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 이후의 삶은 아프지 않고 수월한 삶인가?
앤서니 라빈스는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에서 우리가 평범한 삶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 가운데 하나를 나이아가라 증후군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이아가라 증후군이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생을 지내는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디로 가겠다는 구체적인 결정을 하지도 않은 채 그냥 인생이라는 강물에 뛰어든다.” 그리고는 강물에 휩쓸려 흘러가며 여러 가지 시간이나 두려움 또는 도전에 맞닥뜨리게 된다. 또 강물을 따라 가다보면 어디로 가야 할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좋은지 결정하지 못하고 물결 따라 흘러갈 뿐이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을 저자는 “자신의 가치관이 아닌 사회적 환경에 휘둘리는 집단의 일원”이라 부르고 결과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무의식적인 상태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물살이 빨라지고 요동치는 소리에 깨어나니..., 바로 몇 미터 앞에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음을 발견하지만 배를 강변으로 저어갈 노조차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아!’하고 한탄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결국 물결에 휩쓸려 모두가 폭포의 낭떠러지로 추락하게 된다.
- 경영의 시선으로 미래를 생각하다 (곽수일著, 시대의 창刊) -
오래된 책을 읽다 새삼스럽게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이아가라 증후군’이란 것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도차이는 있겠지만 개인주의, 주관적 성향이 강한 서양에서도 내 삶의 주인임을 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고 위안 아닌 위안이 되었다.
나이아가라 증후군이 우리나라만의 고유특성이라면 헬조선이 맞지만 경제성장과정에서 공통적으로 파생되는 부정적 산물이다. 인간관계보다 생산성과 효율이 중시되어 압축경제성장을 이뤘으나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국민행복도가 저하하며 자살률이 증가하는 등의 사회적비용을 지불하는 반대급부가 생겼다.
얼마 전 비슷한 맥락의 글을 썼는데 내 이야기다.
청소년기를 지나 부모 품을 떠나 독립해야 하는 청춘들, 불안하고 앞날이 막막하기는 매한가지다. 가진 것이라고는 오직 젊음뿐이니 미래는 온통 뿌연 안개 속이다. 청춘의 불안은 막막함이었지만, 어쩌면 중장년기 불안은 직업/사업에서의 성공, 자녀교육, 주거환경, 정치/사회의 안정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하지만,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면서도 남이 뛰어가니 휩쓸려 뛰어야 하는 세대이다. 그나마 이런 대화라도 나누면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은 사람들이다.
A: 어이, 왜 뛰는데?
B: 몰라!
A: 그러면 어디로 뛰어가는데?
B: 몰라…! 그러는 너는 왜 뛰어?
A: ??? 네가 뛰니까!!!
중, 장년기에는 물어보는 사람도 낙오되지 않기 위해 덩달아 뛰어야 한다. 왜?, 어디로? 묻지 않았지만, 정신없이 달린 덕에 무사히 은퇴했지만, 인생을 달관하는 ‘이순’ 이후의 삶은 아프지 않고 수월한 삶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는 고독이 기다리고 있다.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싶지만, 손발 움직이는 속도는 현저히 줄었다.
論語 陽貨篇(논어 양화편)에 其未得之也 患得之 旣得之 患失之(기미득지야 환득지 기득지 환실지)란 문구가 있다. ‘벼슬이나 지위를 얻기 전에는 얻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얻고 난 뒤에는 얻은 것을 잃어버리면 어쩔까하고 고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공자는 비유의 大家였기에 얻으려는 것이 벼슬이나 지위뿐 아니라 재산 일수도 있고, 영토일수도 있다. 공자가 활동했던 춘추시대 욕구였던 벼슬, 지위, 재산, 영토 등이 비유 대상이었을 것이다.
논어는 시대를 관통해 내려온 현실속 철학이기에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남녀 간의 밀고 당기는 사랑도 비슷한 감정일수 있다. 직장 내에서의 승진과 명예, 원하던 아파트나 명품 승용차가 될 수도 있고 학생이라면 학급에서의 등수 등 개인이 원하는 모든 욕구가 될 것이다. 간절히 원했기에, 얻지 못할까 노심초사 했으며, 얻은 후에는 혹시 잃어버릴까봐 또는 신상이 나와 다시 얻어야 하는 욕구로 인해 고민하는 그런 것.
나이아가라 증후군을 심하게 앓았었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달리다 언뜻 정신차려본 40대 삶은 방황하고 고민하느라 너무 황량했었다. 좋은 직원들 만나 단합된 팀을 만들고 존경받는 팀장이었으며 고객관계도 좋았기에 현장 팀장으로서 모든 것을 갖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이룬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불안하고 한편으로 초조하고 허전했다.
경제력 유무로 인한 문제가 아니라 ‘내 삶’에 대한 문제였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만 해도 훌륭하고 행복한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이 많았던 탓이다. 뒤쫓아 오는 사람이 없는데도 추월당할 것 같은 초조함,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 욕심,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섭섭함 등이 복합되었을 것이다. 차라리 ‘결국 물결에 휩쓸려 모두가 폭포의 낭떠러지로 추락’ 하는 삶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위험한 생각도 해봤지만 결국 삶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는 길을 선택했다. 책 속에서 방황하는 원인과 해법을 찾았기에 이내 바로 잡았지만 정신적으로 탈진상태가 아니었나 한다.
공자는 ‘부를 얻기 전에는 얻지 못하면 어쩔까 하고 걱정하고, 얻고 난 뒤에는 얻은 것을 잃어버리면 어쩔까하고 걱정한다.’고 말했다. 이와 비슷하게 쇼펜하우어는‘행복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루지 못한 욕구는 고통을 불러일으키고 욕구의 성취는 싫증을 가져올 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행복론은 결국 어린아이가 무지개를 좇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욕구충족을 위해 돈을 벌어 부를 달성하면 행복은 저만큼 멀어져 있고, 다시 또 부를 묵적해 목표를 달성하면 행복은 무지개처럼 그만큼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 아주 낯익은 지식들로 시작하는 인문학 공부 (신동기著, 아틀라스 북스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