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6.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김정운著, 21세기북스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저자는 심리학박사이며 여러 가지문제연구소장이기도 하다. 나이 오십이 되던 해 ‘이제부터 하고 싶은 일만 한다.’는 계획을 세운 후 교수직을 청산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림배우고 저작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명이고 TV에서 몇 번의 강의를 들어서인지 교수직을 그만두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많은 남자들의 로망을 실천한 그로부터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정상적이지 않게 보이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그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만을 편집해 봤다.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거의 다 만났는데 대부분이 비정상입니다. 그 자리까지 가기위해 미친 듯 살았고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 얼마나 많은 경쟁자들을 밟으면서 그 자리까지 갔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본인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 형편없이 망가졌다는 것을 모릅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지만 그가 가진 돈과 권력으로 아무 말을 하지 않을 따름입니다.

격하게 외로운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외로움이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정신이 없을수록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도 적게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사는데 그것이 성공적인 삶이라 생각하고 자꾸 모임도 만듭니다. 하지만 착각입니다. 바쁠수록 마음이 공허해 집니다. 형편없이 망가진 내 모습이 두려워 자꾸 그러는 것입니다. 먹고 살기 바빠도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놓치면 안 됩니다. 동물들은 상처가 생기면 나을 때까지 꼼짝하지 않습니다. 먹지도 않고 웅크리고 있는데 하찮은 동물도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겁니다.


외계인의 침공과 빙하기가 도래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100세까지 살게 됩니다.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입니다. 은퇴 후 3~4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우울해 하지 않고 끝까지 버틸 자신이 있나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외로운 존재임을 깨닫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외로움은 그저 견디는 것이고 외로워야 성찰이 가능합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외롭지 않게 됩니다.

만 50세가 되면서 결심한 것이 ‘난 이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한다.’입니다. 실제 그렇게 될 수 있겠냐마는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50년은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살았는데 이제부터는 ‘내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일본으로 건너왔습니다. 방구석에 앉아 결심을 했지만 정작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외치고 다녔지만 그런 삶을 위한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겁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명확치 않기에 그렇게 떠밀려 살면서 우울했던 겁니다. ‘먹고 살기 힘든데’라는 핑계로 내 삶의 근본적인 질문을 소홀히 했기에 짜증만 내고 살았던 겁니다. 그래서 거꾸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의 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만나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일찍 일어나지 않는다.’

‘쓰기 싫은 원고는 쓰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하고 싶지 않은 강의는 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이르자 화들짝 놀랐습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정말 어렵게 교수가 되었기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루 종일 강의해도 한 달 80만원 받던 강사시절, 교수임용에 떨어질 때마다 좌절을 했습니다. 실력이나 자격에서 내게는 상대가 안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밀려날 때마다 미칠 것 같아 한강에서 낚시하며 마음을 달랬습니다. 12년 동안의 교수생활도 열심히 했고 논문, 학회, 정부일도 많이 했습니다. 내 강의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학생들 가르치는 것이 제일하기 싫은 일이었습니다. 내가 학생들에게 그토록 짜증냈던 이유가 비로소 설명됐습니다.


사표를 제출하고 일본에 와서 4년간 참 많이 외로웠지만 얻은 것이 많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교토사가예술대학 단기학부를 졸업했습니다. 이제 나의 최종학력은 전문대졸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정상체위’만 고집하여 변태만화같은 성인만화를 그리려 했지만 지도교수님이 일본화를 배워보라고 해서 일본화 전공을 했습니다. 내가 좋아서 한 공부기 때문에 세계적인 화가도 되고 싶습니다.

공부하는 와중에 책도 3권 썼습니다. 미술과 심리학의 관계를 설명하는 일어책도 번역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총 6권의 책을 출판하는 내 인생의 가장 생산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이는 모두 외로움을 담보로 얻어낸 성과물입니다.


아직 내 그림이 형편없다는 것을 압니다. 2016년 전남 여수 바닷가로 내려가 화실을 마련해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것이 꿈입니다. 직업이 없으니 서울에 있으면 밤마다 사람들 만나고 놀러 나닐 확률이 높습니다. 이 나이에 사람들 만나봐야 상처주고 상처받는 일만 생각합니다. 여수에는 아무 연고도 없고 여수에서 그림을 그린다 하면 폼도 날 것 같습니다. 돈이 생기면 바닷가 작은 집을 사고 진돗개 두 마리를 키워보고 싶습니다. 아내의 반대로 아직 못 키웠습니다. 하루 종일 그림 그리고 글도 쓰고 졸리면 누워서 낮잠도 잘 겁니다. 여수에서 그림 그리며 가끔 찾아오는 친구들과 초등학생 수준의 음담패설이나 하며 늙어갈 겁니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다는 시인의 말이 백번 맞습니다. 단 한번 밖에 없는 내 인생, 내 맘대로 사는 걸 결코 두려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더구나 오십 중반의 나이에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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