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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나주 적응하기

공해가 없으니 밤하늘 별도 총총합니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나주 혁신적인 도시로 이사 왔습니다. 생활기반이 잘 갖춰져 있는 ‘천당아래 분당’에 살다가 나주혁신도시로 이사했는데 며칠 있어보니 이것이 진정한 ‘생활의 혁신’인 듯합니다.

숙소에서는 휴대폰이 잘 안 됩니다.

창문밖에 손을 내밀어야 수신 안테나가 잡힙니다.

마라도에서 짜장면 시켜 먹고 독도에서도 통화한다고 광고한 통신회사들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합니다.

입주 시 인터넷 공유기를 별도 설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흘려듣지 말걸 하는 후회를 해봅니다만 받기 싫은 전화가 오면 받지 않아도 되니 마음 편한 도시입니다.


아직은 사방이 공사 중입니다.

한전, 한전KDN, 우리 회사 등 전국 혁신도시 중 가장 많은 공기업들이 이주한다는 나주혁신도시, 공기업들은 이미 입주해서 환한 불로 밤을 밝히고 있습니다만 공기업 건물과 숙소로 사용하는 아파트와 오피스텔 일부를 제외하고 수많은 건물들이 공사 중입니다.

나주곰탕집과 홍어집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것은 舊(구) 나주시 이야기입니다. 정작 나주혁신도시에는 중개사 사무실과 상가분양 사무실이 제일 많습니다. 두 번째로 많은 것이 24시 편의점 같습니다. 대형마트는 입점예정이고 병원과 유치원 등 기반시설들도 조만간 들어서겠지요.

지금은 편의점 몇 개와 음식점 몇 개만이 성업 중입니다.

도로에 쌓인 건축자재를 피해 다녀야 하는 불편은 있지만 혁신도시 내에서는 네비아줌마 종알거림이 없어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공기업 사옥들이 랜드마크이고 눈이 네비이니 이것도 혁신입니다.


옷과 이불만 싸들고 빈 몸으로 왔으니 생활용품들을 사야 합니다.

가까운 농협 하나로 마트를 검색하니 해남방향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어 차를 몰고 가봅니다. 예전 캐나다에 장기출장 갔을 때는 한국식품점 가려면 세 시간을 차로 달려가야 하는데 10Km는 식은 죽 먹기입니다.

도시와 같은 하나로마트를 생각했는데 출입문도 쪽문 수준입니다. 제 방보다 2배 정도 남짓 되는 마트에 먼지 쌓인 생수와 계란, 세제, 쌀 등을 구매했습니다.

집에 가서 계란 프라이 해 먹어야지.

뿌듯한 마음으로 차를 몰고 숙소로 돌아옵니다.

프라이팬에 계란 두 개 깨어 넣고... 이런 소금이 없습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집에서는 흔하디 흔한 소금이 없습니다.

온갖 양념을 장만해 살고 있는 주부들이 위대해 보이는 순간입니다.

혈압 약을 먹고 있는 저에게 가장 적합한 밍밍한 계란프라이로 한 끼를 때웁니다.

하지만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처럼 무인도에서 먹을거리를 득템 한 듯 계란 한 판 산 것이 이렇게 기쁨을 줄지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숙소인 오피스텔은 아직도 부분 공사 중이라 벽을 뚫고 TV를 설치하는 작업으로 귀가 먹먹해 휴일에는 집에 있지 못합니다.

차 트렁크 하나 가득 낚시도구가 항상 실려 있으므로 근처 가까운 저수지를 찾았습니다.

수도권에서는 입어료를 받고 있으나 이렇게 깨끗하고 이만한 풍광의 저수지는 없습니다. 게다가 무료이고 저수지, 방죽이 지천에 깔려 있습니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고즈넉한 저수지에 앉아 낚싯대 한 대 드리우니 시골붕어가 도시떡밥에 홀려 찌를 올립니다.

시골붕어가 수줍은 듯 찌를 올리든 말든 나주혁신도시에서 혁신적으로 살아갈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살아가야 하는 원초적인 문제이므로 머릿속도 그리 복잡해지지 않습니다.

매우 마음에 듭니다.


집에 돌아와 샤워하면서 코를 푸니 아주 깨끗합니다.

그만큼 공해가 없다는 이야기겠지요.

혁신도시 인근 돼지 폐 축사에서 악취가 풍겨올 거라 했는데 겨울로 접어들어서인지 악취도 없고 공기내음도 좋습니다.

공해가 없으니 밤하늘 별도 총총합니다.

이것도 대단히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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