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책은 도끼다(3) (박웅현著, 북하우스刊)
오늘은 드디어 박웅현씨의 마지막 강독입니다. 박웅현씨는 책의 말미에서 8번의 강독은 誤讀(오독)의 결과라고 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읽고 해석했다는 뜻인데요. 誤讀이란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부터 작가의 것이 아닌 독자의 몫입니다.’라는 표현과 맥을 같이 합니다. 작가가 어떤 철학을 갖고 글을 썼던 읽고 이해하는 것은 독자마다 모두 다릅니다. 제가 前作에 비해 Quality가 떨어진다는 주관적인 판단을 했다고 했는데 이것이 ‘誤讀’이며 ‘독자의 몫’이니 심한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7강, 소설이 말하는 우리들의 마술 같은 삶
요즘 ‘정주행’이란 말을 많이들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정주행’이라는 말을 어느 때 사용하십니까? 주로 드라마를 볼 때 사용하시죠?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정성이 있으시다면 이 책도 충분히 완독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드라마를 볼 때도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야 하고,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야 하고 꽤 신경을 써야 하잖아요. 또 드라마 안에서 얻는 즐거움, 삶의 교훈, 지혜가 여기에도 다 들어 있어요. 어떤 소설들은 20부작 미드보다 훨씬 재미있어요. 이해되지 않는 주인공과 어울리지 않는 캐스팅으로 불평할 일이 없습니다. 나만의 상상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읽을 수 있어요. 또 편집권이 우리 손에 있습니다.
반가운 월요일, 너무 긴 휴가, 먹기 싫은 술, 하기 쉬운 다이어트, 말 잘 듣는 고양이, 안 무서운 아내, 빈틈없는 남편, 만만한 인생, 그 후로 오래도록 행복하게.
제 생각으로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을 나열해 봤습니다. 이런 건 디즈니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죠. 그 이야기들은 한사람의 삶을 하나의 장르로만 보니 실제의 삶보다 훨씬 근사하게 보이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집에는 창이 여러 개 달려있습니다. 어떤 창으로는 깨끗하게 정돈된 거실이 보이지만, 또 어떤 창으로는 지저분하고 정돈 안 된 방도 보이죠. 우리의 삶은 드라마 같지 않아요.
세상이 다시 새로워졌다. 겨우내 얼음에 뒤덮인 채 부화의 순간을 기다리던 골짜기도 이제 껍질을 깨고 그 누렇고 촉촉한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에서는 새싹들이 저마다 때를 기다렸고 산들은 따뜻한 계절을 맞아 자기들의 피서지로 후퇴하고 있다.(골짜기가 얼음 밑에서 몸을 움츠리는 겨울철에는 산들이 호숫가의 이 도시로 바싹 다가와 성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에 나오는 아름다운 문장인데 봄이 오는 모습을 잘 표현했습니다. 황당한 사건과 장대한 서사가 복선에 복선이 깔려있어 집중을 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묘사까지 갖춘 이 책은 정말 미친 책입니다.
8강, 나만을 위한 괴테의 선물, 파우스트
‘파우스트’에는 자본의 논리, 과학, 사랑, 남녀관계, 지식인, 종교, 자연, 죽음에 대한 이야기 등 수많은 인간사가 녹아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전체적인 스토리를 따라 읽기보다 한 편의 시를 읽듯, 한 줄 한 줄 명언을 읽듯 자신만의 문장을 찾아나가며 읽어보시길 권하는 겁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줄 만한 한 줄을 찾겠다는 목표로 이 책을 읽어보며 어떨까요? 그냥 내 몸속에 들어온 ‘파우스트’를 만나 보셨으면 해요. 이렇게 펼쳐도 좋고, 저렇게 펼쳐도 좋은 책이 될 겁니다. 괴테가 우리에게 큰 선물을 줬다고 생각해요. 그 선물을 감사히 받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옥봉은 전주 이 씨 왕족가문의 서출인데 서녀는 첩이 될 수밖에 없던 시대였죠. 이옥봉도 조원이란 선비의 첩이 되었는데 조원은 이옥봉이 시를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0년 동안 시를 짓지 않다가 억울하게 관아에 끌려간 노비의 부탁으로 시를 한수 짓게 되는데 조원이 이를 알고 노발대발하여 이옥봉을 친정으로 쫒아냅니다. 이옥봉은 남편을 기다리며 줄곧 시를 썼는데 ‘규정’도 그중 하나죠. 풍류를 아는 손철주 선생이 해설하면 이렇게 됩니다.
有約郎何晩(유약낭하만)
庭梅欲謝時(정매욕사시)
忽聞枝上鵲(홀문지상작)
虛畵鏡中眉(허화경중미)
약속을 해놓고 님은 왜 늦으시나
정원의 매화는 막 떨어지려 하는데
나뭇가지에서 들리는 까치소리
나는 거울을 보며 헛되이 눈썹만 그리는구나.
손철주 선생이 해설을 해주시기에 제 마음대로 이렇게 말씀 드렸어요.
온다며
꽃 지잖아
새는 우는데
화장은 왜 한 대?
손철주 선생이 막 웃으시면서 젊은 사람들에게는 박선생처럼 해석해서 들려줘야 한다고 말씀 하시더군요. 왜 이런 에피소드를 들려 드리냐면 제가 이런 식으로 ‘파우스트’를 해석하려 합니다. 저는 이 작품에서 다뤄지는 철학, 신화와 문학적 성취에 대해 모르겠습니다. 또 이 책이 갖고 있는 문학적 권위가 너무 무거워 그저 제가 읽은 ‘파우스트’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너희 흔들거리는 모습들, 다시 가까이 다가오는구나.
일찍이 한번 이 흐릿한 눈앞에 나타났던 모습들이여
이번에는 나 너희들을 붙잡아, 놓치지 않게 되려는가?
괴테는 젊은 시절 ‘파우스트’를 집필을 시작해 중단한 뒤 몇 십 년이 지난 노년에 이르러 작품의 영감이 떠올랐으니 무척 반가웠지요. 하지만 아직 영감은 흐릿했고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첫 문장을 그렇게 시작한 겁니다.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을 보면 대장장이 두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어떤 여자가 바라본다는 사실 하나로 쇠를 경쟁적으로 두들기는 대목이 나오는데 ‘파우스트’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팔소리 우렁차면 우리들은 전진한다.
즐거움을 향해서든, 멸망을 행해서든, 이것이 돌격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처녀들과 성곽을 굴복시키고야 말리라.
그냥 앞만 보고 뛰는 거예요. 남자들은 이렇게 단순합니다. 파우스트가 사랑하는 마가레트의 방에 들어갑니다. 사랑을 시작하는 자의 시선에는 그녀의 작고 평범한 방이 성스러운 전당으로 여겨집니다.
반갑구나, 달콤한 저녁놀이여, 너 이 성스런 전당을 가득 채워주고 있구나!
희망의 이슬을 먹으며 애타게 살아가고 있는, 너 달콤한 사랑의 고통이여, 내 마음을 사로잡아다오!
이 가난함 속에 얼마나 충만함이 깃들어 있는가!
이 감옥 같은 곳에 얼마나 축복이 가득 차 있는가!
오오 사랑스러운 그 손길! 마치 신의 손과도 같구나!
이 오막살이도 그대로 인해 천국이 되는구나!
지금까지 여덟 번의 강독은 아마 저의 誤讀(오독)이었을 겁니다. 정독은 학자들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그저 책 속의 내용을 저마다의 의미로 받아들여 내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오독을 합시다. 그로인해 좀 더 풍요로워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