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2) (백성호著, 판미동刊)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치유와 행복은 연결되어 있는데 행복이 무릉도원에나 있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행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인데 만족을 알고 멈출 때 행복함을 알게 된다. 치유가 되는 경지가 행복이다. 만족을 아는 것 그리고 멈추는 일, 그건 ‘내게 없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게 있는 것’을 찾는 일이다.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한국 부모의 자식사랑은 유별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는데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과잉보호 수준을 넘어 과잉통제에 들어갑니다. ‘남들과 비슷한 놈’을 만들려면 계속 사육을 하고 ‘기가 막힌 놈’을 만들고 싶다면 방목을 해야 합니다. 언젠가 아이는 홀로 살아가야 하는 시기를 맞아야 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한데 그게 뭔지 모른다면 악착같이 찾아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살고 약간의 성과가 얻어지면 행복하게 됩니다.
고진하 시인, 한살림교회 목사
행복이란 말이 언제쯤 생겼는지, 언제부터 일상화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행복이란 말에 휘둘리는 것이 아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남보다 더 많이 더 높아져야 행복하다 하는데 ‘조금 덜’ 가지려는 마음 즉 마이너스의 행복도 필요합니다.
유미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
저는 행복이 자신의 꿈과 연결돼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꿈꾸지 마세요.’라고 말하죠. 꿈은 디자인하는 것이지 꾸는 것이 아니거든요. 건축물을 지을 때도 땅이 있어야 하고 설계에 필요한 지식, 건축기술,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요소들을 감안해 건물을 지으면 100년, 1000년 가는 집이 나옵니다. 꿈도 그렇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디자인해야 합니다. 행복도 마찬가지로 실현가능한 목표와 과정이 필요합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맹자가 말한 性善이란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하다는 말이지만 다산은 타고난 성품도 행하지 않으면 덕이 될 수 없다 했는데 이것이 다산의 행복론이기도 하다. 공자가 말한 知行合一, 진실한 기쁨은 앎을 행하는 데서 얻어진다는 거죠. 浩然之氣도 큰소리로 허풍 치는 것이 아니라 의로운 일을 당당히 행하는 것입니다.
대해스님 영화감독 조계종 국제선원장
멋진 영화를 만들려면 연출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지혜로운 삶을 살려면 연출력이 좋아야 합니다. 그 힘에 따라 삶은 비극도 되고 희극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면서도 실제 연출법은 불행한 쪽으로 쓸데가 많아요. 연출을 할 수 있는 힘과 가능성은 바깥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습니다. 내 안의 창고를 뒤져 숱한 상황에서 숱한 사람들을 향해 숱하게 행복을 피워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황병기 가야금명인
창작의 과정은 고통스러운 게 사실이나 그 자체가 즐거운 것입니다. 남녀 간의 연애과정을 보면 고통입니다. 시간적으로 정열적인 면에서 고통이지만 즐겁잖아? 공부와 노는 것 즐거움과 고통이 따로 있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야. 學而時習之, 내게는 그게 행복이었지.
정희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초대원장
자기 일에 대한 사랑이 행복입니다. Work+Love = Happiness
일에 대한 사랑, 이게 기초인 거죠. 이게 없으면 애를 쓰고 노력하는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 될 뿐이에요. 좋아서 한다면 장인이 되고 전문가가 될 수 있어요. 자기 일을 사랑할 때 나를 인정하고 남도 나를 인정합니다. 제겐 그게 행복입니다.
서민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과 교수
테크니션은 퇴근 시간을 지키고 사이언티스트는 일이 끝나지 않으면 밤을 새우는데 나는 박사학위 받고 교수가 되어서도 한동안은 테크니션으로 살았습니다. 근 8년간의 방황기에 소설, 인문, 사회, 역사, 경제, 예술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었더니 어느덧 논문 쓰기가 쉬워졌습니다. 독서가 사이언티스트로서의 근육을 키워준 것이죠.
저는 행복에 대한 기대치가 겁나게 낮아 누군가 조금만 잘해줘도 굉장히 고마워합니다. 예전에 세상이 잿빛이었을 때는 ‘아휴, 스물아홉에 죽어야지, 서른에 죽어야지’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는데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잘 살고 있어요. 이러다 ‘한 방에 훅 가는 것 아닐까?’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지난 10년간 행복하게 살았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