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98. 나주 釣行(조행)

나주 조행이지만 붕어이야기가 없다. 꽝 쳤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퇴직시기와 민물낚시 호조황시기가 맞물려 마음이 들떠 퇴직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후임 선정이 늦춰지며 出釣(출조) 계획도 약간 늦춰졌으니 동행하기로 한 친구의 속도 말이 아니었을 터이다. 낚시꾼은 낚시꾼 마음을 안다. 친구 역시 붕어 욕심이 덜해 살림망이나 뜰채 없이 낚시 다니지만 물가에 가는 설렘은 조바심으로 변했을 것이다.

조금 늦게 나주 조행이 시작되었다. 동행한 친구는 미식가이며 커피전문가이니 말하지 않아도 각자 할 일이 나눠진 셈이다. 출조와 관련된 일은 내가 맡고 먹는 일은 친구가 담당했다. 하지만 붕어 낚으러 내려간 나주, 의도와는 달리 추억과 사람만 낚다 왔다.


첫날 저녁은 둘이 오붓하게 영산포 ‘대지회관’에서 가벼운 한정식을 먹었다. 가벼운 한정식이지만 반찬이 스무 가지는 되는 듯하다. 가격은 인상되었으나 맛과 인심은 그대로다. 굴비와 소고기 뭉티기, 꽃게무침, 잡채 등 음식이 그리 짜지 않아 다행이다. 요즈음 국산홍어를 사용하느라 많이 드리지 못했다며 연신 ‘으쨋으까.’를 연발하는 여사장님 목소리가 정겹다.

영광원자력발전소에 근무하는 후배에게 생선회를 대접받았다. 서울 출장 오면 사무실에 얼굴 보러 들르는 막내급 후배다. 이제 막내들은 팀장으로 회사에서는 어른역할을 해야 하는 계층이다. 배운 대로 직원들을 챙기고 회사 앞날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같이 출조하던 후배에게 홍어 찜을 대접받았다. 공짜는 양잿물도 맛있다는데 이상하게도 삭히지 않은 홍어 찜은 맛이 덜하다. 홍어의 고장 나주에서 삭히지 않은 홍어 찜을 먹다니..., 주방장이 바뀌었는지 나주에서 나주답지 않은 음식을 맛봤다. 홍어 찜을 대접한 후배 탓이 아니다.

나주시 동신대 정문 앞 ‘송현불고기’는 연탄으로 구워내는 돼지불고기가 일품이다. 나주 맛집으로 소문나 여러 곳에 분점을 두고 있다. 산포면 ‘번영회관’ 백반은 나주에 근무할 때 수없이 맛보았던 추억의 메뉴다. 기본으로 나오는 시래깃국과 홍어무침이 입맛을 돋운다. 인심이 좋아 반찬 리필은 무한정 가능하다. 주인도 반갑게 맞아줘 더욱 정겹다.


나주시 ‘빗가람 미촌’이라는 알려지지 않은 음식점은 한적해서 좋다. 가게 주인 아주머님이 주방장인이며 한적해 간을 조절해서 주문할 수 있다. 입과 코를 자극하는 오리지널 홍어회와 낙지 초회, 홍어탕을 맛있게 먹었다. 커피로스팅 사부가 오시니 후배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이다.

따져보니 나주에 내려와 매끼 홍어를 먹은 듯하다. 늦바람이 이렇게 무섭다. 영광원자력발전소에서 7년 가까이 근무할 때는 입에 대지도 않았으나 홍어의 본고장 나주에서 근무할 때는 홍어를 먹어보고 싶다는 손님 덕에 홍어를 배웠다. 후각을 자극하고 질깃한 홍어는 묘한 매력이 있어 나주를 떠난 뒤 날이 꾸물거려 막걸리 먹고 싶은 날에는 홍어가 생각났다.


나주시 남평읍 ‘배달 통닭’은 상호와 달리 배달을 하지 않는다. ‘배달’은 ‘delivery, 配達'이 아닌 ’倍達‘인듯하다. ‘배달 통닭’은 흔히 말하는 시장통닭집이나 맛이 독특하다. 따뜻할 때 먹는 것이 제일 좋으나 식어도 먹을 만하다. 닭 냄새도 없고 튀김옷이 눅지 않는다. 동행한 친구 덕에 알게 된 맛집으로 닭 한 마리를 튀기면 남자 둘이 두 끼를 먹어도 될 만큼 양도 넉넉해 낚시 갈 때 갖고 가면 제격이다.

나주시청 인근 ‘돌박사’란 웃기는 상호의 가게가 있다. 황태설렁탕은 술을 마시지 않았어도 자주 먹었던 속 편한 메뉴다. 사실 국물 멀건 ‘나주곰탕’을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자고로 곰탕이란 뽀얀 국물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황태설렁탕은 뽀얀 국물이다. 설렁탕이지만 황태 맛이 나며 떡국 떡도 들어가 있다. 후배들이 대접하면서 어떻게 이 음식점을 알았냐고 되묻는다. 그동안 후배들 빼고 살짝 와서 먹었나?

호남에서 음식맛으로는 하위권이라는 나주지만 숨어있는 맛집이 여러 곳 된다. 또한 맛으로 따지면 지역구 맛집이 아닌 전국구로 나가도 손색없는 음식점들이다.


커피 로스팅 샵(coffee roasting shop: beansamroasters.co.kr/store)을 오픈한 후배와 로스팅 머신을 자주 이용하는 후배는 친구의 커피 제자들이다. 로스팅 샵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직장이 있기에 로스팅 샵은 놀이터 겸 pilot business로 공유 roasting shop이다. 영리만을 추구하지 않기에 질 좋은 커피원두를 사용한다.

파나마 게이샤 허니(panama lerida geisha honey)를 마시는 사이 로스팅샵 주인은 과테말라 인헤르또 나티보(guatemala el injerto nativo)를, 다른 후배는 케냐 이보니아 피베리(kenya ibonia peaberry)를 각각 볶아 선물했다. 수제 맥주를 만드는 재주도 갖고 있어 스타우트와 오렌지 맥주도 선물 받았다.


나주에 내려와 조용히 낚시만 하다 올라가려 했으나 애초부터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일이다. 동행출조 하기로 한 후배의 입을 통해 암암리에 퍼져나갔을 터이니 많은 사람들이 나주에 내려온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알았어도 짐짓 모른 체하며 눈감아주는 것도 미덕이니 후배들에게 감사한 일이다.


나주 조행이지만 붕어이야기가 없다. 꽝 쳤다. 수달이 뛰어노는 나주 대초천 부엉이 바위 앞은 언제나 마음의 위안을 얻는 장소다. 둘이 앉아 찌를 올리지 않아도 눈이 시원해지는 안구정화, 마음정화를 체험하고 돌아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