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4. 文鎭(문진), 홍보용품

30년 된 Limited Edition

by 물가에 앉는 마음

서예가들이 글씨 쓸 때 종이가 움직이거나 말려 올라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文鎭(문진)을 사용하지만 나는 독서할 때 책장을 고정시키는 용도로 사용한다. 책 읽으며 인상적인 문구를 발견해 노트북에 정리할때 해당 책장이 넘어가려 하는 성가신 상황이 발생한다. 이때 넘어가는 책장을 文鎭으로 누르면 되니 간단하면서도 상당히 유용한 물건이다. 본연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아도 사용자가 만족한다면 그만 아닌가.

원형, 사각형, 막대형 등 다양한 형태의 文鎭은 젊은 사람들에게 생소할 수 있으나 알게 모르게 이미 사용하고 있는 물건이다. 책장이나 종이가 바람에 날리지 않게 누르는 물건을 文鎭이라 하므로 도서관에서 HACKERS TOEIC 책장을 누르는 용도로 핸드폰을 올려놓았다면 이미 핸드폰을 文鎭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용도이므로 무게만 있다면 집안에 굴러다니는 폐품을 이용하거나 만 원 정도 하는 제품을 구입해 사용해도 된다. 물론 고급재질과 화려한 모양을 자랑하는 고가 제품도 있으므로 본인 취향에 맞추면 될 일이다.


사용하고 있는 文鎭은 30년 된 것으로 ‘1992년 제1회 한. 일 낚시진흥회 친선 보리멸 배낚시대회’ 기념품이니 Limited Edition이다. 낚시대회 기념품으로 낚시장비가 아닌 文鎭이라니 생뚱맞기까지 하다. 맞다, 서예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물건임에 틀림없고 낚시인들에게는 참치, 상어 같은 大物이 잡혔을 때 기절시키는 망치정도로 밖에는 쓰임새가 없는 물건이니 궁합이 맞지 않는 기념품이기도하다.

1986.09.13 전국의 낚시명사 61인이 모여 낚시터 환경보호와 건전한 낚시문화 조성을 위해 한국낚시진흥회라는 사단법인을 발족시켰다. 국내 최초 낚시잡지인 낚시춘추를 1971년에 창간한 수필가이자 의학박사 한형주 선생이 초대 회장. 선친의 釣友(조우)인 김시철 시인이 초대 부회장을 맡았다. 동갑내기 절친이자 釣友셨던 서기원 소설가도 추후에 KBS사장에서 퇴임 후 회장을 하셨고 선친은 61인중 한분이셨다. 다수의 문인들이 낚시진흥회 발족과 운영에 참여하다 보니 낚시대회 기념품이 글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으로 선택된 것이 아닐까 한다. 당시 문인들 상당수는 본업인 시, 수필, 소설 이외에 먹을 갈아 붓글씨를 썼으니 文鎭은 필수품이나 다름없었다.


회사에서도 홍보용품과 기념품을 제작한다. 물품 받는 사람 입장에서 품목을 정해야 하지만 주관적 동물인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 물품을 선정한다. 공을 치지 않지만 골프가 대중화되어 있어 골프용품을 회사 홍보용품으로 만드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거래처와 방문손님에게 주는 선물로 소비되었지만 상당량은 골프 치는 직원들이 소비한다. 물론, 홍보용품 제작과 관련된 직원들 중에 골퍼가 있기에 골프용품을 홍보용품으로 선정한 것이다. 홍보용품을 자체 소비하면 불법이지만 그것을 막겠다고 관리를 강화하면 관리비용이 더 들어가니 과도하지 않게 눈치껏 사용하게 하는 것도 현명한 관리방법중의 하나이니 그 정도는 눈감고 살았었다.

예전 인천에 근무할 때 동남아시아 개발도상국에 공사팀을 파견할 일이 생겼다. 선행경험이 있는 간부에게 필요한 기념품과 홍보용품에 대한 의견을 구했더니 신박한 의견을 냈다. 발주처 간부용으로 고용량 USB, 직원용으로는 회사마크가 새겨진 티셔츠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해당 국가는 컴퓨터 보급률이 낮아 간부직원들만 컴퓨터를 사용하고 컴퓨터가 구식이라 저장용량이 큰 USB를 좋아한단다. 현지직원들은 안전화와 유니폼 없이 일 하는데 그들이 보는 우리 회사는 엄청난 회사이므로 회사 로고가 들어간 티셔츠를 최고로 좋아하고 퇴근해서도 자랑삼아 입고 다닌단다. 공사 완료 후 일회용작업복, 보안경 등 사용하고 남은 소모성자재들은 상대회사에 기증하고, 안전화 등 직원들이 사용했던 물품들은 성심성의껏 도와준 현지직원들에게 벗어주고 오면 좋아한단다. 또 그렇게 해야 차기 공사를 수주하는데도 도움될 뿐 아니라 귀국시 화물운송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므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니 그렇게 안할 이유가 없었다. 회사 홍보, 불우이웃돕기, 추후 공사수주를 위해 책정예산을 초과하여 홍보용품을 구입했었다.


CEO와 불화로 인천으로 내려갈 즈음 후배들이 十匙一飯(십시일반)하여 상당 양의 홍보용품을 챙겨줬다. ‘사업소 내려가시면 어려운 점이 많으실 겁니다.’ 볼펜 한 자루와 읽고 있는 책이 이삿짐의 전부였는데 몇 박스의 짐이 추가로 생겼다. 사업소는 본사보다 예산이 빠듯하니 챙겨준 것도 있지만 CEO와 등을 지고 내려가다 보니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은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라는 의미가 컷다. 속 깊고 앞 날을 내다보는 든든한 후배들이 고마웠다. 후배들이 챙겨준 홍보용품은 사용하고도 남아 사업장을 떠날 때 정들었던 직원들에게 이별선물로 나눠줬다. 외국인손님 선물용 나전칠기 名銜函(명함함: 명함상자)과 매니큐어세트 등을 용도에 맞게 요긴하게 사용했으면 좋겠지만 본래 용도에 맞지 않게 文鎭을 사용하듯, 이별선물도 궁리해 보면 유용한 쓰임새를 발견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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