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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Jan 04. 2022

691. 나 자신부터 돌봐야 합니다.

 나 자신부터 돌봐야 합니다. (최대환著, 샘터刊)

 세상 살아가는 것이 쉬울 때가 언제 있었겠냐 싶지만, 요즘은 살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코로나 펜데믹 시대가 계속되니,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댐이 결국 갈라지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애써 눌러두었던 인생의 고민이 터져 나오고 몇 겹의 중력처럼 나를 누르던 그 삶의 무게를 버틸 힘은 다한 듯 느껴집니다.

 가까웠던 사람들과 자주 못 만나게 되니 마음도 멀어질까 걱정되고 그리움과 아쉬움에 외로움이 겹쳐 마음의 병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지인들과 만나 밥도 먹고 수다도 떨고 서로 격려도 해주며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들을 이겨내곤 했는데 이제는 혼자서 다 감당해야 하니 기운이 빠집니다. 반면 낯선 이들에 대한 적대감은 날로 강해지고 봉사하려는 의욕이나 만나는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려는 선의의 마음은 힘을 잃고 있습니다. 사회 공동체 의식이 약해졌다는 말을 듣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겠지만, 요즘은 사회구성원의 마음의 끈이 이러다 아예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될 정도입니다.


 인내와 성숙함을 가지고 현안을 차분히 풀어가려는 좋은 ‘습속’과 다른 사람의 입장을 들어보고 역지사지 하려는 자세를 찾기 어렵습니다. 포용과 관용과 연민이라는 덕목은 사라져가고 정의와 공정이 강물처럼 흐르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를 지켜주던 좋은 가치들은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진심으로 걱정하게 됩니다. 이쯤 되면, 당연히 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불안과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 나를 지키는 것은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오르면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길이 자신을 지키고 아끼는 정답이라고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내 것을 지키고자 악착같이 매달린다고 내가 지켜지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적 안정이나 사회적 지위에 도달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이러한 외적인 조건들이 충족된다 해도 자기 내면을 지켜내고 돌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지금 자기 내면의 모습을 잘 살펴보며 돌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대결이 아니라 연대와 우정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러한 일을 도와주는 것이 철학입니다. 가장 현실적이어야 할 때 오히려 철학이 필요합니다. 이제 철학의 시간이 왔습니다.


 철학은 추상적이고 어려운 학문이지만 내가 인생을 행복하게 잘 살게 도와주고 변화되도록 이끌어주는 ‘삶의 기예’입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삶의 기예에는 육체적 건강법이나 경제적 재테크, 직업적 소양의 습득, 취미생활을 더 잘 즐기는 기술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철학은 인생을 긴 안목과 넓은 지평에서 바라보게 하며, 당장 발등에 떨어진 문제만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삶이라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인생길을 걸어가도록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철학이라는 삶의 기예는 자신을 잘 돌보는 법, 곧 자기배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하게 하는 힘입니다.

 자기배려는 자기 자신을 잘 돌보는 법입니다. 자신을 돌봄은 운동, 식사, 휴식, 친밀감 등 여러 기본 욕구의 충족과 관련 있습니다. 욕구의 충족은 생존을 위해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위의 욕구들로 상승하며 본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나 문화의 영향으로 외부로부터 나에게 강요되거나 투사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유행의 경우에서 보듯 모방심리가 작용하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서 다양한 차원의 욕구가 자라나기 마련이고 우리는 그런 것을 채우며 행복을 느낍니다. 욕구의 충족은 즐거움과 쾌락을 주는 것일뿐더러, 자기실현의 요소이자 동기입니다.

 욕구충족을 위한 활동은 일상에 배어 있습니다. 허기를 면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음식을 먹고 미각만이 아니라 분위기를 누리기 위해 이름난 식당과 카페를 찾습니다. 편안한 휴식을 얻고자 집안을 꾸미지만, 때로는 사회적 성취감이나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고급주택을 갖고 싶어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경제적 안정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하지만, 운동에 심취하면 운동하기 위해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식욕이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고 하지만 건강과 외모를 위해 다이어트를 기꺼이 하기도 합니다. 외모를 향한 욕구는 문화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요즘처럼 그 욕구가 강하고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 거대 산업을 이룬 적이 없을 겁니다. 사람이 가진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가 하는 여러 일들이 넓은 의미에서 자기 배려이자 자기를 돌보는 법입니다. 


 자기 배려는 육체적인 것이든 정서, 경제, 문화, 사회적인 것이든 나를 위한 것이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아’를 돌보는 것이라 하기에는 미흡함이 있습니다. 어떤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갖게 되는 행복감이 ‘행복’ 그 자체가 아니며 몸과 감정이 원하는 욕구를 그때그때 배려하고 충족시켰다고 행복한 인생이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욕구에 대한 배려를 통합적이고 유기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몸과 관련된 욕구를 돌보고 배려하며 쾌적하고 즐겁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몸의 욕구로 대표되는 필요와 욕구 말고 인간의 실현과 행복을 위해서는 더 결정적인 욕구와 활동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 욕구들을 균형과 질서 있게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한 인생에 필수조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 존재와 인생에 대한 섬세하고도 통찰력 있는 조망이 필요합니다. 철학적으로 자신을 돌보는 법과 자기를 배려하는 기술에 대해 숙고하는 것은 인생을 사는데 필수적인 실천적 지혜입니다.

     

 철학이 관심을 갖는 정신적 차원에서 자기를 돌보는 법이 육체적이고 실질적인 차원의 욕구이상으로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인간의 삶이 생존이 아닌 잘 사는 것이 목적이기에 다른 기본적인 욕구가 다 채워져야 비로소 정신적 차원에서 자신을 돌보는 것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가능하면 일찍부터 여러 욕구를 추구하고 자신을 돌보는 일에 대해 정신적이고 가치 지향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행복한 삶을 위한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욕구를 과하게 억압하지 않되 필요할 때 거리를 둘 줄 알고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은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입니다. 욕구의 충족뿐만 아니라 욕구를 현명하게 달래고 자제하는 것도 중요한 자기배려이자 돌보는 법입니다. 


* 얇은 책인데 문체도 딱딱하고 꽤 지루하게 읽었습니다. 저자의 프로파일을 보니 독일에서 철학을 전공하신 신부님입니다. 유머 없는 독일에서, 딱딱한 철학을 전공하신 신부님의 쓰신 책 답습니다. 미사때 講論은 재미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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