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 실패가 용인되는 회사

모범적인 실패? 부러운 기업문화

by 물가에 앉는 마음

연구개발 분야에서 모범적인 실패(?) 사례를 들라하면 흔히 3M ‘포스트잇’을 예로 든다. 1968년 미국 3M 연구원 스펜스 실버는 강력접착제를 개발하려 했으나 너무 약한 접착력을 가진 물질을 개발하곤 실의에 빠졌고 실버는 실패사례를 동료들에게 알렸다. 몇 년 후 아트 프라이라는 연구원은 교회 성가집에 붙은 메모테이프 접착력이 너무 강해 가죽이 손상되는 것을 보며 쉽게 떼었다 붙일 수 있는 메모지의 필요성을 느꼈다. 예전 실버의 실패사례를 떠올려 해당 물질을 활용한 제품 연구에 나섰고 결과물이 지금 전 세계가 쓰고 있는 ‘포스트잇’이 되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는데 ‘포스트잇’을 만드는 3M의 ‘실패에 대한 용인’ 이란 기업문화적 바탕이 없었으면 이런 이야기는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모범적인 실패? 부러운 기업문화다.


사실 실패에 대해 관대하지 않은 것은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연구 및 기술개발관리규정을 개정하면서 ‘활용결과 우수한 연구과제에 대해서는 당해 연구 과제를 수행한 부서 또는 유공직원에 대하여 포상을 실시할 수 있다.’라는 조항을 신설했다. 기존 규정에는 ‘연구결과의 활용 또는 실용화가 미흡한 연구과제에 관련된 직원에게는 향후의 연구과제 참여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실패에 대한 벌칙 조항만 있었는데 반대급부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회사가 실패한 연구를 수행한 연구원에 대해 가혹한 조치를 취한 것은 아니지만 선언적으로나마 규정상 ‘상과 벌’의 균형을 맞춘 것이다. 2012년에는 지식재산권 관리지침을 개정하면서 처분보상 금액을 대폭 수정했다. 건당 오천만 원 한도 내에서 지불하기로 했으니 ‘좋은 연구’를 하면 ‘착한 보상’을 하겠다는 의미다.


‘상과 벌’의 균형을 맞췄다고는 하나 판단기준이 필요하다. 실패한 연구냐? 성공한 연구냐? 여부는 R&D결과물이 출시된 후 시간이 흘러야 판정할 수 있다. 출시하자마자 대박을 터드리는 경우도 있지만 시장이 제한되어 있는 우리 회사 경우에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전까지는 R&D결과물이 나오면 활용과 무관하게 평가를 했으나 평가기준도 활용도에 초점을 맞춰 준비했고 조금 인내심을 갖고 평가하려 한다. 3년을 기다린 후 활용이 없다면 ‘아주 불량’, 반대로 활용도가 높다면 ‘아주 우수’로 평가한다.

하지만 활용도 평가 목적은 ‘벌’을 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 모범적인 실패사례 와 성공사례에서 연구기획 단계부터 어떠한 조치를 했더니 활용도가 높아지더라 하는 학습효과를 얻기 위함이다.


쓸모없는 연구결과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벌칙’을 강화하려 한다. 활용평가 결과를 공표하여 전 처실 및 사업소에 널리 알리고 성공한 과제를 수행한 조직과 연구원에게 포상하고 승진시킨다면 실패한 과제를 수행한 연구원들은 충분한 벌칙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거듭된 실패를 한다면 규정에서 정한 연구과제 참여제한 등의 극약조치도 취할 수 있다. 연구원에게 과제를 수행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은 치욕적인 조치이니 시범케이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활용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밤새워 연구할 것 같다.


분석결과 우리 회사는 연구과제 성공률이 높은 편이다. 물론 연구원 초창기, 뻘을 청소하는 잠수로봇을 개발했는데 실제 작동을 해보니 잠수는 커녕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등의 실패사례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물론 모든 연구결과가 성공적이지 않지만 성공률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도 필요하다. 3M 등 연구가 장려되는 조직에서는 도덕적 해이에는 엄격하지만 정상적인 과정에서 나타나는 실패에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요즈음은 나오지 않지만 오래전 사업부서에서 섭섭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사업부서가 번 돈으로 연구개발을 한다면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맞다. 사업과 연구개발은 선순환되어야 한다.

현장에서 직원들이 땀을 흘려 번 돈으로 연구원들은 연구한다.

연구원들은 현장 직원들이 흘린 땀의 가치를 알기에...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한다.

개발한 기술이 현장에서 널리 사용된다.

실패한 기술을 개발해도 타산지석으로 삼는다.

기술로 새로운 시장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다.

감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음 세대를 먹여 살릴 연구를 한다.


하고 있는 업무가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R&BD분야이나 새로운 사업을 하는 것도 어려움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2011년부터 연구결과물을 사업화시키는 업무를 해보니 만만치 않았다. 우리 회사는 한전과 발전회사 발전설비를 정비하는 업무가 주 사업이다 보니 민간 회사 발주 하는 공사를 수주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공기업과 민간기업은 적용하는 기준과 업무시스템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우리 처가 하고자 하는 사업 역시 만만치 않다. 기술을 파는 절차와 기준이 없었기에 한편으로 협상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절차와 기준을 만들어야 했다. 이제 기술 판매의 첫 발을 디뎠으니 발전되고 부흥기가 올 것이다.


열심히 그리고 전력을 다해 노력했다면 사업을 실패한, 연구를 실패한 꼴찌에게도 기꺼이 박수를 쳐주는 건전한 기업문화가 형성되기를 기대하며 새해를 여는 글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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