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9. 나 홀로 읽는 도덕경(1) (최진석著, 시공사刊)
들어가는 말: 나 홀로 읽는 다는 것
고전은 소장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소비하는 것이 낫습니다. 소장자보다는 소비자가 더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홀로 읽기’라고 해보죠. 이제 친절한 안내와 도움 없이 홀로 읽는 일에 도전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덕경의 내용중 꼭 알아야할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푼 것을 1부에 놓고 해설없는 원문과 번역본을 2부에 놓았습니다. 용감하게 2부부터 도전해도 됩니다.
노자와 공자의 사상은 어떻게 다릅니까?
공자 사상의 출발점은 인간입니다. 이와 달리 노자사상의 출발점은 객관적인 자연이지요. 공자의 조상은 은나라 유민이었고 그는 주로 남의 집 제사를 지내주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살던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공자의 사상은 그런 집안 내력과 연관 있을 겁니다. 공자는 인간의 문제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살았습니다.
노자는 주나라 왕실도서관 관장이었고 사관출신이었죠. 당시 사관의 직무는 왕의 정책이나 행동에 대해 자문을 해주는 것인데, 그런 일을 수행하려면 과거의 사례를 통해 미래를 예측해주는 일을 해야 하니까 역사에 밝아야 했어요. 그리고 그 시대는 많은 것을 자연에 묻던 때였어요. 자연이 교과서였지요. 그러니까 노자는 역사와 자연현상을 자세히 관찰하는 사람일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공자가 주관적인 정감에 매우 친숙했던 사람이었다면 노자는 주관적인 생각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에 매우 친숙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살던 지역 환경도 달랐어요. 공자는 비교적 북방으로 분류되는 노나라 출신이고, 노자는 남방의 도가적인 경향이 매우 강했던 초나라 출신이죠. 공자나 노자의 사상에는 자신들이 살던 지역의 문화적인 특색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문화적인 연원을 따지면 공자는 은나라 문명을 계승하고, 노자는 그보다 앞선 하나라 문명을 계승하는 양상을 보여요. 하나라는 물과 달을 숭상하는 모계 중심적 사회였어요. 그러다가 은나라 때부터 왕권, 지배권을 강조하면서 태양을 숭배하는 남성 중심적 사회로 변모하는 거죠. 하나라 때는 지도자는 있었는데 지배자는 없었어요. 지배자라는 개념은 은나라 때부터 생겨요. 공자 사상이 남성 중심적이고 군주권, 지배권을 강조하는 것은 은나라 문화의 영향 때문입니다. 사상의 특성으로 보면 , 노자사상이 공자사상보다 더 먼저 있었던 문화를 계승합니다.
德(덕)이 등장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인간이 책임감을 갖고 주도적으로 펼치는 역사는 신으로부터 이탈하면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철학이 시작되었다는 말은 믿음의 시대에서 생각의 시대로 넘어갔다는 말과 같아요. 신이 주인인 시대에서 인간이 주인이 되려는 시대로 넘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생각하는 능력으로부터 시작돼요. 이 능력이 가장 고도화 된 것이 철학이죠. 철학이 시작되면서 인간의 역사는 신의 역할과 지위가 축소되고 인간의 역할과 지위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계속 이동합니다.
인간의 지위 상승이 처음 시도된 때가 철학이 시도되던 시기였고 중국에서는 공자와 노자가 살았던 시대였습니다. 공자와 노자가 등장하기 직전에 만들어진 개념이 덕이에요. 덕은 선행을 하는 태도라기보다는 선행이 나오는 근본적인 힘, 즉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근거나 능력 같은 것입니다. 나를 나이게 하는 힘, 그게 덕이죠.
이전까지만 해도 건국, 흥망성쇠, 삶의 의미와 신분계급 모든 것을 하늘이 결정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신이 세운 은나라를 주나라가 멸망케 했습니다. 신의 뜻이 은나라에서 주나라로 옮겨 간 이유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통치자가 ‘덕’을 지키는 여부에 따라 하늘의 듯이 움직인다고 설명하게 됩니다. 인간의 ‘덕’이 신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는데 덕이라는 개념이 출현하지 않았다면 중국에서 인간은 신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인간에게는 덕의 크기가 인간의 크기를 결정짓는 요소가 됩니다.
이름 붙이는 것을 부정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도덕경은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도가 말해질 수 있다면 진정한 도가 아니며, 이름이 개념화 될 수 있다면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라고 시작합니다. 名은 정의 하거나 개념화 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행위를 부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춘추전국시대 변화의 핵심은 철기의 발명입니다. 이전의 기득권들은 석기를 기반을 둔 생산구조에서 우위를 점해온 사람들인데 철기가 발명되며 기존의 계급구조가 틀어졌습니다. 과거에 익숙한 사람은 변화에 적응을 못하고 변화에 잘 적응한 소외계급이 상승하는 결과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너무 전반적이기에 혼란이 발생해 과거의 질서가 무너지고 아직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지 않은 시기에 이들의 사명은 어떻게 새 질서와 새 세계관을 건설하느냐 였습니다. 이때 뒤틀림으로부터 야기된 주제가 名實(명실), 즉 이름과 실질사이의 관계였어요. 예를 들어 君子(군자)는 군자라는 이름을 달고 지배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군자라는 명과 지배라는 실질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철기가 들어오며 군자가 지배자라는 실질을 행하지 못하고 소외계층이었던 사람이 부를 축적해 능력자 행세를 하는 일이 생긴 거지요. 군자가 군자 아닌 듯 하고 소인이 소인 아닌 듯 되어버린 겁니다. 名과 實이 뒤틀리니 이시대의 중요한 주제중의 하나가 ‘명실관계’가 된 겁니다.
개념을 정하고 이 개념과 실제와의 일대일 대응관계를 확고히 하자고 말한 사람이 공자이며 이를 정명론이라 하지요. 한편 개념을 확고하고도 분명하게 정해놓으면 실제의 내용이 이 개념에 다 담기지 않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으니 개념을 정하는 일이 효율성을 떨어뜨리기도 한다고 본 사람은 노자입니다. 공자는 비록 다 담지는 못할지라도 개념을 분명히 정해야 사람들이 사회요구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봤으나, 노자는 정의가 개념을 가둬버리기 때문에 이 대상의 활동성이 좁아지고 그것을 지키려는 신념이 강해져 그것으로만 세계를 보게 되는 부정적인 현상이 발생한다고 봤습니다. 신념이 강해지면 기준이 되고 기준이 만들어지면 구분하고 배제하는 폭력적 현상이 발생됩니다. 노자의 생각은 기준을 만들어 구성원들을 가두지 말고 구성원들이 자발적이고 자율적으로 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효과가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무슨 일만 생기면 법을 제정해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긍정적이라 할 수 없어요. 길을 정해놓고 그 길로만 다니라고 하는 것보다 내가 걸어 다니는 곳이 바로 길이라 생각해야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지 않겠어요? 그래야 사회나 삶이 창의적이고 다채로워져서 생산력이 올라간다고 본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