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4. 잘 살고 있는지?(7):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정치가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역할

by 물가에 앉는 마음

전편의 마지막 문단: 세상사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은 모두 마음속에 존재한다고 하나보다. 손녀 다리에 있는 카페오레 반점으로 잠을 설친 아내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으나, 낙관적인 내 말을 듣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강아지 엄마 모임에서 자녀나 손주의 카페오레 반점을 레이저치료로 제거했다는 이야기보다 자연치료 했다는 여러 이야기에 천국 같은 시간을 맞이했다. 손녀 다리 뒤에 있는 희미한 카페오레 반점은 그대로 남아있다.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항상 남보다 앞서기 위해 뛰어간다.’ 삭막한 느낌이 들어 다시 한번 읽어보니 어순이 잘못된 듯하다. ‘항상 남보다 앞서기 위해 뛰어가지만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다.’ 푸근한 느낌이다. 하지만 삭막한 문장은 현실이고, 푸근한 문장은 구현해야 할 가치이자 마음속 세상인지 모른다.

공동이 추구하는 이익 또는 이념이 같다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은 빨리 도래할 것이다. 예를 들어 KBO에 속해 있는 10개 구단은 더불어 같이 살아가야 하고 리그 우승을 위해 각자 열심히 뛰어야 한다. KBO에는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는 프로들이 모여 있어 이익은 몰라도 이념은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10개 구단은 서로 이겨야 하는 경쟁관계다. 선수를 트레이드할 때 물론 전력보강에 필요한 선수를 영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성적은 그저 그래도 천적을 영입하는 경우도 있다.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상대를 이기기 위해 노력한다.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각 구단 내에는 주전과 백업이 있고 2군인 루키들이 있다. 주전이 부진하거나 부상을 당하면 백업이 주전 자리를 꿰찬다. 주전이나 백업이 부진하면 루키에게는 찬스다. 도저히 더불어 같이 살지 못하는 구조다. 하지만 주전의 노하우는 신인선수들에게 전수되어야 하며 야구는 한 명만 잘한다고 성적이 나아지는 게임이 아니다. 하나의 포지션을 놓고 치열한 경쟁은 하지만 팀 우승을 위해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한다.

반대로 시야를 넓혀 야구라는 커다란 울타리를 놓고 보면 초등학생 리그부터 일반인 리그까지 아마추어 선수들이 있고, 야구를 사랑하는 팬도 있다. 아마추어 야구가 활성화되어야 프로선수의 질이 높아지며 아마추어가 잘 되려면 야구팬 층이 두터워지고 야구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또한 팬은 광고를 부르며 시장을 키운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지 KBO혼자 독불장군처럼 살 수 없다. 이렇게 시야를 넓히니 같은 구단에서 포지션 경쟁을 하던 선수들은 동업자 위치로 바뀐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려면 시야를 넓혀야 하는가 보다.

하지만 요즈음 고등학생 유망주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프로야구의 미래를 어둡게 한단다.


물론 추구하는 이념과 이익이 달라도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구현할 수 있다. 이상적이기는 하나 이해갈등과 이념충돌로 불협화음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으니 조율이 필요하다. 해가 뜨고 달이 지며 물 흐르며 나고 죽는 세상사 모두를 하늘이 조율한다면 좋겠지만 인간사에 대해 調律(조율)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어느 나라나 갈등이 있고 불화가 있다. 우크라이나는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게 갈등이 많았다. 1991년 소련연방 붕괴로 독립, 친 러시아 파였던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탄핵과 도피,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돈바스의 분리 독립 투쟁 등을 겪은 우크라이나는 사실상 내전 상태와도 같은 국가적 위기에 처했다. 친서방파와 친러시아파 간의 갈등, 민족갈등, 이념갈등으로 우리나라보다 혼란스러웠을듯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3일 만에 정복하겠다는 전략을 수립했지만 ‘애국’, ‘국가수호’라는 기치아래 똘똘 뭉친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넘어서지 못했다. ‘코미디언 출신 초보대통령의 정치력 미흡’이란 조롱을 받았지만 국외로 피신 대신 잔류를 택했다. 결사항전을 독려하며 국민들을 뭉치게 했다. 러시아는 장기전 늪에 빠졌고 승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물리적으로는 비교할 수 없는 경제력, 군사력 격차를 정신력으로 극복하고 있는 중이다. 설령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을 점령한다 해도 국민들 의식이 살아있는 한 전쟁은 지속될 것이기에 괴뢰정부를 수립한다 해도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애국’, ‘국가수호’를 능가하는 명분과 상위의 이념적 단어를 만들어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산업화시대에는 같은 세대 내에서만 경쟁하던 시대에서 전 방위적으로 경쟁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졌다. 경쟁의 심화현상이 MZ세대에 가혹하다고 하나 어쩌면 기회 확장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재벌가 친인척이 아니면 30대, 40대가 임원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으나 이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3~40대 임원은 우연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의 소산물이다. 임원이 5~60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또는 차별화된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쏟은 노력과 흘린 땀은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다.

3~40대 임원, 30대 당대표..., 어느 누가 감히 열심히 뛰어가는 사람을 욕하고 탓할 수 있을까? 먼저 가기 위해 다리 걸고 목덜미를 잡아채는 부류가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남들이 뛰어갈 때 꼼수 부려 택시 타고 가는 경우도 있으니 편법, 탈법, 불법을 저지르는 이들을 욕하고 막아야 한다. 열심히 뛰어가는 젊은이들을 보호하고 격려하고 반칙을 저지르는 자들을 제지하고 처벌하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땀 흘릴 가치와 보람을 느끼고 노력하는 정의가 구현된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반칙과 탈법의 시대를 살아온 5~60대 선배들이 마지막으로 할 일이다.


대선에서 2~30대 표심이 당락을 좌우했다고 한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4~50대는 진보화, 6~70대는 보수화 되어 있어 어떤 구호도 먹히지 않을 것 같으니 가진 것 없어 불안하고 사회적 불만이 많은 2~30대가 타깃이 된듯하다. 여당은 여성 표를 결집시켰고 야당은 남성 표를 결집시켰다. 그 와중에 극심한 젠더갈등을 야기했다. 따지고 보면 남성과 여성은 평생 같은 곳을 바라보고 살아야 될 사람들인데 ‘더불어’가 아니라 ‘따로국밥’이 된 것이다.

시사토론에 나와서는 여야 구분 없이 ‘정치는 뺄셈이 아닌 덧셈 또는 곱셈의 정치를 해야 한다.’며 사회통합을 이야기하는 정치인들이 실전에서는 뺄셈인 ‘갈라 치기’에 몰두하고 덧셈 또는 곱셈인 ‘더불어 살아가는’에 부합하는 구호나 가치나 이념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이 사회가 사회구성원 일부만 잘 되어서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며 또한 그들의 책무임이 분명하기에 아쉬움을 넘어 화가 난다.

젤렌스키를 폄하하지 말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한 가치와 명분, 구호나 이념이든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것이 정치인이 할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식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했다. 물론 구현되지 않고 修辭(수사)에 그치고 말았으나 세대와 젠더를 포용하고 미래로 한 발 전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줬던 취임사였음은 분명하다.


새 정부는 물론 차기 정권을 노리는 정치집단은 세대 통합 또는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상위 개념의 폭넓은 메시지(아마 정치인들은 이를 거대담론이라 칭할 것 같다.)를 개발하고 실천을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나만 잘 사는, 내 진영만 잘 사는 사회와 국가는 반목과 이념대결로 다 같이 못 사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구현하는 것만이 정답이다.

여당의 ‘내로남불’이나 야당의 ‘尹망진창’ 등의 구호는 내부결속과 상대방을 흠집 내기 위한 자신의 조직만을 위한 구호에 불과하다. 물론 총선과 대선이 가까워지면 ‘더불어 함께하는’ 선거용 구호를 만들겠지만 현재는 정치가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과 비슷한 이야기가 이솝우화에 있기에 가져왔다.


손과 발과 胃(위)

손과 발이 胃에게 질투를 느꼈다. ‘우리가 고생해서 구해온 것들을 너 혼자서 다 차지하면 어떡하니? 우리는 고생만 하고 너는 가만히 놀기만 하지. 우리가 힘들게 구해오면 너는 받아먹기만 해. 그러니까 이제 둘 중 하나를 골라. 너도 일을 해서 네가 먹을 걸 해결하든지, 아니면 굶어 죽든지.’

그다음부터 손과 발은 胃를 모른 척했다. 胃는 먹을 것을 구할 줄 몰라 매우 겸손하게 손과 발에게 몇 번이고 도와달라고 사정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몇 날 며칠 아무것도 먹지 못하자 胃의 열기가 사그라지면서 목이 바짝 타들어가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손과 발은 그제야 몸 전체와 함께 자기도 죽어간다는 것을 깨닫고 많은 음식을 구해왔지만, 이미 胃는 아무것도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었다. 이렇게 손과 발은 胃와 함께 죽어갔다. - 정본 이솝우화 (권미선譯, 창비刊) -


* 자주 등장한 단어 ‘더불어’는 특정 정당 명칭과 전혀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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