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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 공개경쟁 입찰

막걸리&포도주 폭탄주

by 물가에 앉는 마음

우리 회사 매출 대부분은 수의계약에 의해 발생되었으나 2001년 발전사가 분사된 이후 경쟁 입찰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수의계약 폐해는 후발업체 시장진입을 막는 것이라고 하지만 부적격 업체 난립을 방지하고 관련 비리를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발전정비시장에서 우리 회사가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수의계약이라는 보호막이었고 수주 관련 비리가 없었던 것도 계약방식 덕분이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민간정비업체에 기술이전을 하고 육성하라는 것은 托卵(탁란)으로 뻐꾸기 새끼를 키우라는 것과 흡사하다. 뻐꾸기는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에 알을 낳는다. 먼저 부화한 뻐꾸기 새끼들은 본능적으로 오목눈이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고 주인행세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현재는 많은 민간 기업들이 발전설비 정비시장에 진출해 있다. 물론 정비시장에서 민간 기업들이 완전한 기술자립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력사업처 또한 매출의 대부분은 한전과의 수의계약에 의해 발생되지만 올해 매출의 15%는 경쟁 입찰을 통해 발생될 것이다. 미국 또는 중국 수출의존도가 높아지면 해당국가 불황이 우리나라에 전이되는 것과 동일하게 한전 매출의존도가 높아질수록 한전정책 변화에 크게 영향받을 수 있다. 대 한전 매출의존도가 50%선이 되면 안정적으로 경영을 할 수 있겠으나 상황이 그리 녹녹하지는 않다. 개인적인 희망사항이자 단기적 목표는 대 한전 매출의존도를 70%까지 낮추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경쟁 입찰을 통해 연 200억 원 정도 매출을 올려야 한다.


발전과 원자력 분야와는 달리 전력사업처가 입찰에 참가하는 전기철도, 송전선로건설 등 조달청발주를 통한 전기공사분야는 경쟁률이 살인적으로 높다. 건축물 전기공사분야는 50억 원 미만 공사는 1700여 개 업체가 참여할 수 있으므로 산술적 낙찰확률은 0.06%이며 100억 원 미만 공사분야는 0.02%이다. 송전선로건설공사는 이보다 높은 0.26%, 1.25%이며, 가장 경쟁률이 낮은 전차선로공사분야는 1.00%, 2.86%로 경쟁시장의 Blue Ocean에 해당되나 유자격업체는 계속 증가할 것이므로 입찰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다.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판다고 낙찰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지난 3년간 우리 회사 입찰 성향을 분석해 보니 낙찰가대비 높은 금액을 투찰 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하향 조정하기로 했다. 입찰담당자들은 최저낙찰가 밑으로 입찰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최저낙찰가보다 낮게 입찰하여 탈락하게 되는 것을 소위 ‘똥통’에 빠졌다고 하는데 ‘똥통’에 빠지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입찰담당자 자존심도 작용하고 있었다.

하향조정하면서 담당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금액이 낮아서 또는 높아서 낙찰받지 못하는 것은 똑같이 떨어진 것이다. 공개경쟁입찰에서 2등은 꼴등이나 똑같으니 사격에서 영점조정을 하듯 시장분석을 하여 정교함을 높이면 된다. 나는 ‘똥통’에 빠진다고 해도 담당자를 나무라지 않겠다. 얼마나 낙찰가에 근접하는 것에 비중을 두겠다.


운이 좋아서였는지, 분석 결과였는지 몰라도 연초부터 12억, 46억, 5억짜리 3건을 낙찰받아 벌써 전년도 수주액 57억 원을 상회하는 61억 원의 수주실적을 올렸다. 우리 회사만 입찰분석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경쟁사의 투찰가격도 갈수록 정교해져 몇 천 원 차이로 등수가 판가름 나는 시장이라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낙찰받은 기분 좋은 날이니 막걸리 한잔해야 하는데 조금은 밋밋한 기분이 들어 축하주를 한 병 준비했다. 최근 독주를 좋아하지 않기에 축하주로 양주대신 와인 한 병 갖고 갔다. 포도주를 한잔씩 마신 후 막걸리&포도주 폭탄주, 막걸리에 포도주를 타면 텁텁한 맛이 중화되기도 하지만 색깔도 아주 곱다. 왜 어리석게 비싼 와인을 막걸리에 타서 먹는지는 몰라도 세 번의 막걸리&포도주 폭탄주를 먹었는데 올해는 와인 10병을 샀으면 좋겠다. 입찰담당자가 치열한 경쟁을 이기고 낙찰만 받아온다면 빚내서라도 와인을 사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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