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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 의정부 시장통닭과 初心(초심)

우리는 매일매일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초심을 잃지 말라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취업에 성공하여 일을 시작할 때도 선배들이 해주는 이야기는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것이고 초보자 시절에는 열심히 초심을 갈고닦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초심을 잃어 업무를 망치고 사업을 망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업무에 익숙해지면 매너리즘에 빠져서 하던 대로 답습하고 프로크루스테스의 철 침대처럼 사고의 틀을 견고히 하기 때문입니다. 창업초기 ‘고객만을 위해서’ ‘오직 맛을 위해서’라는 초심은 사업안정기에 접어들게 되면 온데간데없고 가격올리고 수익 극대화 방안을 찾는 데만 전념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얼마 전 TV를 보니 의정부시장에서 시장통닭 파시는 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프랜차이즈 통닭만 먹는 시대에 시장통닭으로 성공한 드문 사례입니다. 1년 매출이 10억이 넘을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성공한 맛집인 듯합니다. 우리나라에는 통닭집이 46,000개 정도가 있고 프랜차이즈 통닭집은 10집이 창업하면 2년 내에 6.5집이 망한다는 이 시대에 시장통닭으로 20년을 버틴 드문 성공사례이니 TV에 소개되었겠지요. 튀김통닭 한 마리 6000원, 두 마리 11000원으로 저렴한 가격도 성공요인 중의 하나일 겁니다. 하지만 맛없다면 고객들이 줄 서서 통닭 익기만을 마냥 기다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20년 전 남편은 빚지고 달아났고 아주머니는 어린아이 키우면서 닭을 튀겼습니다. 처음 튀기다 보니 익지 않은 통닭을 내기도 하는 등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만 뜨거운 기름솥 앞에서 20년을 버티다 보니 튀김옷 반죽하고 닭 익는 것은 눈짐작으로 아는 달인이 되었습니다. 촌스러운 색깔의 플라스틱 계량바가지가 20년 되었고 찌그러진 국자도 20년 되었답니다. 주인아주머니 마음도 플라스틱 바가지나 찌그러진 국자같이 한결같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개업 초기와 같이 음식재료를 아끼느라 소스를 만드는 물엿을 솥에 부으면서 한 방울이라도 아끼기 위해 뜨거운 물로 물엿 통을 헹굽니다. 싼 가격의 통닭을 먹으면서 소스를 너무 많이 달라고 하기에 소스를 맛없게 만들까도 생각했지만 소스를 만들기 시작하면 원래 배합비율을 지키게 된답니다. 주인아주머니 말씀과 인상에서 초심이 20년간 지속된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여자, 남자 만남도 비슷합니다.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시작하는 남녀관계는 얼마나 풋풋하고 아름답습니까? 하지만 저를 비롯해 많은 부부들이 결혼해서 풋풋한 관계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은 연애시절이 있었는데 결혼 후에는 ‘낚은 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막말을 거리낌 없이 해대는 것은 왜일까요? 연애시절에는 무거운 것도 아닌데 무겁다고 연약한 척하다가 아줌마가 되니 손이 끊어질 듯 무거운 장바구니를 씩씩하게 들고 다니는 것은 왜일까요? 주먹 한방에 깡패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더라 하는 젊은 시절 허풍과 호기는 어디로 가고 중년에 접어드니 아내 그늘에 숨고 싶어지는 것은 왜일까요? 영원히 사랑하고 아껴주겠다는 프러포즈는 초심이 아니라 공수표였던가요? 아니면 서로 간에 신비감이 없어진 것일까요? 이야기하다 보니 제 이야기 같고 오래 하면 제 입지가 좁아질 것 같아 그만 그치겠습니다.


처음 하듯이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습관적으로 살기 쉽습니다.

어떤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할 때에도

처음 대하듯 하기가 어렵지요. 우리가 가보지 않은 곳을

처음 구경해 보면 신기합니다. 그래서 자세히 봅니다.

인생도 그렇게 해보세요.

신기한 마음으로 인생에 임해 보세요.

어떤 일이든 새로운 마음을 내서

정성을 다해서 처음 하듯이. - 법륜스님 ‘즉문즉설 중에서’ -


우리는 매일매일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해도 어제와는 다른 시점이니 새로운 일입니다. 20년간 닭을 튀겼어도 오늘 닭을 튀겨내는 일은 새로운 일입니다. 20년 단골들도 닭을 사러 오지만 오늘의 고객은 어제와는 다른 새로운 고객입니다. 일 뿐만 아니라 매일매일이 새로운 것이지요. 저는 조만간 의정부시장 시장통닭집 앞에 줄 서서 주인아주머니의 초심을 맛보고 배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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