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2. 사소함을 즐기는 것, 행복은 어디에

짧은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것 역시 불행한 일이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초등학교 입학 전, 선친에게 낚시를 배워 집 근처 둠벙으로 낚시하러 다녔다. 서울 연희동(현재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부근), 막걸리 양조장에서 흘러나온 술지게미를 먹고 자란 붕어는 살이 토실토실 올라있었고 순진해서 미끼가 달려있으면 덥석 물어 낚시기술이 필요 없었다. 이후 많이 잡기 위해, 커다란 붕어를 잡기 위해 책 보고 연구하며 낚시 프로와 함께 다니기도 했다. 하루에 잡은 붕어 마릿수 최고기록이 200마리, 직장 낚시 대회에서 상을 빼놓지 않았다. 낚시 시작한 지 30년쯤, 어쩌면 知之者(지지자) 수준이었을 듯하다. 붕어낚시를 거의 하지 않는 지방에서 근무했을 때 낚시여건은 더욱 좋아졌다. 집사람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낚시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수도권보다 붕어 개체 수가 많았다. 물만 보면 가슴이 벌렁거렸고 꿈속에서도 저수지로 달려갈 때가 낚시를 시작한 지 40년, 好之者(호지자) 시절이었다.

지금도 유일한 야외 취미활동은 민물낚시이며 버킷리스트에 있는 50Cm 붕어 잡기 꿈을 접은 것은 아니나 구태여 잡으려 집착하지는 않는다. 물만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골치 아픈 잡념이 사라진다. 가냘픈 냉이꽃 살랑거리게 만드는 봄바람이 좋고, 저녁노을을 바탕으로 농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가 정겹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그려진 거울 같은 저수지 풍경에 취하면 낚시찌를 찾기 어렵지만 찌를 올려도 그만이고 올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낚시하는 것인지, 자연을 즐기는 것인지 모호한 상황인 낚시경력 55년, 樂之者(낙지자) 경지에 들어서지는 못했으나 낚시 아닌 사소한 것들을 즐기고 있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 한 꼭지, 수녀님이 길 가다가 성당 앞에서 성모마리아 상을 다듬고 있는 석공 셋을 만났다. 온갖 불평을 늘어놓으며 화 난 표정으로 돌을 다듬고 있는 석공에게 물었다. ‘일이 힘들지요?’ ‘아니 그럼 힘들지, 돌을 쪼는 일이 재미있어 보입니까?’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더 이상 말 붙이면 안 될 것 같아 무표정하게 묵묵히 일에 열중하고 있는 석공에게 ‘땀이라도 닦으면서 하시지, 일이 힘드시죠?’ 하자 석공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무표정하게 일하는 석공이 딱해 보였다. 세 번째 석공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입가에는 미소를 띠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 석공은 셋 중에 나이가 제일 어려 보여 젊으니 덜 힘든가 보다 하며 말을 걸었다. ‘참으로 즐겁게 일을 하시는군요.’ 석공이 환한 미소로 대답했다. ‘그럼요, 성모마리아님을 제가 만들고 있는데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성당 다니며 하나님을 위해 해드린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런 일을 맡게 되니 얼마나 즐겁고 영광스러운 일 아닙니까?’ 석공은 웃으며 가벼운 손놀림으로 돌을 깨기 시작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마음가짐에 따라 행복이 다르다. 첫 번째 석공은 일이 힘들다며 일을 억지로 하고 있었고, 두 번째는 힘들지만, 자신의 숙명이라며 어쩔 수 없이 일하고 있었다. 세 번째 석공은 자신을 위해 보람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힘든 기색 없이 즐거워했다. 세 명의 마음가짐은 공자 말씀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와 대비할 수 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마음가짐에 따라 인상이 바뀌며 삶이 힘들어질 수도 있고 행복하고 즐거워질 수도 있다. 이왕이면 樂之者가 되어 돌을 다듬는 힘든 일도 기쁘고 행복하게 받아들이고 삶을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행복이란 것이 상대성이 있고 주관적 판단에 좌우하므로 개개인의 행복은 다를 수밖에 없으나 공통적인 행복이란 비슷할 것이다. 성인이 되어 종로 한복판에서 술, 담배를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자유를 얻었을 때, 첫 월급 받아 어머님께 빨간 내복을 사드리며 경제적 독립을 했을 때, 눈에 콩깍지가 씌어 집사람과 결혼했을 때, 나와 닮은 아이가 태어나 경이로움을 느꼈을 때, 집 없는 설움에서 벗어났을 때…. 세어 보니 열 손가락이 모자라지 않다.

커다란 행복만을 생각한다면 인생을 즐기기 어려우니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샐러리맨들은 월급날 동료들과 막걸리 한잔하고 집에 군고구마 한 봉지 사 갈 때가 행복할 것이나 그래 봐야 1년에 12번밖에 되지 않으니 눈높이를 더욱 낮출 필요가 있다. ‘막내가 이번 시험에서 10등을 했어요. 지난번보다 3등 올랐어요. 개천에 있는 버들강아지가 하얀 솜털을 내밀었는데 이렇게 추운 날 얼마나 대견한지 모르겠어요. 작년 가을에 심어 죽은 줄 알았던 국화에서 싹이 돋아나고 시클라멘은 계속 꽃을 피우고 있고요. 윗집에 이사 온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콩콩콩콩 소리가 예쁘네요.’ 주변에 널려있는 사소함에서 조그만 행복을 찾고 즐긴다면 인생이 여유롭고 풍요로울 수 있다.


오랜 기간 옥살이를 했던 신영복 교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미움받는 일은 불행한 일입니다.’라고 했는데 이는 한여름 찜통더위 속에서도 몸을 맞대고 자야 하는 교도소 특수성이 가미된 시각에서 바라본 불행이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가까이 있는 작은 행복을 찾지 못하는 것, 짧은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것 역시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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