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비도 3천원이 아닌 3만원으로 올리고,
책 주문한지 보름이 넘어 가는데도 언제 배달될지 기약도 없다. 노동조합이 파업을 시작하면 어느 선에서 노사합의를 이루고 파업을 철회하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는 파업지도부가 원하는 선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파업 시나리오 없이 파업을 강행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시나리오 없이 파업했다고는 상상할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지도부 능력이 없다는 이야기로 지도부 교체를 권한다. 우리 집 강아지는 노즈워크(Nose Work) 장난감을 주면 어떻게 풀어야할까 생각한다. 차기 파업은 강아지가 더 잘 할 수 있다.
30년 전 회사 파업은 성공하지 못했다. 필수공익산업체는 필수업무유지인력을 제외한 나머지 인력만 파업에 참여할 수 있으므로 동력이 약하다. 필수업무유지인력을 제외한 조합원들이 본사에 집결하여 농성에 들어갔고 본사간부들은 비상대기하며 회사에서 먹고 잤다. 파업 시작 분위기는 좋았다. 창문 너머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이 무대에 올라가 노동가요도 부르며 군무를 춘다. 따뜻한 커피를 타서 오랜만에 만난 직원들과 해후하고 격려도 했다.
내 책상이 회의실과 붙어있었다. 석고보드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조합 비상대책위원회가 열렸다. 듣고자 한 것은 아니지만 회의 내용이 생생하게 들리니 실시간으로 도청 아닌 도청을 하는 셈이다. 해산이 예정된 일요일 아침, 조합간부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어떻게 할 것인가? 향후 일정은 무엇인가?’ 조합에도 강경파와 온건파, 여와 야가 있기 마련이다. 고성이 오고가고 파업 주도 집행부가 쩔쩔매고 있었다.
멀리 부산, 광주에서 버스를 대절하고 온 사업장 노조원들은 이미 파업했던 장소를 청소하고 버스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이미 강철 같은 파업대오는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파업 시나리오가 부실했던 지도부는 치밀하고 강경하지 못했다. 공기업이 파업하며 전력공급의 차질을 우려한 정부는 정비시장개방이라는 강수를 밀어붙였다.
주문한 책 제목도 가물가물 해졌으니 배달되지 않는다 해도 문제될 것 없고 기다려지지도 않는다. 시간을 더 끈다 해도 무방하고 그동안 택배아저씨들에게 쌓였던 고마움도 모두 녹아내려 흔적도 없어진 듯하다. 하지만 파업을 응원하겠다. 이왕 시작한 파업이니 제대로 그리고 세게 해서 노사 모두 파업효과를 제대로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러 번 파업으로 고객 불편을 초래하기 보다는 한 번에 몰아서 했으면 좋겠다. 향후 몇 년간 파업 없이 택배를 받아보기 위해서는 눈높이도 높여 협상했으면 한다. 지난번 파업 시 합의 결과는 고객 입장에서 봐도 실망이었다. 5000원도 아닌 500원인상이라니, 요즈음 500원으로는 호떡하나도 사지 못한다. 이번에는 택배사와 택배원 모두 10000% 만족하는 합의된 결과를 내고 항구적 무파업 선언을 했으면 한다. 항구적 무파업을 위해서는 노사 모두에게 상당한 당근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택배원 생존권과 택배사 이익을 위해 택배비도 3천원이 아닌 3만원으로 올리고,
택배원 건강권을 위해 택배무게도 10Kg가 아닌 1Kg으로 제한하며,
택배원의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택배중이라도 5시 정각에 업무를 마감하며,
택배원 재산권 보호를 위해 냄새나거나 물 흐르는 택배는 취급하지 않으며,
택배원 수면권을 위해 새벽배송을 금지하고 업무시작은 9시로 한다.
택배원만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주문자 건강권을 위해 택배차량 중심 10Km이내 거주자는 필히 도보로 와서 택배 물건을 수령하며, 엘리베이터나 자가용 이용 시 적발되는 경우에는 택배주문권리를 영구 박탈한다. 모두 주문자를 위해서다.
주문자의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택배 수령차 20층에서 내려오다 5시를 넘겼다면 다시 올라가야 하며
주문자 수면권을 위해 저녁 9시 이후 주문을 금지하며
주문자의 건전한 소비활동을 유도하기 위해 전 국민 최대 월1회 주문도 법제화 한다.
또한 택배원의 당연한 인권보호를 위해 계약 특수조건도 걸었으면 좋겠다.
신선식품 변질은 생산자 책임이니 택배원에게 신선 보장을 요구할 수 없다. 주문자는 프라이드치킨이 아닌 살아있는 닭을 주문하기 바라며, 소 돼지도 마찬가지다. 다만, 제한 중량 1Kg은 준수해야 한다.
비오고 눈 오는 날 이외 택배원 기분이 언짢은 날도 천재지변에 준하는 것으로 간주하니 택배를 기다리지 말라.
주문자가 공손하게 두 손으로 택배를 수령하지 않을 시는 인도하지 않아도 되며, ‘공손하게의 기준’은 지면과 두 팔의 각도가 45도 미만이었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
주문자에 대한 예절교육을 위해서는 얼차려까지 가능하며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한다.
주문자 인권도 중요하므로 체벌을 금지한다. 단, 얼차려 받는 태도가 불량 또는 불손한 경우에는 니킥과 관절꺾기, 암바를 포함한 체벌도 가능하다. 그러나 치명적인 길로틴초크만은 허용하지 않는다.
이정도 선에서 합의를 한다면 노사모두 만족한 수준이 아닐까 한다.
대신 주문자도 택배사와 택배원에 대한 선택권을 갖고 주문 시 활용했으면 좋겠다. 정부는 파업으로 애먹인 택배회사와 택배원의 실명 명단을 공개하여 주문자가 선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플랫폼을 설계 운영, 허가해라.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은 존재하나 택배회사와 택배원을 선택하는 플랫폼이 빠져있어 경쟁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으며 파업빈도가 높다. 택배 조합 요구나 사측 대응에는 관심도 없고 공정하고 정당하게 경쟁하는 구도만 조성했으면 한다.
몇 년 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는 이야기를 들었건만 불평등, 불공정, 불법만 판치는 세상으로 가는 것이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노사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필히 반대급부가 뒤따라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이치다. 하지만 미처 돌아가는 사회는 비정상이 판을 쳐서 파업회사의 자동차도, 갑질회사의 우유도, 비리혐의의 의원도 시간 지나면 팔리고 선출된다.
화가 나서 말도 안 되는 내용을 끄적거리는 것이 4페이지를 넘어가는 것을 보니 맺힌 게 많았는가 보다. 책은 그렇다 치고 반려견 치료약은 언제 올 것인가?
PS1.
끄적거리고 있는 도중 서점에서 문자를 보냈다. ‘죄송하지만 주문 취소하겠습니다. 사례로 2000원 할인쿠폰 보내드립니다.’ 책 주문한지 23일째이며 주문한 책은 근처에 있지만 다시 반품될 날짜를 기다리고 있다. 인터넷서점의 잘못은 무엇인가? 반려견 치료약은 아직도 파업 볼모로 잡혀있다.
PS2.
배달료인상에 맞서기 위해 배달음식 끊기 릴레이와 아파트 단톡방을 이용한 단체주문으로 배달료를 절감한다는 기사를 봤다. 이제 택배노사는 국민들과 힘겨루기를 해야 할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PS3.
신기하다. 화가 나서 끄적거리고 있는 사이, 행동에 나서는 사람들이 생겼다. 역시 나는 손가락만 빠르고 행동은 굼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