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교수를 무림고수라 칭했었는데 이철수씨의 글도 뒤지지 않는다.
그림으로 시를 쓴다는 이철수의 영어판 판화집이다. 민중판화가였으나 90년대 들어 일상, 자연, 禪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저자 최진석교수를 무림고수라 칭했었는데 이철수씨의 글을 보면 뒤지지 않는다. 체계적으로 공부해 얻은 철학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마음에서 얻었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봄소식
마당에
개똥이
다 녹는다
좋은날이다
꽃도
멀지않다.
풍경소리
밤새
바람 거칠어
풍경이
몸살을 한다
존재가 모두 이렇게,
몸 있는 동안
바람을 타기마련
참새
참새는
높이 날지 않는다
낱알이나 살펴
배를 채울 뿐,
멀리 굽어볼 일이
없기 때문이지
참새처럼 사는
인생들이
가장 많은 법
구름 없는 날
큰 산에
키 큰 나무들
제일 높은 줄 알았더니
작은새 한 마리
허공을 날아
산을 넘네
일급수에 사는
일급수 어류,
일급수 사람,
탁하면 죽는,
가여운...
목숨들.
길
당신이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면, 언젠가 사람들이
길이라고 부르겠지.
가을 길
마음에
바람이 일어
쏟아지는
낙엽
긴 편지
당신에게
뭐라
한마디
하고 싶은데
...
웃어와서
아내가
문득
웃어왔다
마주 웃는다
다 되었다
서평: 이문재/ 시인
이철수 판화를 한마디로 압축하라면 마음입니다. 어느 경지에 올라가 있는 마음이 있습니다. 선이나 노장사상의 향기가 물씬 풍기기도 합니다. 그의 판화에는 죽비로 내리치는 질타가 있고, 연민이 배어나는 염려, 인간과 자연에 대한 환호, 고단한 삶에 대한 위무, 일상에 대한풍자가 있습니다. 한편으로 세속의 한 켠에서 어쩌지 못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세속의 모퉁이에서 마음 때문에 쩔쩔매는 모습에도 눈길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