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 늙어갈 용기(1) (기시미 이치로著, 에쎄刊)

동백꽃 지듯 아프고, 늙어가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하여

by 물가에 앉는 마음

‘미움받을 용기’ 저자로 유명한 기시미 이치로교수는 ‘아들러’를 20년 넘게 연구했고 반려견 이름마저 ‘아들러’로 지을만큼 아들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일본 아들러 심리학회 고문이기도 하다.


여는 글: 동백꽃 지듯 아프고, 늙어가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하여

2006년 4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카테터 조치로 목숨을 부지하고 2007년 5월 관상동맥 바이패스 수술을 받았다. 분초를 아끼며 힘껏 일한 덕분에 직업적 평판은 좋았지만 일중독 생활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목숨을 깎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퇴원 후 날마다 걷고 또 걷는다.

걷는 것 자체는 시시한 운동이라 사진촬영을 취미로 즐겨보자는 마음이 싹터 올랐다. 수술을 앞둔 어느 날 수면위로 동백꽃이 흐르는 풍경을 발견했다. 동백꽃은 여느 꽃들 마냥 꽃잎이 떨어지고 시드는 것이 아니라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진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피고, 꽃말도 희망이라는데 한창 분방할 때 송두리째 무참히 떨어지는 맵시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멍울진 동백꽃 봉오리의 선혈에서 ‘나고 아프고 늙고 죽는다는 우리네 생로병사’의 심리, 그 쓰라린 적멸의 아름다움을 보았던 지도 모른다. 동백꽃 선혈처럼 생기 넘치는 청년들을 바라보며, 이를테면 그 젊은이들과 나이 든 자신을 견주어보며 허전하고 고독한 질투를 느끼는 나 자신에게 움찔 놀라는 그 야릇한 기시감을 맛보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2011년 3월 끔직한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다. 이승을 하직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람들이 무수히도 저승으로 떠나갔다. 심근경색으로 임종직전까지 내몰린 이래 ‘죽음’이라는 인생의 과제가 내 의식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러나 그 죽음은 ‘나의 죽음’, 곧 ‘개별적 죽음’이었다. 나는 동일본대지진이후 ‘나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의 죽음 곧 사회적 죽음’에 대한 문제에 골몰했다. 그때 세상을 떠나 이들을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나미로 목숨을 빼앗긴 사람들이 단지 삼인칭 존재인 ‘그(녀)들’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뒤부터 떨어진 동백꽃이 수면 위에 흐르는 것을 보면 쓰나미에 휩쓸려간 사람들의 아까운 목숨이 떠오른다. 옛날에 동백나무는 희망의 상징이었다고 하는데....,


나는 이 책을 통해 ‘불가항력’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인생의 과제’와 조우했을 때 인간이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를 궁리해보고 싶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생로병사, 요컨대 태어났으면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과제로 ‘아픔과 늙음 그리고 죽음’이 있다.

이제 일본인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 이전의 일상을 되찾을 수도 없다. 동일본대지진 후, 사진을 찍고 있어도 이전과는 마음이 확연히 달라져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지금이라도 빨리 이 아름다운 자연을 사진으로 남겨두자고 생각했다. 양손을 포갠 채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동일본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 그리고 나를 죽음의 문턱까지 내몬 심근경색 이후 도대체 무엇이 가능한 걸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이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동백꽃의 들숨날숨이 통째로 지듯 아프고, 늙어가고, 죽어가는 목숨들의 ‘생로병사 심리학’을 지난 몇 년 동안 한 땀 한 땀 쓰게 했다.


1장 대화할 용기- 타자에 대하여

2장 몸말에 응답할 용기- 아픔에 대하여

3장 늙어갈 용기 -나이 듦에 대하여

나이 듦을 존재의 차원에서

이십대 청춘은 늙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하기 어려울 듯싶다. 서른이 다가오고 주변에서 기력이 쇠약해 진다는 소리가 들릴지언정 그 말들을 정말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젊은이는 없을 것이다. 카테터 치료의 일인자인 내 주치의는 동맥경화와 협착이 노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이 듦은 신체적인 쇠약만을 일컫는 게 아니라 건망증이 심해지거나 외국어 단어를 외우지 못하는 등 부지불식간에 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잊어버린 것을 나중에라도 알아차리면 또 모를까. 어쩌면 나만 까맣게 모르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구나. 그것이 두렵단다.’

이윽고 우려하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알츠하이머 치매진단을 받은 것이다. 오랫동안 혼자 살다가 일상생활의 문제가 일어나고 부터 치매인 것으로 판명됐다. ‘왜? 도통 모르겠다.’ 병원에서 저항하는 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재택간병을 하게 되었다. 치매환자는 기억으로 인한 고통이 전혀 없게 되니 좋은 면도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잘못된 시각이다. 간병하면서 알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홀연 깨달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아버지의 당혹감은 엄청났다.

늙음을 둘러싼 문제는 당연히 신체나 지력쇠퇴만의 일이 아니다. 직책이 인간가치처럼 간주되는 사회에서는 정년을 맞아 직장을 떠나면 실의의 나날을 보내게 될 사람이 많다. 선생님으로 불리던 사람이 교사직을 떠나면 선생님 소리를 듣기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공동체에 속함으로써 안정감을 찾게 되는데 소속될 장소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로인한 불안은 대부분 공통적이다.

주위에서는 그가 타자(공동체)를 위해 공헌한 뿌듯함을 빼앗기지 않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자꾸만 늙어가는 그 자신도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젊음을 한탄만 할 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타인에게 기여할 수 있도록 안간힘을 써야 한다. 스스로의 가치를 느끼는 것이 노년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절실한 방법이다.


인간의 가치를 젊음과 아름다움에만 두었던 여성의 경우를 빗대보자. 갱년기로 접어들면 ‘타자의 시선을 끄는 방식에 아등바등 시달리고, 종종 자신이 부정한 짓이라도 당한 것 마냥 전전긍긍하는 한편 적의에 찬 방어 자세를 취하거나 시무룩한 불쾌감에 언짢아하는데, 더욱이 이 불쾌감으로 인해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고 아들러는 꼬집는다.

이처럼 생산성이나 미적가치로만 인간의 가치를 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온 사람, 역으로 생산적인 것이나 미적인 것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가치라고 생각해온 사람이 나이 먹고 늙어가면서 아무것도 못하게 되었을 때, 혹은 잔주름이 늘어가는 것을 슬퍼하면서 그런 현실을 보고만 있지 않겠다고 다짜고짜 결심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치매의 심리적 배경이다.

자식은 치매부모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손 쳐도 부모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어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생산성과 미적 기준만이 자신의 가치를 재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연히 어떤 행위로 타자에게 뭔가 기여나 공헌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자신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의 어머니는 마흔 아홉에 이른바 ‘아까운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나 그전에나 지금이나 나는 어머니에게서 어떤 행위를 나에게 베풀어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 그 자체’로 고마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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