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설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도 정치를 외면할 수 없다. 삶 속에 자연스럽게 정치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세금과 의료보험, 노령연금에도 정치가 있고 심지어는 전기요금, TV수신료와 휘발유가격에도 정치가 있다. 또한 정치색이 없다는 사람도 보수 또는 진보의 특정성향을 갖게 된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빨갱이’가 싫어 남쪽으로 내려온 실향민 부모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보수’가 되었다. 물론 ‘진보’가 빨갱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보수와 진보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봤던 기억이 있었는지 확실치 않다.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는 상극과 같이 대척점에 서있으며 화해할 수 없는 것일까?
전생에서 원수지간이었는지 몰라도 적어도 여의도를 보면 화해는 불가능한 일인 듯하다. 국회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를 일삼는다. 또한 집권여부에 따라 반대했던 사안은 찬성으로 바뀌고 찬성은 반대로 둔갑한다. 하지만 회의가 끝나고 카메라가 멈추면 서로 웃으며 악수하고, 호형호제하며 술잔을 나누는 동업자 사이란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물론 일부 의식 있고 열심히 일하는 정치인은 예외다. (일부 의식 없는 정치인에 해당되는 이야기겠지만...이라고 끄적거렸다가 표현을 바꿨다. 대다수가 선량한 국회의원이란 의미로 읽힐까 봐.) 여의도에서 일하는 300명은 고유의 화법과 문화라며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黨利黨略(당리당략)과 본인의 私益(사익)은 있으나 國利民福(국리민복)은 보이지 않기에 대다수 국민은 정치인들을 市井雜輩(시정잡배)로 생각한다.
여야가 딴 나라 사람 같아도, 국민 지탄받는 집단이라 할지라도 표면적으로는 지향하는 목표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행복하게 잘 사는 국가건설’이라는 목표는 보수와 진보가 동일할진대 세상을 보는 관점은 조금 다른듯하다. 기존 가치를 존중하고 유지하려는 보수는 시장의 자율적인 조절기능을 신뢰하고 시장경제주의를 지향한다. 자연스럽게 기업 편에 서니 기업과 정치가 가까워지는 정경유착이 발생한다.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경제활동에 개입해 부를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는 이념적으로 노동자 편에 설 수밖에 없다. 진보의 눈에는 기업의 편에 서는, 기존 가치를 존중하거나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보수가 예쁘지 않다. 혹시 적폐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서 유추가 가능하다. 보수가 시장경제주의를 지향하는 등 친기업적이니 정경유착을 낳고 기업은 보수정치인을 금전적으로 후원하니 부패 고리가 형성된다. 이로 인해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그러면 진보는 왜 분열로 망할까? 또한 부패와 무관하게 깨끗할까? ‘평등’을 커다란 가치로 생각하는 진보는 기업가보다 노동자 편에 서서 기업가들이 노동자들을 위해 기여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강제한다. 기업을 규제하니 기업가들은 진보에 대해 후원하지 않고 돈 없는 노동자들은 돈아 없어 진보를 후원하지 못한다. 태생적으로 ‘청렴’해서 부패와 멀어진 것이 아니라 지지자들로부터 먹을 돈이 없어 부패하지 못한 것이다.
혁신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주의자들은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혁하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해방 후 배운 사람들은 진보주의자들이 많았다. 머리에 들은 것이 많으니 진보주의자 간 이견이 많아 진보 내에도 급진파, 중도파, 보수파 등 수많은 분파가 생겨난다. ‘진보는 분열하며 선명성을 경쟁하면서 망한다.’
하지만 작금의 사태를 보면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과거 정설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박근혜대통령 탄핵당시 보수는 분열했고 진보는 단합했다. 최근 교육감선거를 보면 진보는 후보단일화, 보수는 후보난립으로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탄생했다. 대권과 국회다수당은 물론 지방권력까지 내준 보수가 망한 원인은 부패가 아닌 분열이었다. 물론 박근혜대통령이전 보수는 차떼기 당으로 불렸고 부패로 망한 이력을 갖고 있다.
최근 진보를 보면 진보의 가치인 도덕과 청렴을 어디에 감췄는지 머리카락도 보이질 않는다.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의 성추문이 있었으며, 발가락까지 합해도 부족한 부정부패가 있었다. 자녀입시서류 조작, 위안부할머니 모금액 횡령, 전임 당대표 선출과 관련된 돈 봉투거래, 쪼잔해 입에도 올리기 부끄러운 소고기, 초밥, 샌드위치를 비롯한 당대표와 관련된 수많은 의혹, 회사 재산과 주식을 불법 횡령한 이스타항공 사건 등 추문과 부정부패 연루로 진보 가치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미국은 로비스트가 합법화되어 있어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규제법안을 만들되 약하게 만들라고 로비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로비스트가 불법이나 물밑 작업을 통해 로비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어쨌든 대한민국 진보는 분열이 아닌 부패로 망했다. 20대 대선 실패 원인은 부정부패와 내로남불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었다. 아직 의회권력을 갖고 있으므로 망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진보의 가치인 도덕과 청렴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낭떠러지를 향해 돌진하는 열차를 탄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와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할까?’라는 화두는 현실과는 맞지 않으니 사멸되어야 할 것 같다. ‘보수와 진보는 모두 부패했고 본인들의 이익을 좇아 분열과 단결을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국가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뒷전으로 물린 체...
‘국민은 위대하다.’는 상투적이며 식상한 립서비스를 남발하는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냉소적이다. 후대와 젊은 세대에게는 시급한 당면문제인 연금개혁과 노동개혁은 정파 이익에 따라 찬성과 반대를 거듭할 것이며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여야합의는 물 건너갔다. 만약 합의가 된다면 퍼주기식 또는 기괴한 모양의 게리맨더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민이 정치권을 걱정하는 이상한 나라, 인구소멸과 환경오염, 이상기후가 대한민국의 위기요인이 아니라 정치가 최대위기인 이상한 나라가 되어가는 상황에서는 국민들이 회초리를 들 수밖에 없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등소평의 黑猫白描論(흑묘백묘론)을 생각하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국민 행복을 우선하는 정파의 등장을 기대한다. 부패와 분열로 점철된 보수와 진보대신 평등과 자유정신으로 무장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하이브리드정파가 등장한다면 다음 선거에서는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를 따지지 않을 작정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의 흥미로운 유래를 찾게 되었다.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 후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수립되었다. 의원들이 선출되고 입법부인 국민공회가 개최되었다. 좌측에는 급진, 개혁성향인 자코뱅파가, 우측에는 자본가 온건선향의 지롱드 파가 앉게 되었다.
같은 시민계급에서 성향에 따라 의견이 충돌하게 되는 좌파, 우파가 탄생하게 되었다. 시민 80%가 급진, 개혁성향의 노동자였으며 20%가 온건하게 체제의 안정을 원하는 사업가계층이었다. 여기에서 좌파가 진보로 우파가 보수로 연결되게 된다.’
프랑스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는 딴 나라 사람인가? 루이 16세의 왕정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로 같은 혁명군이었으며 루이 16세와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체포하고 처형한 동지들이다. 지향점은 같으나 추진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