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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 삶은 모든 이가 승자인 게임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over pace

by 물가에 앉는 마음

작은 아이는 네덜란드 은행 비즈니스 애널리스트로 근무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중에 on line 면접보고 네덜란드로 날아갔으니 아빠보다 용감하다. 주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으며, 팬데믹이 해제되었음에도 한 달 두 번 정도 off line으로 출근하는 것 같다. 그것도 일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날은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 물총싸움, 선상다과회를 하고 온단다.

한국은 1년에 한 번 오고 재택근무와 휴가포함 2개월 정도 머물다 돌아간다. 이제는 연례행사 또는 손님 치르듯 작은아이를 맡는다. 아내는 애틋한 마음에 그동안 해주고 싶었던 음식을 만드느라, 한편으로는 돌아갈 때 챙겨줄 식재료를 장만하느라 분주하다. 작은아이는 휴가를 즐기고 아내는 본격적인 가사노동이 시작되는 시기다.


사실 작은아이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근무하고 있는 네덜란드 은행 자산 규모가 매우 크다는 것과 다국적 은행업과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인터넷 지식이다. 비즈니스 애널리스트가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언제 한국으로 돌아올 것인지? 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음식 맛과 사는 재미없다는 네덜란드 생활에도 불구하고 눌러살지, 재미있는 다른 나라에 정착할지, 한국으로 돌아올지 여부는 전적으로 작은아이가 판단할 몫이다.

아이들에게 무심한 것인지? 품 안을 떠난 새는 자기 영역을 구축하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부모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만 간섭 또는 도움을 주는 것이 맞는 듯하다. 밥상머리교육은 지극히 당연한 사항으로 받아들여져 가치관을 형성하기에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이를 바꾸기 어렵다.

소위 38 따라지라 불리는 자립심 강한 북한출신 부모님의 밥상머리 교육은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물론 아이들이 어렸을 때였지만 조부모로부터 밥상머리 교육을 받았고, 이후 부모로부터 교육받았기에 아이들도 매우 독립적 성향을 지녔다.


네덜란드가 현실과는 반대로 음식 맛과 사는 재미가 있다 해도 행복하지 않은 나라였다면 아이 장래를 위해 이것저것 물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는 음식 맛과 재미도 없지만 행복한 나라인 듯하다. 눌러 산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으며 떠난다 해도 아이 선택과 결정이니 존중해야 한다.


‘콜라’와 아내와 작은아이는 매일 화상통화를 한다. 서열 마지막인 나는 화상통화에 스치듯 1~2초간 등장하며 손을 흔들어주면 역할이 끝난다. 모녀의 대화를 주워들은 결과, 작은아이는 먹는 재미는 덜해도 개인의 삶을 존중해 주는 네덜란드문화는 좋아하는 것 같다.

가족 또는 반려동물이 아프거나 신경 쓸 일이 생겼다면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쉬었다가 근무하라고 한단다. 매우 인간적이다. 조직과 업무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삶을 존중해 주는 문화는 직장문화가 아닌 네덜란드 사회문화인 듯하다.

몇 년 전 암스테르담 운하정도만 구경했다. 스치듯 지나쳐 네덜란드에 대해서는 ‘맛없는 음식’ 정도밖에 알지 못한다. 전문가의 글을 읽어보면 인간적인 부분은 사회전반에 깔린 문화 같다.

네덜란드: 행복은 끝없는 관용에서 온다.

행복척도에서 일관되게 높은 점수를 기록한 나라가 눈에 들어온다. 1등은 아니지만 1등과 가까운 점수인 나라가 네덜란드다. 별다른 특징도 없는 네덜란드가 왜 행복한 걸까? 우선 네덜란드는 유럽으로 건강보험을 잃어버릴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일자리를 잃을 걱정도 없다. 국가가 다 보살펴줄 것이다. 매우 긴 휴가를 즐길 수 있고 미국인들 앞에서도 우월감을 내보일 수도 있다.

로테르담은 온통 단조로운 잿빛이라 관심을 끄는 풍경은 거의 없다. 그래도 네덜란드에 살던 사람들과 이슬람이민자들이 뒤섞여 살기에 가끔 흥미로운 것들이 뒤섞여 있다. 성인용품샾 부근에 파키스탄 이슬람센터가 있는 식이다. 음주가 불법인 나라. 부르카를 입어야 하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새로운 고향으로 정한 네덜란드에서는 마리화나도 합법, 성매매도 합법이다. 네덜란드식 관용이다. - 행복의 지도 (에릭 와이너著, 어크로스刊) -


5월에는 약 보름간 휴가 내어 뉴욕을 다녀왔단다. 우리나라는 사용하지 않은 연차를 돈으로 환산하여 받는 것이 일반적이나 작은아이 회사는 휴가는 당연히 사용하고 휴가가 부족하면 돈으로 휴가를 살 수 있는 system이다, 봄이면 많은 사람들이 휴가 가기에 좋아하는 뉴욕에 다녀왔단다.

막내가 네덜란드 생활을 접고 한국에 온다면 과연 정착할 수 있을까? 용감하기에 문제없을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복잡한 마음도 있다. 한국도 팬데믹을 거치고 신세대들이 직장문화를 변화시키고 있지만 네덜란드에 비해 경직된 제도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근무여건이 같다고 해도 경쟁하는 분위기에서는 본인도 모르는 새에 경쟁에 휘말리게 된다.


네덜란드 친구 중 동양 친구들은 융자받아 주택을 구입하고, 서양 친구들은 소유에 대해 그리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경쟁이 일상이며 미래를 위해서는 당연히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는 사회분위기에서 자란 동양아이들은 물과 땅 설은 이국에서도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듯하다.

물론 미래 행복을 위한 재테크도 필요하나 과함을 경계했으면 한다. 집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융자받고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하니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보다 조금은 적게 현재를 양보했으면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눈부시게 빛나는 젊음은 미래에 재현할 수 없기에 하는 말이다. 하긴 나이 많은 사람에게도 남아있는 삶 중에 오늘만큼 젊은 날은 없다. 가장 젊은 오늘, 현재가 중요하다.


혹시 네덜란드 생활이 행복하지 않아, 재미없어, 아니면 음식 맛이 없어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로 이주할 계획이 있다면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미래만큼 현재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경쟁이 일상이며 미래를 위해서는 당연히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광적으로 팽배한 나라에서 살아가기로 결정했다고 해도 결정을 존중한다. 대신 신발 끈을 동여매기 전 심호흡 가다듬고 숨 한번 크게 쉬었으면 한다. ‘경쟁자들 속에서 맹목적으로 뛸 것인가? 내 호흡을 지키며 뛸 것인가?’

삶은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에 가까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over pace다. 마라톤은 출발점을 빨리 뛰쳐나가는 사람이 이기는 경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결승점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사람만이 이기는 것도 아니다. 삶은 결승점을 통과하는 모든 이가 승자인 게임이다.

결승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스피드가 아니라 본인만의 호흡을 지키며 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60이 넘었으니 삶의 반환점은 돌았다고 생각한다. 중간중간 over pace로 인해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고유의 호흡을 지켰기에 여기까지 오는 것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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