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2)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2) (조훈현著, 인플루엔셜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낚시하는 사람들은 ‘혹시나 대박’의 마음으로 조행 길을 나섰다가 ‘역시나 빈바구니’하는 것이 낚시이니 인생과 같다고 하고, 공 치는 사람은 알면 알수록 어렵다며 골프와 인생이 닮았다 한다. 조훈현씨 같이 바둑 두는 사람은 바둑판에 인생이 있다고 믿고 이 글을 쓴 듯하다. 오늘은 바둑 고수의 ‘생각법’을 마무리 하려 한다.


스승이신 세고에 선생님은 바둑보다 인성을 가르치셨다. 도박하지마라, 내기바둑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조목조목 늘어놓고 훈육을 하셨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나는 그저 선생님의 사람을 대하는 모습, 바둑을 대하는 모습, 정갈한 차림새, 규칙적인 생활을 그대로 보기만 했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흘려들었는데 나이가 들어 또렷이 생각나는 것은

‘살면서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야.’

‘사람이 되려면 인격, 인품, 인성을 모두 갖춰야 해.’

‘답을 주는 건 스승이 아니야. 그냥 길을 터주고 지켜봐주는 게 스승이지.’

‘이류는 서러워. 네가 이 길을 가기로 했다면 일류가 되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인생이 너무 불쌍해.’

인품과 인격을 어떻게 가르치겠는가. 매너는 가르칠 수 있어도 인품은 못 가르친다. 가르치려고 덤벼드는 것 자체가 어쩌면 그 사람을 망가뜨리는 것일 수도 있다. 인품, 인성, 인격은 그냥 보여주는 것 이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제자가 보고 배우게 하는 것이다.


1997년 동양증권배 결승에서 고바야시 9단과 맞붙었다. 제1국에서 종반이 다되도록 불리했는데 고바야시가 패착 했다. 어쩌면 기회가 올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더니 역전승을 하게 되었다. 제2국, 제3국에서도 같은 양상이었다. 초반전에는 밀렸고 관전자의 대부분이 고바야시가 이길 것이라 예측했으나 모두 역전승을 했다. 이를 두고 조훈현이가 너무 지독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원래 그렇다. 승부를 떠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원래 그렇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길 수 있다면 이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전의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내가 버텼던 이유는 이겨야 한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라 이길 기회가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바둑 9급 열 명이 바둑판을 들여다보고 고민을 해도 묘수가 보이지 않지만 1급이 보면 10초도 안 돼 묘수를 찾는다. 바둑에서 급수차이란 바로 이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판을 읽는 능력의 차이로 기업인들도 마찬가지로 직급이 높아질수록 정치, 경제, 사화, 문화 등 세상 전체가 돌아가는 것을 파악하여 빠르게 대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조금이라도 나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선생은 그냥 선생이 아니고, 상사는 그냥 상사가 아니다. 그들은 나보다 좀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나는 그저 내가 맡은 일만 열심히 하지만 상사는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도 보고 있고 다른 부서의 상황과 회사 전체의 경영상황을 살피고 있다. 하지만 오만에 빠진 사람들은 결코 고수가 될 수 없다. 자신이 부족하다 는걸 알고 계속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고수가 될 수 있다.


바둑프로들은 가능하면 많은 수를 내다보려고 노력한다. 기사에 따라 다르지만 50수를 읽는 기사도 있고 100수까지 읽는 기사도 있다고 한다. 다케미야 9단은 한수를 놓기 위해 5시간 7분이 걸린 적도 있다. 긴 시간동안 다케미야는 앞으로 전개될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썼을 것이다. 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수읽기를 하며 산다. 바둑과 마찬가지로 삶에서도 수읽기는 필수다. 사람을 만나서 나누는 대화, 직장에서의 행동, 집을 사거나 투자를 하는 등의 선택이 수읽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고수들도 수읽기에서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다. 꼭 이겨야 한다는 욕심이 꿈틀거리면 수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면 서너 수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수읽기를 제대로 한다는 것은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누구나 지는 것을 싫어한다. 될 수 있으면 아무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고 살아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이기고 싶다면 이긴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배워야 한다. 하나라도 더 질문해서 그 사람의 아이디어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50년 전만 해도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일본으로 유학 가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후지쓰배가 중단되고 도요다 덴소배도 중단되어 일본은 이제 단 하나의 국제대회도 개최하지 못하는 나라가 되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은 고립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한국과 중국은 두세 시간도 길다며 속기바둑을 두고 있는데 일본은 전통과 권위를 내세워 제한시간 8시간 바둑을 고수하고 있다. 일본에 바둑천재가 나오지 않고 인기도 시든 이유도 있지만 일본 바둑의 부진은 고립 때문이라 생각된다.

한국은 모두에게 문호를 개방한 오픈대회가 많아 경쟁하며 실력을 쌓았고 경제력을 앞세운 중국도 커다란 대회를 많이 개최한다. 어느 분야든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쟁과 교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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