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
신영복은 1941년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육사 교관을 거쳤다. 1968년 통혁당사건으로 무기징역형, 20년 만인 1988년 가석방 후 1989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하다 2006년 퇴임 후 석좌교수가 됨. 이야기하고 논의한다는 뜻의 ‘談論’은 신영복교수의 강의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아래 내용은 첫 학기 첫 강의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 다른 책은 마음에 드는 몇 구절씩 서머리해서 소개했는데 신 교수님 첫 강의 내용이 너무 마음에 들어 여러 강의 내용과 합쳐 놓으면 실례될 것 같다. 첫 강의 중 공감가는 부분만 발췌했다.
강의 중 터득한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교사와 학생이란 관계가 비대칭적 관계가 아니란 것입니다. 옛날 분들은 가르치는 것을 깨우친다고 했습니다. 모르던 것을 이야기만 듣고 알게 되는 경우는 없고 이미 알고 있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불러내는 것입니다. 둘째는 설득하거나 주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입니다. 내가 수형생활 20년간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게서 깨달은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이라는 결론입니다.
오늘은 첫 강의이니 공부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공부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공부해야 합니다. 세계는 내가 살아가는 터전이고 나는 세계 속의 존재이니 공부란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한 공부입니다. 자연, 사회, 역사를 알아야 하고 나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공부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으로 세계인식과 자기 성찰이 공부입니다. 옛날에는 공부를 구도라 했습니다. 그리고 구도에는 반드시 고행이 전제됩니다. 그 고행의 총화가 공부입니다. 공부는 고생 그 자체입니다. 고생하면 세상을 잘 알게 됩니다. 철도 듭니다. 이처럼 고행이 공부가 되기도 하고 방황과 고뇌가 성찰과 각성이 되기도 합니다. 공부 아닌 것이 없고 공부하지 않는 생명은 없습니다.
우리는 공부를 대체로 고전공부에서 시작합니다. 고전 공부는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지적유산을 물려받는 것입니다. 역사와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합니다. 고전 공부의 목적은 과거, 현재와의 소통을 바탕으로 하여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공부는 세계인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창조입니다. 고전공부는 고전 지식을 습득하는 교양학이 아니라 인류의 지적 유산을 토대로 하여 미래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실천입니다.
공부의 시작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하는 여행 중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낡은 생각을 깨뜨리는 것이며 오래된 인식틀을 바꾸는 탈 문맥입니다. 그래서 니체는 ‘철학은 망치로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갇혀 있는 완고한 인식틀을 깨뜨리는 것이 공부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갇혀 있는 문맥이 많습니다. 중세의 마녀 문맥이 한 예로 수많은 마녀가 처형당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마녀라는 것에 승복하고 처형당한 사람도 많습니다. 완고한 인식틀입니다. 공부는 우리를 가두고 있는 완고한 인식틀을 망치로 깨뜨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 공부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생각이 머리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잊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어머니가 떠나간 자녀를 잊지 못하는 마음이 생각입니다. 생각은 가슴이 합니다. 생각은 가슴으로 그것을 포용하는 것이며 관점을 달리한다면 내가 거기에 차여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가슴 두근거리는 용기입니다.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애정과 공감입니다. 우리에게 또 하나의 먼 여행이 남아 잇습니다. ‘가슴에서 발끝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삶의 현장을 듯합니다. 애정과 공감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공부는 세계인식과 자기 성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공부이고 공부가 삶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것이 실천이고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공부가 세계를 변화시키고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공부는 ‘머리’가 아니고 ‘가슴’으로 하는 것이며 ‘가슴에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세상에는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두 종류가 있는데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에 자기를 잘 맞추는 사람이며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역설적인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세상이 조금씩 변화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공부는 변화와 창조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와 창조는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 이루어지는 것에 이야기할 것입니다. 중심부는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보루일 뿐 창조공간이 못됩니다. 인류 문명은 항상 변방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리엔트에서 그리스 로마로, 다시 알프스북부의 오지에서 바흐, 모차르트, 합스부르크 600년의 문화가 꽃핍니다. 그리고 다시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이동합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서쪽 변방의 진나라가 통일했습니다. 글안과 몽고와 만주 등 변방의 역동성이 끊임없이 중심부에 주입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방’의 의미는 변방성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변방이 창조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전제가 있습니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합니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청산되지 않는 한 변방은 결코 창조공간이 될 수 없습니다. 중심부보다 더 완고한 교조적 공간이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교실은 그만큼 자유롭고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미 말씀드렸듯 강의라는 프레임을 깨고 우연의 점들을 여기저기 자유롭게 찍어 나갈 것인데 여러분들은 그 점들을 이어서 선을 만들고 장을 만들어 여러분들의 지도를 완성해 가는 수고를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교실이 세계와 인간에 대한 각성이면서 존재로부터 관계로 나아가는 여행이기를 바랍니다. 비근대의 조직과 탈근대의 모색이기를 기대합니다. 변화와 창조의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