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말 잘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듯 글 잘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잘못하면 舌禍(설화)와 筆禍(필화)를 당하는 일이 있고 잘하면 言辯(언변) 또는 筆力(필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조리 있고 간결하게 핵심을 전달하는 능력은 글의 제목에서부터 나타나는데 내 경우에는 글쓰기보다 제목 붙이는 것이 더욱 어려운 것 같다.
공기업은 매년 경영평가를 받아 인센티브를 정하게 된다. 평가교수단은 경영평가보고서로 작년도 실적을 평가하니 보고서 잘 쓰는 작업은 전 직원들 인센티브와 관련되어 있으니 매우 중요하다. 경영평가 보고서를 쓰는 후배님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선 제목을 잘 뽑아야 한다.’ ‘읽고 평가하는 사람의 눈길을 끌어야 하니 식상한 제목보다는 기발한 제목이 효과적이며, 제목만으로도 보고서 내용의 함축된 의미가 전달되면 더욱 좋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내가 보고서를 썼던 시절, 그렇게 멋들어진 제목을 뽑아냈는지는 의문이다.
예전 현장 전기팀장 시절 私報(사보)에 1년 넘게 連載(연재) 글을 기고한 적이 있었다. 끄적거리는 것이 취미이니 직원들과 보내는 일상을 그리면 한 꼭지의 원고가 금방 생산되지만 제목 붙이는 작업이 어려웠다. 원고를 다 써놓고 고민한 결과 연재이니 ‘전기팀 이야기’로 통일하면 어떻겠냐고 사보 편집자에게 고충을 털어놓았더니 편집자가 副(부) 제목을 뽑아 주는 일을 감당했다. 매월 원고를 보내면서도 어떤 제목이 붙여질까? 필자가 궁금해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사내 게시판을 이용하여 300여 회의 글을 연재한 요즈음에는 작명하는 고민을 하지 않지만 제목에 따라 조회 수가 좌우되는 것을 보면 제목이 구독자 마음을 훔치는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분명한 傍證(방증)이다. 하지만 최근 중앙지조차도 선정적인 제목을 뽑아 기사 내용을 과대 포장하는 것을 보면 도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만 보고 내용을 읽지 않는 독자들은 진실을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안타깝게도 우리 회사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이 안전사고로 사망했다. 보기 드문 안전사고였다. 해당 작업을 수행한 한 명의 직원은 베테랑 잠수부였고 협력직원은 잠수부는 아니고 잠수 일을 도와주는 보조 직원이었다. 직원이 수심 1미터, 해수 거품 2미터인 상황에서 작업하다가 신호가 없어 협력직원이 생명줄을 당겨보니 호흡기만 딸려 나왔다. 협력직원은 정식직원과 오래도록 일을 같이 한 직원으로 ‘우리 형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며 관리자의 만류를 뿌리치고 호흡기를 끼고 물속에 뛰어들어 본인도 사망한 사건이다.
만약 신문이 협력직원의 의협심과 동료애에 대해 부각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美談(미담)으로 소개되었을 사건이 안전 불감증... 등으로 기사화되었다. 만약 기사 제목이 ‘동료의 살신성인 그러나...’ 등이 되었다면 亡者(망자)에게도 명예로운 일이었을 것이나 원전비리, 원전사고로 몸살을 겪고 있는 즈음 ‘안전 불감증’이란 제목을 뽑았으니 망자의 명예도 훼손된 것이 아닐까? 물론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업에 종사한다고 손가락질을 받는 전력업계 종사자들의 의욕도 저하시켰다. ‘신의 직장’이 왜? 위험하고 병원과 학교도 없는 奧地(오지)에 있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물론 안전사고가 났으니 안전 불감증이란 기사의 제목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도매금으로 싸잡아 매도하는 말이나 글은 얼마나 쓰기 쉽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것인지 기사를 쓰는 사람들은 염두에 두지 않았을 듯하다.
언론인으로 오래 재직하셨던 선친께서는 후배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매번 기자의 자세와 정신을 강조하셨다. 기자들은 ‘엠바고(Embargo:일시적 보도 중지)’와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 보도 제외)’를 지켜야 하고 거론된 당사자의 권익을 존중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당신도 경향신문, 서울신문에서 편집부장, 주간국장, 논설위원을 하시면서 이를 충실히 지키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선친께서는 당시에 파격적인 ‘선데이 서울’이라는 주간지를 만드셨는데 연예인들의 醜聞(추문)은 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보도를 자제하고 사건의 윤곽이 밝혀질 때쯤 기사화하셨다. 신문이란 빠른 보도가 생명이지만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誤報(오보)가 해당 연예인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에 조심하셨다. 덕분에 누나 결혼식에 앙드레김을 포함한 수많은 연예계 인사들이 찾아와 축하했는지 모른다. 앙드레김 선생의 본명은 김봉남인데 초창기에 앙드레김이 아닌 김봉남으로 기사화되었다면 앙드레김이 디자인한 옷이 그렇게 고상해 보이거나 유명해지지는 않았을 듯하다.
칼은 육체에 상처를 남기고 말과 글은 마음을 다치게 한다. 말도 잘해야 하지만 글도 잘 써야 한다. 남의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