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멍청한 뇌, 洗腦
전편의 마지막 문단: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다 보니 本캐와 副캐를 만들어 물어보는 대목이 나온다. 많은 사람이 비슷하게 또 다른 나를 갖고 있는 듯하다..
나 어디로 가고 있나?
마음공부에 첩경이 있다는 투의 유혹이 간간이 보입니다.
마음공부에 지름길이 어디 있나요?
과외 수업, 족집게 과외 따위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
자고, 먹고, 입고하는 일하느라 숨이 가쁘고 마음 허덕이게 되는
나 자신이 가련해 보이면 거기서 시작이지요.
내 문제라 남이 대신할 수 없습니다.
가을로 접어드는 길에 -나 어디로 가고 있나? 한번 해보시지요!
- 가고 깨어나면 늘 아침 (이철수著, 삼인刊) -
本캐와 副캐들이 時空(시공)을 초월하며 기발한 발상으로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중심에는 腦(뇌)라는 신체조직이 있을 것이다. 영민한 것 같지만 생각보다 멍청한 것이 腦다.
‘빨리 출근하고 싶어.’라는 말은 重力(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말이다. ‘혹시 미친 사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학생들이 공부하기 싫어하고 샐러리맨들은 일하기 싫어하고 출근하기 싫어하는 것은 만국 공통이다.
오래전부터 후배들에게 ‘빨리 출근하고 싶어.’라고 세뇌(洗腦)시키라 했다. 우리 뇌는 생각보다 멍청하기에 洗腦되면 잘못된 사실도 진실로 믿게 되거나 착각하게 된다며 일어나자마자 마음속으로 ‘빨리 출근하고 싶어. 주임님도 보고 싶고 팀장님도 보고 싶어.’라며 되뇌라 했다. 이왕 다닐 직장이라면 출근길부터 행복해야 한다면서.
시간이 흐른 뒤 몇몇 직원들이 이야기했다. “팀장님 말씀 듣고 매일 아침 ‘빨리 출근하고 싶어.’ 했더니 정말로 출근이 기다려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출근 준비 마치고 출근버스를 기다리는 본인을 발견했단다. 이전까지는 출근하기 싫어 이불속에 있다가 허겁지겁 출근버스를 타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회사가 가고 싶어 지더란다.
본사 기술개발조직을 담당할 때 캐치프레이즈가 ‘출근이 기다려지는 기술개발실’이었다. 5년 연속 꼴등부서였으니 희망도 찾아보기 어려운 조직이었고, 거의 전 직원을 교체한 후 2년 동안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하지만 기술개발실 식구들은 항상 웃었고 능동적이었다. 세뇌효과도 상당히 영향이 있었다. 뇌는 생각보다 멍청하다.
북한 관련 뉴스를 보면 주민들의 의식주 모두 낙후되어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그중 압권은 어버이 수령이 등장하면 펄쩍펄쩍 뛰면서 눈물 흘리며 열광하는 광신도적 모습을 보며 作爲的(작위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앞에서는 저래도 뒤돌아서면 비웃고 감자를 날릴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북한주민들 표정에서 진정성을 읽을 수 있어 의아했었다. 헐벗고 굶주려 깡마른 북한주민들이 왜 저럴까? 저들은 뇌에 주름이 잡히지 않았나? 생각할 수 있지만 어릴 적부터 시행된 洗腦교육 효과로 볼 수밖에 없다.
북한의 洗腦는 지속된 학습과 환경에서 초래된 문자 그대로의 brainwashing, 또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에 해당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외부 정보도 차단되어 있으니 洗腦를 통해 북한이 천국이라는 선전에 믿음이 굳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는 洗腦는 mind control에 해당된다. 나는 후배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단지 생각이 변할 때까지 반복하라 했을 뿐이다.
자주 洗腦를 한다. 처음에는 가능할까? 생각했지만 여러 번의 자기 암시를 거치니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아이큐가 높다고 해도 뇌는 생각보다 멍청하다는 것도 알았다. 북한 주민들도 같은 민족이니 우리와 같은 수준의 아이큐를 갖고 있을 것이지만 파블로프 조건반사같이 어버이 수령이 등장하면 펄쩍펄쩍 뛰며 눈물 흘리는 광신도가 되는 것이 세뇌가 가능하다는 단편적인 증거다.
한때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를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정신적 고갈상태에 빠져 삶이 고단하고 매우 힘든 시기였다. 해답과 정답을 찾기 위해 책도 많이 읽었지만 결국 해답은 제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내 마음’
하지만 洗腦에는 조건이 있다. 의구심이 커지게 되면 mind control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되겠어?’, ‘헛고생만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은 brainwashing, mind control에 방해되는 요소다.
‘내 마음’ 속에 숨어있는 행복에 대한 기대치와 눈높이를 의도적으로 매우 낮췄다. 행복해지기 위해. 사실 인위적으로 행복만을 추구한다는 것도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 일상이 행복임을 느끼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성경에도 ‘범사에 감사하라.’는 구절이 나온다. 특정 상황과 조건에만 감사해할 것이 아니라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 감사하라는 말씀이다. 짧은 구절을 받아들이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성경은 무조건 믿는 것인데 의구심을 갖고 읽고 뜻을 이해하려 하니 수긍하기 어려웠다.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길가 흔하게 피어나는 개나리 봉오리를 보고도 행복하다면 이 세상에 행복하지 않을 일이 없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데살로니가전서 5:1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