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고 받아들여 어떻게 삶을 행복하게 영위할 것인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과제로 아픔과 늙음 그리고 죽음이 있다.’ 전편의 내용이 그렇게 밝지 못했다. 인간은 ‘피해갈 수 없는데도 피하고 싶은’마음이 너무 강하기에 ‘늙음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꺼리는 것이 아닐까?
후편도 꺼리는 내용을 다루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여 어떻게 삶을 행복하게 영위할 것인가?’의 측면에서 내용을 요약했다.
4장 책임질 용기- 죽음에 대하여
백사장은 사회, 바다는 운명, 파도는 죽음
철학자 미키 기요시는 인생을 모래사장에서 조개 줍기로 비유했다.
드넓은 백사장에서 작은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열심히 조개를 주워 바구니 안에 집어넣고 있다. 조개 줍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무의식적으로 집거나 의식적으로 집는다. 어떤 사람은 습관적으로 무기력에 빠지기도 하고, 쾌활하게 일하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노래도 부른다. 장난치기도 하고 무언가에 쫓기듯 부리나케 조개를 모으기도 하고...
이 백사장 너머에는 큰소리를 내고 있는 어두운 바다가 있다. 그것을 아는 이도 있고 모르는 이도 있다. 바구니 안에는 차츰 조개가 쌓이고, 그러다 갑자기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조개가 조금도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아연실색한다. 하나하나가 하찮은 것뿐이다. 그러나 이때 바다에서 파괴적이고 커다란 파도가 덮쳐 사람들은 맥도 못 추고 여지없이 어둠속으로 끌려가고 만다.
‘영원한 것과 단지 일시적인 것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는 뛰어난 영혼을 가진 사람만이 찰나의 시간이 주어져도 영원히 빛나는 조개를 찾아 줍고, 그 스스로 영원한 세계로까지 도약할 수 있다.’ -미키 기요시, 말하지 않는 철학 -
미키 기요시의 이 같은 비유는 이전에도 여러 번 읽은 적이 있었지만 동일본대지진의 쓰나미를 겪은 뒤에는 특히 차갑고도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언제든 다시 큰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상되는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또 나는 늘 죽음과 이웃하며 살아왔음을 강하게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인생에 대한 미키의 이미지가 나에게는 지나치게 어두운 것 같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야 좋을까
미국 최면요법가인 밀턴 에릭슨은 말한다.
‘나는, 사람이 태어난 그 날이 바로 죽기 시작하는 날이라는 사실을 마음속에 간직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수의 사람은 죽음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많고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가고 있는데 반해, 많은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장황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밀턴 에릭슨의 힐링 스토리 -
에릭슨은 죽음에 시선을 돌리지 않고 사는 데에만 집중하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라도 불가피한 일이지만 이 사실이 공포나 불안을 촉발해야할 필요는 없으며 인생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한 것임을 말하고자 함이다.
생의 일부로서의 豫期 불안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말한다.
‘죽음은 모든 나쁜 것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우리에게 그 무엇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죽음이 실제로 존재할 때에는 이제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에피쿠로스의 교설과 편지 -
이는 분명 하나의 지혜로운 견식이다. 타자의 죽음을 볼 수 있지만 나의 죽음을 체험할 수 없다. 자신이 죽고 나서야 처음으로 죽음을 체험하는 것이다. 지금 살아있는 동안에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삶과 죽음은 양립할 수 없다.
사람에게 죽음은 불가피하고 ‘사람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는 죽음이 닥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죽을 지경에 이르더라도 꼭 구제되리라는 불멸의 희망을 갖기 마련이다.
삶이란 유한하기에 어느 날 갑자기 피할 겨를 없이 찾아온 죽음을 앞두고 오히려 세상을 즐겁게 살아갈 용기를 갖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물론 여기에는 패러독스가 있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에게는 ‘살 용기’가 아니라 오히려 ‘죽을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는 순간까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인생은 있을 수 없다.
5장 행복해질 용기 -어떻게 잘 살 것인가
잘 살아가고 있다는 알리바이
살다보면 불완전한 세상의 현실을 바꾸고 싶다. 어찌하면 좋을까? 인간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선은 행복이다. 하지만 이것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기독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이 세상을 조금 더 선하게 만들고 나서 죽고 싶을 것’ 이라 말했고 아들러는 그렇게 할 때에 자신이 수행해야 할 과제와 역할이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을까? 또 우리가 해야 할 과제와 역할이 무엇인가? 아들러는 단언했다. ‘행복해 지려면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타자를 위해 공헌해야 한다.’ 아들러는 ‘타자 공헌’을 우리의 길잡이별로 본 것이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타자와 삶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타자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인간은 상호의존하며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먼저 내가 의존하는 타자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공헌’이다.
아들러에 따르면 ‘공헌은 자기희생이 아니다.’ 가령 저녁 식사 후 다른 가족은 TV를 보며 쉬고 있는데 혼자 설거지 하는 느낌을 상상해보라. 자기희생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고, 부당한 취급을 당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혹은 설거지가 자신에게 기쁨이 된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타자에게 공헌한다는 것은 베풂으로써 자신을 완성시키는 일이며, 동시에 타자에게 칭찬과 기쁨을 받음으로써 자신이 타자에게 도움 된다고 느낌으로써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이로 인해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환자도 타자에게 공헌할 수 있다. 존재 자체 즉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타자에게 공헌할 수 있다. 부모는 속을 썩이는 아이라도 병에 걸려 앓고 있다면 평소처럼 건강해지기를 바란다. 부모는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누구에게 혹은 무엇에게 공헌해야 하는가? 아들러는 말한다. ‘공동체 감성은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 있는 상태다.’ 사람은 타자와의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타인과 공생해야 하며 협력해야 한다.
인간이 살면서 마주하는 인생의 과제는 대인관계의 과제이며, 인간은 대인관계 속에서, 즉 이 세상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완수하고 세상을 개선해 나간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그러나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자기 자신만 생각해서는 행복해 질 수 없다고 말한다. 인간의 길잡이별인 타자 공헌이야말로 우리가 ‘잘 살아가고 있다=행복하다’는 알리바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