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쓰기는 저절로 완성된다. 정말이다. 해봤다.
코로나19의 영향인지 글을 쓰려는 사람도 많아졌고, 같은 시대를 살았던 비슷한 연배들 중 직장생활을 마감하며 후배님들에게 뭔가 남기려는 사람들이 여럿 된다. 손 빠르게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사진과 글로 남겨 근사하게 책을 엮고는 슬며시 건네준 후배님도 있고 구상중인 사람도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책을 펴낸 선배이기에 어떻게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여러 가지를 물어오지만 확실하게 알려 줄 수 있는 정보는 출판사명과 소요비용 정도다. 여러 보직을 담당하며 전기, 경영, 안전, 품질, 교육...등을 공부했기에 전공은 雜學(잡학)에 가까우나 글쓰기에 관한한 無學(무학)이다. 체계적으로 교육받지 않고 막 배운 글이기에 조리 있게 글 쓰는 방법을 알려주기 어렵다.
현직에 있을 때는 장기간 소요되고, 대하소설 같은 장문의 기획보고서를 자주 썼다. 전날의 酒醉(주취)가 남아 있는 경우에는 한 페이지를 채우는 것도 버거운 일이나 컨디션이 좋으면 속도감 있게 써 내려 갔다. 시간이 흐른 뒤 두꺼운 보고서를 보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사실 보고서는 간략하게 요약하는 것이 진짜 기술이다. 6~7백 페이지짜리 本 보고서를 만들고 요약본 30페이지, 임원보고용 1~2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만드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물론 시간적으로는 본 보고서를 만드는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온몸의 신경세포를 곧추세우고 쓰는 보고서는 임원보고용 1~2페이지짜리다.
우측 세 번째 손가락의 굳은살은 밥벌이용 글쓰기의 産物(산물)이지 취미생활인 끄적거리기의 결과물이 아니다. 취미생활은 끈기 있게 지속하고 있으나 현재도 치열하지 않다. 아니 치열은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제주사투리인 ‘놀멍쉬멍(놀면서 쉬면서)’이란 수식어가 적합할 듯하다, 취미에 대한 내 持論(지론)은 ‘스트레스 받으면 더 이상 취미가 아니다.’이다. 낚시하면서 더 많이, 더 큰 것을 잡으려는 순간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듯, 글쓰기도 더 근사하게 쓰려하고 원고마감일의 압박을 받는 순간부터 스트레스가 생긴다. 전업 작가로 나서 ‘밥’을 위해서라면 치열하게 써야하겠지만..., 가끔 받았던 원고료와 막걸리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 받아본 기억은 없다.
수필을 기준으로, 일반적으로 한편의 글을 쓴다면 띄어쓰기 포함 1500자 정도 분량이 된다. 이를 起承轉結(기승전결)로 나누면 각 400자가 되며 각 파트를 두 文段(문단)으로 구성한다면 한文段은 200자 정도, 그러니 총 8文段으로 구성하면 한편의 글이 된다. 각 파트별 한줄 띄우기가 있으므로 노트북에서 글 10point 크기로 한 페이지와 추가 10줄 정도면 글의 품질은 차치하고 분량만 따지면 원고 한편이 완성되는 것이다.
말은 쉽게 하고 있지만 글쓰기 초보에게 1500자 분량의 글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즉 타고난 재능이 없다면 글쓰기도 연습이 필요하며 글의 분량과 연습의 분량은 비례한다. 나는 기술쟁이로 입사했지만 글 쓰는 기회가 많았다. 자주 쓰다 보니 사내에 소문이 돌며 글쓰기 분야가 확대되었다. 운 좋게도 실전이자 연습할 기회가 많아진 것이다. 회사 내 홍보팀과 기자가 있었음에도 사외에서 의뢰 들어오는 원고도 내게 오는 경우도 있었고 임원들의 행사용 축사를 쓰기도 했다. 영광스럽게도 존경하는 선배님은 자제분 국제결혼식 때 며느리에게 보내는 편지도 내게 의뢰했다.
아무리 起承轉結과 8文段으로 구성하는 것이 방법이라 해도 첫 문장 쓰기가 막막하고 어려울 수 있다. 사실 글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제목을 뽑는 것과 첫 문장을 쓰는 것이다. 첫 문장을 쓰기 어렵다면 읽은 책을 요약정리하면서 문단을 나누고 분량을 조절하며 선배작가들의 글 쓰는 방법을 배우고 연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00권정도 읽고 요약하다보면 1500자 쓰기는 저절로 완성된다. 정말이다. 해봤다.
글쓰기에 관한한 無學(무학)이며,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지 않고 막 배운 글이기에 조리 있게 글 쓰는 방법을 알려주기 어렵다고 했듯 요즘도 두서없이 주제와 관련되는 내용을 생각나는 대로 쓴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신경 쓰지 않고 대충 쓴 내용을 편집하여 기승전결에 넣고 뺀다. 필요하면 살을 부치고 중복되는 내용은 삭제한다. 생각나는 인용문이 있다면 인용한다. 책을 많이 읽었다는 표를 내기 위함이 아니라 초보 작가의 실력이 미흡하니 기성작가의 완성도 높은 글을 인용하면 읽는 사람의 이해도가 높아진다. 전체적인 논리를 점검하고 문장의 매끄러움과 맞춤법 검사를 한다.
수필 한편의 분량이 1500자 정도라 했는데, 인쇄 책을 기준으로 하면 3페이지 분량이다. 일반적으로 책 한권의 분량이 250~300페이지이니 70~80편의 원고가 있으면 책 한권을 엮을 수 있다. 한편의 원고를 쓰는 것이 어렵지 연습하며 쓰다보면 70~80편의 원고를 만드는 것은 순식간이다. 모인 원고를 분야별 또는 시기별로 편집해 幕(막)과 場(장)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보다 쉬운 일이므로 책 만드는 작업은 식은 죽 먹기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글 쓰는 연습이 필요하며 우선 200자 분량의 글을 써보는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 1500자는 8개의 200자 문단으로 이뤄져 있다. 편집을 거쳐 1500자의 글이 완성되었다면 남에게 보여주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러기에 퇴직 전 엮은 수필집을 남들은 ‘책’이라 부르지만 나는 ‘용기’라 읽는다.
* 요즘 서점에는 글 쓰는 방법에 대한 서적이 꽤 많이 나와 있다. 아무 책이나 골라 읽어보면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책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쓰는 연습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