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언어 碩果不食
단돈 18000원으로 신영복 교수님의 이렇게 훌륭한 강의를 듣는 것은 행운이고 행복입니다. 고전은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 철학이자 정신이나, 신영복 교수님의 강의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 배워 터득한 삶의 지혜이자 교훈이 아닌가 합니다.
새벽같이 출근하셔서 사무실을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니는 손수 농사지으신 과일이나, 수제 냉이차 등 진귀한 간식거리를 나눠주시고 제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책을 같이 읽으시는 벗이기도 합니다. ‘談論’은 제가 읽자마자 벗에게 추천해 드린 책입니다.
희망의 언어 碩果不食(석과불식: 씨 과일을 먹지 않는다.) 석과불식의 의미는 마지막 남은 씨 과일은 먹지 않고 남겨두어 씨로 받아 심는다는 뜻으로 지혜이며 동시에 교훈입니다. 내가 가장 아끼는 희망의 단어이기도 하고 20년을 견디게 한 화두였습니다.
씨 과실은 새 봄의 새싹으로 돋아나고 다시 자라서 나무가 되고, 이윽고 숲이 되는 장구한 세월을 보여줍니다. 한 알의 외로운 석과가 산야를 덮는 거대한 숲으로 나아가는 그림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찹니다. 역경을 희망으로 바꾸어 내는 지혜이며 교훈입니다. 이제 이 교훈이 우리에게 지시하는 소임을 하나씩 짚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葉落(엽락)입니다.
‘환상과 거품’이라는 잎사귀를 떨어 뜨려야 합니다. 논어의 ‘四十不惑’과 같은 뜻으로 가망 없는 迷惑이나 幻想을 더 이상 갖지 않는 것이 불혹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품을 청산하는 단호함입니다. 개인의 삶도 그렇고 사회도 마찬가지로 어려움에 직면할수록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환상과 거품을 청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體露(체로)입니다.
엽락 후의 나무는 칼바람에 뼈대가 드러나고 나무를 지탱하는 구조가 드러나는 나목상태입니다. 우리는 구조와 뼈대를 직시해야 합니다. 환상과 거품에 가려져 있던 우리의 삶과 우리 사회의 근본적 구조를 직시해야 합니다. 뼈대는 크게 세 가지로 첫째 정치적 자주성입니다. 둘째는 경제적 자립성이며 셋째는 문화적 자부심입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뼈대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뼈대란 우리를 서 있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糞本(분본)입니다.
‘糞’은 ‘거름’입니다. 분본이란 뿌리(本)를 거름(糞) 하는 것입니다. 낙엽은 뿌리를 따뜻하게 덮고 있습니다. 뿌리가 곧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자체가 최고의 가치입니다. 엽락과 체로에 이어 무리가 할 몫이 분본입니다. 뿌리에 거름 하는 것인데 뿌리가 사람이며 사람을 키우는 것이 분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쌀이나 사람이나 무엇이든지 돈으로 구입합니다. 거름하고 키우고 기다리는 문화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거름 하고 키우고 기다리는 일이 불필요하고 불편하게 여기는 우리들이 정작 잃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사람을 거름 하기는커녕 해고, 구조조정, 비정규직... 사람으로 사람을 거름 하고 있습니다. 광우병은 소에게 소를 먹여 키워 생긴 병인데 사람을 거름으로 사용하여 사람을 키운다면 어떤 병에 걸리는지 연구가 없지만 나는 광우병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이 ‘끝’입니다. 절망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 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입니다. 최고의 인문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욕망과 소유와 거품, 성장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고, 우리의 삶을 그 근본에서 지탱하는 정치, 경제, 문화의 뼈대를 튼튼히 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이고 희망의 언어입니다.
‘석과불식’으로 마지막 강의를 끝내는 이유를 여러분들이 다시 한번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한 알의 씨 과실은 새봄의 싹이 되고 나무가 되고 숲이 되는 장구한 여정으로 열려 있는 것입니다. 결코 작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강의를 마치면서 여러분에게 두 가지 당부를 하는데 하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에 관한 것이며, 또 하나는 먼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드리는 길채비의 말씀입니다.
수형생활 10년 차인 옆방의 재소자가 자살을 했습니다. 나는 20년 무기징역으로 살아오는 동안 수시로 고민했습니다. 나는 왜 자살하지 않고 기약 없이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가?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볕’입니다. 겨울 독방에서 만나는 햇볕은 길어야 두 시간이고 크기도 작지만 신문지만 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다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습니다. 신문지만 한 햇볕만으로도 세상에 태어난 것은 손해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 햇볕을 떠올리는데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받지 못했을 선물입니다.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가 햇볕이라 한다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루하루의 깨달음과 공부였습니다. 햇볕이 ‘죽지 않은’ 이유였다면 깨달음과 공부는 ‘살아가는’ 이유였습니다. 여러분의 여정에 햇볕과 함께 끊임없이 성찰이 함께하기를 빕니다.
다음으로 ‘자기의 이유’에 관한 것입니다. 네덜란드 작가 반 에덴의 동화 ‘어린 요한’의 버섯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는데 길가의 버섯 하나를 가리키며 ‘이건 독버섯이야’하고 가르쳐 줍니다. 버섯은 충격을 받고 쓰러지는데 옆의 버섯이 위로합니다. 그가 베푼 친절과 우정을 들어 절대로 독버섯이 아님을 역설하며 위로했지만 자기를 정확하게 독버섯으로 지목했다며 상심에 빠집니다. 위로하던 최후로 친구가 하는 말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독버섯’은 버섯을 식용하는 사람들의 ‘식탁의 논리’입니다. 버섯은 모름지기 ‘버섯의 이유’로 판단해야 합니다. ‘자기의 이유’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自己의 理由’를 줄이면 ‘自由’가 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내가 좋아하는 글귀를 소개합니다.
言約(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돌이켜보면 한 학기 동안 수많은 언약을 강물처럼 흘려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언약들이 언젠가는 여러분의 삶의 길목에서 꽃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