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낚싯대 하나 던져놓고 낚시하는지 졸고 있는지
두 번째 직장에서 퇴직했다. 일반적으로 퇴직할 때 ‘시원 섭섭’하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지만 이번에도 섭섭하기는커녕 시원했다. 젊은 시절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첫 직장을 그만둘 때도 섭섭함보다는 시원함이 컸다. 애정이 깊었지만 大過(대과) 없이 소임을 다했기에 기분 좋았다.
첫 직장 35년은 오랜 기간이니만큼 몇 가지 오점은 있었다. 5공 시절, 공기업 분위기가 경직되었을 때 ‘상습적으로 넥타이를 매지 않는 복장 불량자’로 시말서를 많이 썼다. 행사도 없고 외부손님이 찾아오지 않는데도 불편하게 넥타이를 매야한다는 복제규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또한, 윗선의 부당한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당사자 모르는 인사위원회가 개최되어 말도 되지 않는 경고장도 받았다.
하지만 관리 범위 내에서는 안전사고로 목숨 잃은 이도 없었고, 비리에 연루되어 징계받은 이도 없었으며 발전소를 정지시킨 적도 없었다. 운도 좋았지만 같이 일했던 식구들 잘 만난 덕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貴人(귀인) 만나는 복은 타고났다. 모두가 貴人이다.
퇴직 후 원했던 대로 낚시터를 浪人(낭인)처럼 떠돌아다녔다. 빵 한 개와 막걸리 한 병 차고 물가에 앉아 있으면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나만의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기러기 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南道(남도)에 오피스텔 하나 구해놓고 다니고 싶은 낚시터를 마음껏 누비고 다녔다. 南道는 낚시할 곳이 지천이라 낚시하다 피곤하면 오피스텔에 들어와 쉬면 된다. 주말낚시꾼이었다면 무리해서라도 낚시했겠지만 시간 남아도는 浪人에게는 내일도 모레도 낚시하는 날이니 집착할 이유도 없었다.
봄이 짧듯 인생의 봄날은 길지 않았다. 놀만큼 놀았는지 아니면 효도가 부족했던지 퇴직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노모께서 쓰러지셨다. 오피스텔에 낚시에 대한 미련을 남겨놓고 올라왔지만 南道 浪人생활은 그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신속하게 조치했지만 노모의 건강상태는 좋지 않았다. 어설픈 간병이 시작되었고 선, 후배님들이 병구완하는 나를 생각해 서울에 자리를 만들어줬다.
두 번째 직장에서도 출근시간이 빨랐다. 사무실 도착하면 6시前, 사방이 컴컴하고 전화소리, 부스럭거리는 소리조차 없는 적막한 사무실을 좋아한다. 업무 효율도 높아 직원이 출근하기 전 내가 해야 할 업무는 끝난다.
공기업에 오래 근무했지만 틀에 박힌 모든 것을 싫어했다. 9to6, 넥타이, 행사 식순... 새벽같이 출근하며 출, 퇴근 시간이 자유롭다고 말하면 어폐가 있지만 마음대로 출근하고 남들보다 빠르게 퇴근하는 것에 만족한다. 상대방이 불편해할지 모르겠으나 술을 끊었고 코로나팬데믹 여파로 공식/비공식 손님은 점심시간에 만났다. 술이 없으니 만남의 시간이 길어지지 않아 좋았다. 손님 없을 때는 청바지에 남방셔츠 입고 출근하니 원했던 직장분위기였다. 좋은 직장이었다.
2년 1개월, 길지도 짧지도 않게 적당한 기간이었다. 자리를 만들어준 선, 후배님들과 매사 협조적이었던 회원사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린다. 연임을 추진하겠다는 분들이 계셨으나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마음만 받기로 했다. 연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임기 끝나기를 기다리는 후배들이 있을 테니 계속 앉아있는 모습이 아름다울 수 없다. 또한 연임이 아닌 임기종료만을 기다리는 회원사도 있었을 터이니 기대에도 부응해줘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私慾(사욕)을 위해 타인의 불만에 눈 감고 얼굴 두껍게 생활하는 것을 제일 경멸했기에 삶의 기준과 가치관을 연임과 바꿀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불어 아무리 둘러봐도 연임할 만큼의 업적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계절은 낚시 시즌이고 글쓰기 좋은 나이 아닌가.
다시 浪人으로 돌아간다.
붕어가 잡히지 않을 것 같은 곳에서
짧은 낚싯대 하나 던져놓고
낚시하는지
졸고 있는지
무심하게 앉아 있는 사람
혹시 낯이 익다 싶으면
스쳐 지나가지 말고
말 걸어 보세요.
혹시 ‘물가에 앉는 마음’인가요?
사람 보는 눈이 어둡고 살갑지 못해
반색하며 반기지 못합니다.
하지만 기억은 날카로워
예전에 어디에서 만났던...
맞아요!
오랜만입니다.
건강하시지요?
혹시 희미하게 웃을 수 있죠.
오해하지 마세요.
최고로 반갑다는 표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