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기도 하지.
GT정비기술센터를 떠나기 직전 막내급 직원이 낚싯대와 손 편지를 수줍게 내밀었다. 낚시를 몇 번 같이 갔던 직원으로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수준급 낚시실력을 갖고 있었고, 51Cm붕어를 낚아 낚시전문 월간지 한 페이지를 장식한 직원이다.
상무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 오래 계셨으면 했는데 많이 아쉽습니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정말 오랜만에 사람냄새 나는 분을 만나서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더 아쉬운지 모르겠습니다.
어디에 가시더라도 항상 건강하시고 또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또 물가에서 뵙는 날을 기대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PS 준비한지 오래 되었는데 기회가 닿지 않아 이제야 드리네요. 비싼 낚싯대는 아니지만 쓰시면서 어느 낚시 좋아하는 놈이 선물한 거였지 라고 기억해주세요.
막내 손 편지에 가슴이 뭉클했다. 젊은 직원이기에 아직 직장인으로서 철이 들지 않았을 것 같았지만 겉과 속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닌 듯 했다. 매월 Talk Concert시 직원들에게 경영현황과 함께 인간답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떠날 시기가 가까워오자 어느 고참직원이 말했다. ‘상무님, 매월 말씀 하셔도 알아듣는 사람들 극소수입니다. 괜히 고생만 하시는 거예요.’
‘아닙니다, 저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한 사람만 알아들어도 행복합니다.’ 알아듣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에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시작할 때도 모두 알아듣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모두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구원파같은 종교집단에서나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사실 막내의 손 편지이외에 GT센터 근무 중 직원들로부터 몇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앞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고쳐보겠다는 직원,
상무님 글을 출력해서 가족들과 함께 보고 있다는 직원,
그동안 무책임한 삶을 산 것 같아 반성한다는 직원,
글 솜씨가 없어 편지쓰기 두려웠는데 용기 내어 쓴다며 매월 새로웠다는 직원,
사실 그들이 있기에 Talk Concert와 글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도 있다. 직원들 답장 편지는 나에 대한 격려임과 동시에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었다. 또한, 그들은 내가 그렸던 ‘동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고급스러운 GT문화 조성’, ‘출근하고픈 GT정비기술센터’를 구현해가는 첨병이기도 했다.
사람 사는 조직이니 사람냄새 나야지 개, 돼지 냄새 난다면 이상한 일이다. 기본적이고도 당연한 사항이 안 되니 다툼과 불협화음이 생기고 양보와 배려가 없는 것일지 모른다. 아마도 막내급 직원은 중견사원이 되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 같다. 내가 그리고자 했던 조직 모습을 느꼈다는 것에 오히려 감사한 기분이다.
기술연구원으로 이사하고 유례없는 폭염으로 낚시할 엄두가 나지 않아 막내급 직원이 선물한 낚싯대는 아직 펼쳐 보지 못했다. 하지만 선선해진 어느 날, 토실토실한 영산강붕어를 낚아 올리면서 ‘내 말귀를 알아듣는 기특한 녀석이 선물한 붕어네. 예쁘기도 하지.’ 혼자 독백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