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8. 인문학은 밥이다.(1)

인문학은 밥이다.(1) (김경집著, 알에이치코리아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25년은 공부하고 25년간 가르치며, 25년은 마음껏 책 읽고 글 쓰며 문화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저자는 두 번째 25년을 마친 후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나 충남 해미에 있는 작업실 ‘然齋(수연재)’에서 ‘나무처럼 사는’ 마음을 품고 살고 있다. 진부하게도 저자가 제목을 “인문학은 밥이다.”라고 명명한 것은 ‘인문학을 공부하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라는 많은 사람들의 낡은 질문에 대해 반대론을 펴기 위함으로 보인다.

나는 책을 구입할 때 아니면 구입한 책을 펼 때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를 먼저 본다. 책도 사람과 같이 첫인상이 좋아야 하고 뒤가 아름다워야 한다는 개인적인 생각도 있고, 저자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기에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펼쳐보니 작가가 주장하는 방향이 내가 생각하는 ‘생활속의 인문학’과 맞아 들어갔기에 읽어 보기로 했다. 오늘은 작가의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만 소개하기로 한다.


에필로그(인간성의 회복과 인격의 완성을 위하여)

인문학의 범위를 文, 史, 哲(문사철)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동양에서 人文은 天文과 구별되는 개념으로 사상과 문화,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이므로 인간과 관련된 모든 영역이 인문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인문학 열풍의 시작은 IMF 외환위기와 맞닿아 있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며 일에 매달려 조직에 충성을 했건만 돌아온 것은 매정하고 가혹한 현실이었다. ‘과연 나는 무엇인가?’, ‘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등의 회의와 성찰이 인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인문학의 위축은 효율과 생산성등 ‘당장’의 실용성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낮은 임금으로 가격경쟁력을 갖춰야만 패스트 팔로워가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그런 복제방식과 지식으로는 발전할 수 없다. 독창적 지식과 기술을 생산할 수 없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시도하고 프레임을 바꿔야 하는데 인문학이 키를 쥐고 있다. ‘인문학을 공부하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라는 낡은 질문에 ‘어떻게 밥만 먹고 사냐?’는 반문 또한 낡은 것이다. ‘인문학은 더 맛있는 밥, 더 몸에 좋은 떡은 준다.’로 바꿔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해줘야 한다.


인문학은 답을 가르쳐주는 학문이 아니다. ‘텍스트로서의 답’은 하나밖에 없겠지만 인문학이 말하는 답은 하나가 아니다. 답만 외우는 훈련으로 지식을 축적하는 방법은 더 이상 쓸모없고 인간이 컴퓨터를 따라잡지 못한다. 답만 외우는 방법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다양성과 자유를 억압할 뿐이며 기존체제나 권위에 순응하는 태도를 만들어내 결국에는 독이 되어 돌아온다. 문제해결 방법은 단하나의 정답만을 추종하는데 있지 않고 질문하는 힘을 기르는데 있다. 인문학은 질문하는 힘을 길러주는 바탕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목표는 질문을 통해 인간성의 회복과 인격의 완성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융합적 지식의 발현을 수반한다.



프롤로그(나처럼 인문학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대학에서 인간학을 개설한 이유는 첫 번째로 현재의 공교육 시스템으로는 대학교육에 필요한 기초교양을 쌓을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고교에서 온갖 과목을 가르치지만 졸업 후 써먹지도 못할 뿐 아니라 입시에만 매달리다보니 정작 필요한 기초교양을 갖추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학에서라도 기초교양을 익힐 기회가 있어야 한다. 둘째는 지성의 바탕이자 전제조건인 인성을 기르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과 지식사회의 각성이다. 전문화하는 지식의 틀에 갇혀 정작 인간으로서 갖춰야할 기본적 인성에는 소홀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있었고 실제 이로 인해 각종 심각한 사회문제가 야기된다고 판단되었다. 이런 배경으로 ‘모든 학문의 목적도 주제도 대상도 인간’이라는 명제가 성립되어 과정을 개설하게 되었다.


인간학 수업을 들은 학생이라면 세상과 삶을 조금이라도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랬고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해서도 이전과는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했다. 나는 인간학은 인문학이며, 인문학은 인간학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단순히 학문적인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교양을 함양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인문학을 통해 배운 것들을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하고 일상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인문학으로 유연해진 사고방식의 덕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은 궁극적으로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며, 인간에 대한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다. 이를 깨우쳐 인격의 도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인문학을 통해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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