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작가의 글쓰는 방법
책머리에
강연 제목은 ‘공부와 글쓰기’였는데 책 제목은 共感筆法으로 했습니다. 정말 훌륭한 글은 많은 독자가 깊게 공감할 수 있는 글이라고, 인간과 우주에 대헤서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야 그런 글을 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제가 힘주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합니다. ‘책을 읽을 때는 글쓴이가 텍스트에 담아둔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껴야 한다. 그래야 독서가 풍부한 간접 경험이 될 수 있다. 간접 체험을 제대로 해야 책 읽기가 공부가 된다. 그리고 남이 쓴 글에 깊게 감정을 이입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가상의 독자에게 감정을 이입하면서 글을 쓸 수 있다. 자기 생각과 감정 가운데 타인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것을 골라낼 수 있고, 그것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쓰게 된다.
독서, 공부, 글쓰기
제가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지만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은 아닙니다. 전공분야의 박사학위 정도는 가져야 공부한 사람으로 인정하지만 저는 학위도 없고 어떤 분야를 오래 파고들지도 않았습니다. 발길 닿는 대로 방랑하는 나그네처럼 손 가는 대로 책을 읽고 글을 썼을 뿐입니다. 문장도 뭐, 솔직히 개성이 뚜렷하거나 아름답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독서와 글쓰기는 여러 공부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그냥 하나의 공부 방법이 아니라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식으로 책을 읽으며, 어디에 중점을 두고 글을 쓰는지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문학작품이나 학술논문 쓰는 방법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글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거나 정보를 교환해야 하는 분들이 제 강연에 관심을 가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문장을 잘 쓰는 기술보다 감정과 생각을 문자 텍스트로 표현하여 타인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두서가 없더라도 그런 점을 감안하여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공부가 뭘까요? 제가 생각하는 공부의 개념은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는 작업’입니다. 독서는 공부하는 여러 방법 중에서 특별히 효과가 빠르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책에는 글쓴이가 파악한 인간과 세계의 본질, 그 사람이 찾은 삶의 의미와 살아가면서 느낀 감정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책에서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을 읽고 이해하며, 공감을 느끼거나 반박하고 싶은 욕구를 느낍니다.
자기 자신과 세상과 우주에 대해서 무엇인가 새로 알게 되거나, 삶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거나 어떤 강력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경우, 우리는 그 모든 것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느낍니다. 글쓰기는 ‘생각과 감정을 문자로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감정은 쉼 없이 생겼다 스러지고, 생각은 잠시도 그대로 머물지 않습니다. 글로 적어 붙잡아두지 않으면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언어는 단순히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무엇인가생각하고 느끼려면 언어를 알아야 합니다. 말과 글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무엇인지 스스로 정확하게 인지하지도 못하니까요. 감정과 생각은 언어로 표현해야 비로소 내 것이 될 수 있어요.
공부는 결국 독서와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과정입니다. 물론 독서와 글쓰기가 공부의 전부는 아닙니다. 직접 경험이나 영화 같은 다른 미디어를 통해서도 우리는 무언가 배우고 깨닫고 느낍니다. 문자뿐만 아니라 그림, 영화, 노래를 비롯해 다른 방법으로도 생각과 감정을 표현합니다. 그렇지만 공부 방법으로 따지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보다 나은 게 없어요. 이렇게 보면 시민들이 책을 읽지 않는 다는 건 큰 걱정거리가 됩니다. 최근 나온 내한민국 독서 실태를 보니 성인 셋 가운데 한 명은 일 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공부를 아예 안하는 것은 아니고 책 말고 다른 것으로 공부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독서와 글쓰기와 공부의 관계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서 즐겨 읽고 끊임없이 쓰려고 노력합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내가 오늘 의미 있는 하루를 살았는지 점검하면서 말입니다.
하루 한 문장, 말하는 것처럼
하루 한 문장이라도 쉬지 않고 글을 쓰라 권합니다. 훌륭한 책을 읽어서 어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글을 쓰면서 실제로 써먹어봐야 자기 것이 됩니다. 사람은 한 순간도 생각하지 않거나 느끼지 않으면서 살지 못합니다. 책을 읽고, 일을 하고, 신문방송 보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산을 오르고, 낚싯대를 편 채 물가에 앉아 있고, 그럴 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느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생각과 감정은 머물러 있지 않아요. 쉼 없이 생겨나고 모양과 색깔을 바꾸며 흘러가고, 그리고 곧 사라지죠. 문자 텍스트로 붙잡아두지 않으면 흔적조차 남지 않습니다. 구름처럼 잠시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흩어지고 맙니다. 내가 잠시 느끼고 생각했지만 내 것이 되지는 않는 겁니다.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데, 중요한 것이어서 꼭 기억해두려 했는데, 그런데 그게 뭐 였더라?’ 젊은 분들은 공감하지 못하겠지만 제 나이쯤 되면 일상입니다. 샤워 중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얼른 물기 닦고 메모지를 찾아 적으려는 순간 ‘뭐였지?’ 하게 되요. 이럴 땐 그저 불운을 탓할 도리밖에 없지요.
공부는 단순한 지식을 얻는 작업이 아닙니다. 오감으로 직접 경험하거나 신문, 방송, 책을 통해서 간접 체험하는 모든 것에서 정보, 지식, 생각, 감정을 읽어내어 교감하고 공감하고 비판하고 대립함으로써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공부입니다. 이렇게 해나가는 과정에서 글쓰기를 게을리 하면 공부의 축 하나가 빠지는 겁니다.
글쓰기를 두려워 마세요. 아는 게 많으면 글쓰기에 도움이 되지만 아는 게 많다고 해서 반드시 글을 잘 쓰는 건 아닙니다. 아는 것이 적으면 불리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글은 쓰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저마다의 수준에서 저마다의 스타일로 글을 쓸 수 있어요. 하루 한 문장이라도 꾸준히 쓴다면 말이죠. 말 그대로 날마다 쓰라는 건 아닙니다. ‘하루 한 문장’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글로 옮기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살자는 말입니다.
제가 홍보 전문가 몇 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 분들은 대개 스마트폰을 이용하더군요. 술 마시며 잡담을 나누다가도 귀가 번쩍 열리는 말을 들으면 곧바로 적고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들은 말, 본 것을 문자로 기록하는 게 바로 ‘하루 한 문장’입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면 수첩을 지니고 다니세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스마트 폰을 열지 말고 고개 들고 귀를 열어 거리 풍경과 주변 사람을 관찰하고 도시의 소음을 들으세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수첩에 문자로 옮기는 겁니다. 주제가 특별하지 않아도 되고 문장을 완성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메모지가 쌓입니다. 비슷한 내용이 있으면 한 데 모아 비교하고 종합하면 자신이 어떤 문제에 관심 갖고 있는지 보입니다. 비슷한 것을 모아 글 한 꼭지를 쓰고 디렉터리를 만들어 컴퓨터에 저장합니다. 한 달, 일 년 글을 차곡차곡 쌓으면 됩니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쓰려고 너무 애쓰지 마세요. 아름답지 않아도 말하려고 한 것이 제대로 전해지는 글이면 충분합니다. 아름다움은 그 다음 과제로 남겨두세요.
언어는 말과 글인데 말이 글보다 먼저입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말로 소통한 건 수십만 년 되었지만 글로 소통하기 시작한 것은 몇 천 년밖에 되지 않아요. 그래서 글이 아니라 말이 기본입니다. 저는 말에 가까운 글일수록 발 쓴 글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문장을 제대로 썼나? 이게 제대로 된 글인가? 혼자 글을 쓰다보면 이런 의심이 드는데 소리 내어 읽어 보세요.
입으로 소리내기 편하고 귀로 들어서 거슬리지 않고 뜻이 말하는 것처럼 잘 전해지면 잘 쓴 겁니다. 발음하기 어렵고 에 거슬리는 소리 나고 뜻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으면 문제 있는 것이고요. 소리 내서 읽어보면서 소리 내기 편하고 듣기 좋고 뜻이 분명해지도록 고쳐나가면 됩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저절로 문장이 좋아집니다. 믿고 해보시기 바랍니다.
책 일고 글 쓰고 생각하고 느끼면서, 여러분 각자 자기답게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