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사는 동안 꽃처럼(1) (이철수著, 삼인刊)

‘나뭇잎 편지’

by 물가에 앉는 마음

이철수씨가 인터넷 사랑방을 열어 ‘나뭇잎 편지’를 보낸지 10년째 되는 해 이 책을 엮었습니다. 10년 동안 쉬지 않고 편지를 보낸 이철수씨에게 주위에서 근면, 성실을 칭찬한다는데 정작 본인은 편지에서 삶의 안정을 찾았다 합니다. '세상 속의 나를 돌아 볼 수 있게 해주었고 함부로 살지 않게도 해주었습니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응원하고 공감해주신 말씀에 격려도 받았습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습니다.'


함께할 줄 알아야

사람도 참 많이 닮지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를 빼어 박은 얼굴이며 걸음걸이를 보고 놀라워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산과 들에서도 이름 몰라도 한 집안이구나! 짐작하게 하는 닮은꼴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렇게 닮은 것들 곁에는 서로 다른 얼굴을 한 존재들이 다채롭게 있고, 그렇게 다른 존재들의 조화로 사회와 숲을 이룹니다. 작은 경쟁은 있을 수 있지만, 크게 보면 함께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거기서도 듣습니다. 좋은 날


날갯짓

무리지어 나는 먼 길 가는 비행에서 나 혼자 낙오하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저기 한 마리, 조금 뒤처진 자리에서 날갯짓하고 있는 새가, 내 모습이라고 여기시는지요? 누구나 그런 불안에 사로잡혀 살고 있을 겁니다. 시대가 앓고 있는 돌림병 같은 거지요. 새들의 먹이가 넘치는 자연에 개발의 삽날을 들이대는 인간들이 철새의 적이 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우애 있는 삶에 덫을 놓는 야수적인 존재들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불안, 그 마음의 병도, 그 탓이 크지요. 무엇보다 자책에서 벗어나야하지 싶습니다. 지금, 우리, 최선을 다해 날갯짓하고 있기만 한다면요!


기도

눈 오시기로 한날 눈 오게 해달라고 하면 기도발 받을 겁니다. 기도한 대로 눈 내리실테니까요! 추위에 떠는 이웃을 없게 해 주십사하고 기도하면 이렇게 응답하시지 않을까요?

- “참 좋은 기도로구나! 그건 너희들이 좀 애써 줘야겠다. 좋은 결과 있거든 다시 알려다오!”


손끝에

아내는, 매일 밥을 짓습니다. 저는 어쩌다 아내가 앓아눕기라도 해야 죽 한 냄비 끓이는 게 전부지요. 아내가 지어주는 밥 먹고 살았으니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그 기운 일겁니다. 엽서 한 장 쓰는 손끝에 아내의 수고 뿐 아니라, 쌀, 배추, 무, 콩, 고추, 마늘에서부터 소금, 설탕, 물, 바람, 햇살, 달빛, 눈, 비....이 큰 세계가 다 스며있습니다. 하늘, 땅이 준 것이 이렇게 많아도, 그것 다 내어 놓으라는 법이 없고, 아내도 하늘을 닮았는지 밥값 등속을 내어 놓으라지 않습니다. 늘 있어서 고마운 줄 모르고, 흔하고 쉽게 주어지는 것이라 귀한 줄 모르는 너그러운 마음을 잠시 생각했습니다. 방금 받은 차 한 잔까지.


빨간 리본

산속 어느 갈림길에서, 손닿지 않는 높은 가지 끝에 묶어놓은 빨간 리본을 보았습니다. 무동을 탔을까요? 산중에서 길 잃어버리는 사람 없으라고 눈에 잘 띄는 높은 자리에 리본을 달아 올린 마음길이 눈에 보이는 듯 했습니다. 사람 사는 빌딩숲도 산속 같아서 길 잃어버리기 십상입니다. 도로 표지판이야 없지 않지만, 길은 사람 속에서도 잃어버리고 욕심을 따라가다 잃어버리기도 하는 법입니다. 그 언저리에서도, 바람 타며 길을 일러주는 작은 리본이 많이 보였으면...


갈매기

백목련 겨우 피는 봄날, 동쪽 바닷가 해안도로에서 바다 쪽 콘크리트 방벽위에 배를 깔고 앉아서 꼼짝 않는 갈매기를 보았습니다. 봄은 체온관리 어려운 계절. 햇볕에 따뜻해진 시멘트덩이에 앉아 몸을 덥히려는 생각인지, 지나는 자동차 기척에도 별무 반응입니다. 생명은 그렇게 지키는 거지요. 사람처럼, 지조 생각하고, 명분 생각하고, 의리, 대의, 염치, 신념같이 쉽지 않은 고민해야 하는 짐승은 아니니까요. 양지와 아랫목만 쫓아 사는 사람처럼 한심해 보이지 않는 것 그 때문일까요?


번뇌

욕심으로 쌓은 건, 예외 없어요. 번뇌고 고통입니다. 성공이고 행복이라고요? 얻고, 쥐고, 품은 것이 명예, 돈, 희망 같은 것이라 쌓이고 높아지고 단단해지면 더 좋겠다고요? 그럴까요? 그래도 좋고, 그래야 할까요? 번뇌와 고통이, 아름다운 얼굴로 찾아오는 법이지요. 행복의 얼굴로!


조바심

늦여름 따가운 햇살에 이삭이 익어갑니다. 햇살이 벼이삭에만 오실 리 없어 강아지풀, 명아주, 질경이도 예외 없이 그 햇살아래서 씨앗을 맺습니다. 아직 철 이른 줄 알면서도 이삭에서 벼 낱알을 떼어 얼마나 익었는지 씹어봅니다. 급하면 말려서 찧어 먹어도 되겠다 싶지만 추석 지나야 옹근 쌀을 얻겠습니다. 햇살은 초록을 가리지 않고, 초록은 조바심하는 기색 없습니다. 이삭을 훑는 손이 부끄럽습니다. 조바심하는 마음을 들킨 듯해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541. 이것이 인문학이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