 상식을 초월하는 신화적인 이야기로 말문을 뗐을까? 충격요법으로 상식의 파괴를 의도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좁은 세계관에서 벗어나라는 이야기다.
매미와 비둘기가 붕새를 비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힘껏 날아봐야 느릅나무 정도에 다다를 뿐이다. 때로는 거기에도 이르지 못하고 떨어지는데 저 붕새는 무엇 때문에 9만 리를 날아올라 남쪽으로 가는가?’
그러니 저 매미와 비둘기가 어떻게 붕새의 거대한 비상을 이해하겠는가?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이르지 못하고 짧은 삶은 긴 삶을 헤아리지 못한다.
장자가 살던 시기는 제자백가라고 하는 온갖 사상가들이 자기 사상만이 최고의 진리라고 외치던 시대나 장자가 보기에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유가, 묵가, 법가니 이름만 거창할 뿐 하나만 알고 전체를 모르는 그들을 좁은 우물에서 망망대해로 인도하고자 했다. 장자 외편 추수에서 그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 곳에 매어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철에 매어 살기 때문이다.’ - 장자, 나를 깨우다 (이석명著, 북스톤刊) -
계획 수립하는 업무를 오래 했기에 후배들 교육할 때 시간의 微分(미분)과 積分(적분)을 이야기합니다. 후배들은 거의 공대 출신이므로 공자나 장자 이야기는 몰라도 수학을 빗대 이야기하면 기가 막히게 이해합니다.
한 해를 微分한 계획이 월별계획이고 이를 積分한다면 연간계획이다. 시간 “t”가 0에서 무한대로 간다면 하루, 한 달, 연간계획을 積分하면 중장기계획이 되고 Road Map이 된다. 목적달성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연관성을 고려해 시간대별로 연결해 놓는 것이 계획이고 Road Map이다. 거꾸로 중장기계획을 微分하면 연간계획이고, 다시 微分하면 분기, 월간계획이 된다.
여러분들과 몸담고 있는 조직에 대한 평가와 모습은 과거의 땀과 나태함이 積分되어 표현되는 결과 값이다. 부정이나 긍정의 값을 微分하면 개인별 기여도가 나온다. 흔히 칭찬받을 일에는 모두 “내 덕”이라며 숟가락을 얻으려 하고, 비난받을 일이 생기면 “네 탓”이라며 발을 빼려 하는데 그것은 제 3자가 평가할 일이지 너와 내가 이야기할 것은 못 된다. 하지만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으니 모두 리셋하고 오늘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 오늘은 하나씩 積分되어 당신들의 미래가 될 것이다.
때로는 길고 넓게 봐야 한다. 100년밖에 살지 못하는 인간들에게는 10년이 긴 시간이나, 수천 년을 사는 소나무에게 10년이란 하루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부분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장자였다.
장자는 인생을 날쌘 말이 좁은 틈새 앞을 지나가는 것 같은 순식간의 일이라고 말했다. 지구 나이 45억 년에 비하면 인생이란 한낱 점에 불과하다. 왼쪽 뿔 위에 있는 나라는 ‘촉’이고, 오른쪽 위에는 ‘만’이라는 나라이다. 두 나라가 서로 땅을 빼앗으려고 수시로 전쟁을 벌였다. 워낙 치열하게 싸우다 보니 죽어 널브러진 시체가 수만이 되었고 도주하는 패잔병을 쫓아 나서면 보름 후에나 돌아왔다. 觸蠻之爭(촉만지쟁)또는 蝸角之爭(와각지쟁)이라 불리는 우화다.
인생은 길이가 아니라 의미로 재는 것이라고 한다. 의미로 재면 하루가 평생을 좌우할 수 있고 평생이 하루만도 못할 수도 있다 아무리 길게 살아도 별 의미가 없다면 껍데기 인생에 불과하다. 반면 단 하루를 살았어도 의미가 담기면 천금보다 귀한 삶이 된다. - 곁에 두고 읽는 莊子(1) (김태관著, 홍익출판사刊) -
공학을 전공한 기술자 시각에서 보면 장자는 미적분에 능통한 인물이었다. 시공을 넘나들며 미시적/거시적 관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지 못한다면 장자와 같은 철학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