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웃는 마음(1) (이철수著, 이다미디어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판화에 새겨 넣은 그림과 글이 판화가 이철수의 삶과 철학이며 시다. 박웅현 작가가 ‘책은 도끼다’에서 이철수의 ‘좌탈’을 소개한 뒤 더욱 유명해졌다. ‘웃는 마음’은 판화에 곁들여 박원식이 묻고 이철수가 답한 대담집이다.


坐脫(좌탈): 坐脫은 스님들이 앉은 상태로 解脫(해탈), 涅槃(열반)하시는 것을 말한다. 판화에는 앉아계신 노스님 앞에 작은 찻주전자가 놓여있고 염주는 실이 풀려 염주 알이 흩어져 있다.


염주 끈이 풀렸다

나 다녀간다 해라

먹던 차는

다 식었을 게다

새로 끓이고,

바람 부는 날 하루

그 곁에 다녀가마

몸조심들 하고

기다릴 것은 없다

- 이철수 좌탈 -


몇 번을 읽어 보았다. 이전 이철수씨의 책을 본 적은 없으나 저자의 깊은 內工(내공)이 짧은 문장에서 느껴진다. 노승이 편히 앉아서 차를 드시는 시간, 그 사이 스님은 열반에 드셨고 차는 식었다. 스님에게는 생명과 같은 염주 끈이 풀렸으니 이승에 태어나 저승으로 떠나가는 代喩的(대유적) 표현이 기가 막히다.

노스님의 잔잔한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나는 떠나니 주위에 알리고 어느 날 불현듯 다시 올 테니 그동안 잘 살고 있거라.’ 간결한 문장으로 어떻게 열반에 든 노스님의 모습과 과정, 추후에 환생을 하겠으니 그간 몸조심하고 法力(법력)을 쌓고 있으라는 후배스님들에 대한 애정 어린 잔소리와 불교의 輪廻思想(윤회사상)까지를 어떻게 한 장의 판화와 짧은 글로 표현 했을까? 도끼로 머리를 때리고 비수로 가슴을 찌르는 표현력이다.


상갓집 등이

밝다!

등만 밝은가?

그이 생애도

밝았는가?

- 이철수 조등 -


여러 죽은 자들이

산사람 하나를

떠나보내는 날

만장 없다.

만장 쓸데없다!

- 이철수 상여 -


없을 무에 불이라...

뜨거울까 재가 남을까

빛이 밝을까 언제나

꺼질까 묻지 말아라.

타더라도 곱게 타고

- 이철수 무자화두 -


박원식: 愚問(우문) 하나 할게요. 사후엔 무엇이 있을까요?

이철수: 완전한 소멸, 아무 것도 없겠죠. 영혼이라는 것도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죽음 이후엔 아무런 감정도 없이,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산산이 흩어져갈 뿐이라고 생각해요. 완전한 無!, 그런 거.


마치는 글(박원식)

이철수 선생은 그림으로, 농사로 불철주야 마음을 닦는 사람이다. 그가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 들어박힌 건 마음을 닦고 궁구하기 위해서 였다. 부상 입은 고라니가 조용한 숲에서 상처를 치유하듯이, 가만히 강물에 몸을 맡기듯이, 그는 그렇게 농촌에 머물러 마음공부에 진력했다. 숲의 새들이 들려주는 노래에 귀 기울이고, 한 알의 씨앗이 꽃피우고 열매 맺는 드라마를 경이롭게 관람하고, 하늘과 땅과 바람이 기별하는 소식에 태만하지 않은 채 마음이라는 망둥이의 동향을 주시해 왔다. 그것으로 세속의 雜沓(잡답)을 벗어나 탕탕 자유로운 활보를 지속한 것으로 보인다.


현자란 눈을 크게 뜨고 유영하는 물고기와 같다 했던가. 이철수의 지향은 거기에 있다. 천체망원경을 들이대고서야 달의 분화구를 볼 수 있듯이 안으로 잠긴 마음의 문고리를 열고서야 사는 일의 본질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이다. 마음의 본질을 통찰해 현상의 혼란스러운 맥락들을 뛰어넘어 진상을 깨닫고, 타성에 젖은 인식을 수정하고, 그로써 삶을 통째로 긍정하는 일이 마땅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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