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00 Man Day만큼의 대변인
작년 말 승격과 보직인사 전후하여 많은 후배님들 전화를 받았다. 길게는 20분 정도 통화를 했으니 통신비가 꽤나 나올법한데 대화 요지는 ‘어떻게 하면 승격할 수 있는가? 이번에 근무지를 옮기려 하는데 어떤 사항들을 고려해야 하는가?’였다. 후배님들에게 경험과 아는 범위 내에서 대답해 주었지만 우리 회사 승격제도에 근거한 평상시 처신에 대해 대답해주고 싶었다. 어쩌면 이것이 정답이고 왕도인지 모른다.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우리 회사 간부는 임명직이고 노동조합 간부는 선출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물론 차장이 되기 위한 초급간부 고시는 자력으로 공부해야 하니 임명직도, 선출직도 아니라고 하나 이것도 상사 근무평정성적과 동료들 다면평가결과가 당락에 영향을 미치게 되니 선출 개념이 반영되어 있다. 초간고시 합격 이후 간부보직은 보직권자에 의해 임명되나 이 또한 임명이 아닌 선출과 가깝다. 승격 후 주위 평판을 고려하여 능력 있고 상하좌우로 소통 잘되는 간부는 서로 모셔가려 하나 반대인 경우는 파장 무렵 시장에서 떨이 물건 취급을 당하거나 아니면 1+1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이보다 심한 경우에는 공석으로 운영할 테니 제발 보내지 말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한번 쏘아 올려지면 랜딩 하지 못하는 인공위성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실제 발생한 사례도 있다.
초급간부인 차장부터 퇴직까지 삶은 철저하게 선출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것이 진급 노하우인데도 아직도 많은 간부들은 간부는 임명직이라고 착각하고 있어 대처 못하는 경우도 있다. 부장, 실장, 처장진급 할 때도 근평과 다면평가요소가 작용하고 주위 인물평에 관한 정보들이 참고자료가 된다. 승격심사위원회에 참여하는 위원들은 본사, 사업소에서 골고루 참여하게 되지만 승격후보자 전원과 같이 근무해본 것은 아니니 위원들은 후보자 기본자력 확인 후 그간 들어왔던 평판을 근거로 채점하여 당락을 결정짓는다. 인물에 대한 평가는 상사, 동료, 부하직원들이 하게 되며 그중 직원들 입을 무시할 수 없다. 우리 회사 업무 특성상 타 발전소 계획예방정비공사에 매년 3~4회 정도 파견근무를 하게 되어 있으니 부하 직원들은 간부평판의 전달자이자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영광 전기팀장으로 근무할 때 협력직원 포함하여 부서식구는 50명이었다. 매년 30일간 3회 파견, 5.8년을 영광에서 근무했으니 무려 26,100 Man Day만큼 내 평판을 직원들이 주변에 전파한 셈이 된다.
26,100 Man Day만큼의 대변인이 있다고 했는데, 거짓말같이 들리나요? 실제 사례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Case1: 같은 발전소 고객사 간부가 커피 한잔 하면서 이야기했다.
우리 팀 직원에게 농담 삼아 ‘정말로 당신 팀장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냐? 내가 볼 때는 1년 내내 술만 먹고 다니는 것 같던데’ 우리 직원이 정색하면서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아닙니다. 우리 팀장님은 직원들을 친동생 같이 여기며 직원들의 비전을 제시하고 계신 훌륭한 분입니다. 겉만 보고 판단하시면 안 됩니다.’
Case2: 하루는 아주 먼 울진에 근무하는 팀장이 전화했다.
‘도와주신 덕분에 공사를 잘 끝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직원들을 잘 키우셨더군요.’
‘그렇지요. 우리 식구들이 기량은 떨어질지 몰라도 성심을 다해 열심히 일 할 겁니다.’
‘그게 아니고요, 공사 기간 중에 직원들과 맥주를 먹으면서 영광 3 전기팀 S주임은 독선적이라며 험담했다가 혼났습니다.’
옆자리의 어떤 직원이 일어나더니
‘영광 3 전기팀 아무개입니다. S주임은 열정적으로 일 하시는 분입니다. 직원들을 이끌어가기 위해서 가끔은 독선적인 방법으로 일 하시지만 본인 자신을 희생하며 일하는 분입니다. 욕하시면 안 됩니다.’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기에 당황했습니다. 주임과 직원들을 잘 키웠고 영광 3 전기팀의 단합, 단결하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Case3: 작고하신 권오형사장님 치부책에는 많은 사람들 정보가 담겨있었다고 합니다.
5000명, 전 직원에 대한 치부책은 아니고 고위간부에 대한 평판정보가 있는데, 홍길동이 잘한 횟수가 바를 정자로 표기되어 있으며 잘한 횟수는 바로 주위의 평판에 좌우되는 것이지요. 경영자과정을 마치고 안전팀장 할 때 승격을 못했습니다. 승격 발표 후 저를 호출하시더니 ‘임 팀장은 주위에서 칭찬을 많이 하는데 교육 끝내자마자 승격시키는 것이 부담되어 승격시키지 않았으니 이번에 승격 못한 것을 섭섭해하지 말게. 내년에는 꼭 승격을 시켜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일 했으면 좋겠네.’ 사장님 치부책에 저에 대한 바를 정자가 많았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Case4: 전무님의 Tip, 주관은 뚜렷하게, 행동은 유연하게
제 사무실에 자주 오시는 김 전무님께서는 임기 종료를 앞두셔서 그런지 그간의 所懷(소회)를 자주 말씀하신다. ‘뚜렷한 주관은 있되 유연하게 행동해야 적이 생기지 않는다. 나 자신은 好不好가 명확한 것을 좋아하지만 도움 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주관이 뚜렷해서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것을 능력이라 하지만 상대방 기분을 상하지 않게 설득하는 것이 진정한 능력이다. 적을 만들게 되면 이들이 확대 재생산하게 되고 추후 재앙이 되어 돌아온다. 상대방을 대우하고 존중해서 마음 상하지 않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오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다. 승격 시에도 모든 사람을 모르기에 어느 사업소 누구 하면 연상되어 떠오르는 이미지가 당락을 결정한다. 서열명부에 오르는 사람들 업적이란 것은 대부분이 대등소이하기에 주관이 뚜렷하되 행동이 유연한 사람들이 승격하게 된다.’
4가지 Case를 말씀드렸는데도 승격과 보직은 주변 평판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라는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는 분들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전 보안사령부 존안카드 같은 것이 사장님 치부책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평소 나에 대한 평가가 발이 달린 말처럼 이곳저곳에 전파되고 있고 이것이 승격과 보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간부는 임명직이 아닌 선출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