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 (2)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 (2) (최진석著, 위즈덤하우스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은 인문학을 단편적인 지식으로 외우기 바쁘다. 하지만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단순히 인문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인문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데 있어야 한다. 노자가 무위자연을 이야기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당시 노자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왜 ‘생각’할 수 없게 되었을까? 외부로부터의 강한 신념, 이념, 가치관, 지적 체계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반면 ‘경계에 있다.’는 것은 신념과 이념을 벋어 난 자유로운 상태를 말하며, 통찰을 하는 사람은 바로 이 경계에 있는 사람이다. 결국 신념을 벗어난 ‘나’로 돌아가야 통찰력, 인문적 사고력이 생긴다. 노자를 만남으로 인해 생각의 틀을 깨는 정신적 자유를 회복하고, 진정한 덕성 진정한 행복을 가까운 일상에서 만날 수 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노자 사상의 기본은 자연의 질서를 인간의 질서로 응용하자는 것이다. 노자는 자연의 질서를 ‘도’라고 했고, 세계의 영역을 ‘유’의 영역과 ‘무’의 영역으로 나누고 이 줄의 꼬임으로 세계가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노자사상에는 ‘유’와 ‘무’가 공존한다. 존재론적으로, 시간적으로, 논리적으로 선후의 차이는 없다.

흔히 동양철학이라 하면 텍스트가 굉장히 오래되어 오래된 학문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동양철학은 신흥학문이다. ‘철학’이라는 번역어가 동양에 들어와 학문으로 본격 진행되는 것이 1847년부터 이다. 1847년 일본 학자 니시 아마네가 ‘philosophy’라는 단어를 ‘哲學’이라 번역하면서 동양 학술계와 사상계로 철학이라는 단어가 진입하게 된다.

동양철학이란 동양의 오래된 사상적 자료들을 철학적으로 다루는 학문인데 서양 사람들이 말하는 ‘철학’이라는 분야의 학문이 사실상 동양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철학’으로 다루어질 수 있는 사상적인 내용들은 있었지만 ‘철학’이라는 독립적인 방법론으로 생각의 틀을 건립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면 철학이란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양이 철학을 받아들이던 시대적 분위기를 먼저 살핀 후 철학이 무엇인지 그것이 노자를 이해하는데 왜 필요한지를 풀어나가야 한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중국역사 5천 년간 두 번의 축복이 있었는데 하나가 한 나라말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것이고 도 다른 하나는 춘추전국시대부터 일어난 중국고유의 사상이 발달하면서 그 사상이 제공한 세계관으로 중국사회가 잘 작동된 것이다.

중국에서 인문사조의 시작, 즉 철학이라고 하는 본격적인 ‘생각의 탄생’은 춘추 말에서 전국 초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공자는 ‘주나라는 하나라와 은나라룰 거울삼아 인문적 특색이 찬란하게 빛났다. 나는 주나라를 따를 것이다.’ 말했다. 신이 지배하던 은나라와 달리 인문적 분위기가 팽배하고 새롭게 전개된 효율적 제도들로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주나라 초기를 공자는 매우 이상적인 시대로 간주했다.

춘추전국시대부터 발전한 중국고유의 사상이 최고조에 이르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것을 의미한다. 철학이 한계에 이르렀다 함은 새롭게 전개되는 사회, 경제적 변화를 기존의 세계관이 담아내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때부터 중국은 정치적 혼란과 분열의 국면이 형성된다. 이 틈을 비집고 한 나라말 중국에 유입된 불교가 중국사상계에 본격적으로 끼어든다. 불교는 완벽하게 발전된 철학으로 중국에 유입되어 새로운 철학을 준비하지 못한 중국은 불교라는 외래 철학과 갈등이 빚어진다. 갈등, 투쟁, 융합하는 과정을 몇 백 년 거친 후 중국의 토종종교인 도교가 전면에 나서 불교를 나름의 색채로 완전히 소화한 후 중국 고유의 사상으로 재정립합니다. 불교를 받아들여 성현영이 완성시킨 성숙된 도교이론을 ‘重玄學’이라 부른다.

당나라 말엽부터 중국 지식인들이 유학의 부흥을 추진 송나라 때 완성한 유학을 ‘新儒學’이라 하는데 여기서 新이란 형이상학적 체계를 갖췄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불교가 도입되며 도교와의 융합을 거쳐 신유학, 주자학 등이 탄생하고 명대의 양명학, 청대의 고증학으로 변화됩니다.

청나라 초기만 해도 서양과 중국의 경제적 격차는 없었으나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막대한 ‘부’와 ‘힘’이 영국 내부에 머물지 않고 외부로 확산되는데 바로 제국주의입니다. 그런데 이때 중국은 철학적 한계에 도달하여 영국 앞에 굴복하게 된다. 아편전쟁을 계기로 서양은 동양에 대해 현실적인 우위를 점하게 되고 사상적, 군사적, 경제적 주도권이 서양으로 넘어가게 된다. 열등감을 느낀 동양은 어떻게 하면 서양을 따라잡고 서양을 배울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중국은 대포, 군함제작 등 군사기술을 배우려 했는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기술문명을 배후에서 가능하게 해주는 힘, 제도를 고민한 끝에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수용하게 된다. 중국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수용하며 과거와의 단절과 새로운 중국건설을 시도했다.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이 전통과 단절을 감행한 것을 부정적으로 보지만 외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단절을 결정했던 힘은 중국의 잠재력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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