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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4. 인생 2모작

'집사람은 편하게 살림만 한다.’는 말은 100% 틀린 것

by 물가에 앉는 마음

‘남편은 힘들게 돈 벌고 집사람은 편하게 살림만 한다.’는 말은 100% 틀린 것이며 가사노동을 경험해 보지 않고 편하게 직장생활만 해본 사람들 억지주장이다. 퇴직 후 6개월여 기간을 노모의 병 수발과 전업주부도 아닌 집사람 돕는 역할을 해봤는데 노동 강도가 매우 높았다. 물론 잠자리가 바뀌면 잠 못 이루는 까탈스러운 성격 탓도 있지만 눈의 실핏줄이 두 번이나 터졌다. 믿거나 말거나 집사람 폭력에 의한 것은 절대 아니다. 가정주부들이 햇살 따뜻한 창가에서 한가롭게 책 펴고 커피 한잔하는 사진이나 그림은 作爲的(작위적)연출에 의한 허구임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가끔 눈에 속고 귀에 속는 우를 범한다.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신 병약한 노모는 자택에서 요양중이다. 요양병원은 코로나로 인해 더욱 위험한 곳이 되었기에 노모를 간호하고 반려견 산책시키고 집밥 만드는 일이 퇴직 후 주요 일과였다. 펜데믹이 없었다면 거의 매일 물가에 앉아 졸거나 찌 올림을 쳐다봤을 텐데, 코로나는 즐기는 놀이를 빼앗아갔고 민망하게도 효자 같지도 않은 효자를 만들 뻔 했다. 원래 음식재료를 다듬고 써는 칼질을 잘했지만 칼솜씨는 일취월장 했고 반려견이 주인을 닮아 매우 규칙적으로 생활습관을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해가 바뀌면서 다행스럽게도 노모 병세가 차도를 보여 한숨 돌릴 즈음 가사노동 굴레에서 벗어나 출근할 곳이 생겼다. 가사도우미로 전업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분들이 많았나 보다. 관심 있게 지켜보시는 선, 후배님들이 추천한 자리는 지옥문이라 할지라도 들어가야 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퇴직 후에는 ‘長(장)’이란 직함이 붙는 자리에는 앉지 않으려했지만 세상사를 내 입맛에만 맞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조직 규모로 볼 때 입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내 손으로 처리해야할 일들도 많을 것 같기에 ‘長’이란 직함에는 개의치 않으려 한다.

평생직장이었던 곳의 이익과 반하는 자리에 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퇴직하자마자 처지와 입장이 돌변하면 옛 동료들 만나는 것이 곤혹스러워졌을 것이다. 새 직장은 정비업체들의 공통 현안에 대응하고 공동이익을 추구하기위해 설립한 사단법인이다. 사무국장이란 직함을 유추해석 하면 협회 살림을 사는 것이므로 어쩌면 지난 6개월간 가사도우미 경험이 도움 될 수 있으리란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해본다.


입사 후 12번 정도 전근 다녔다. 轉職(전직)이 아닌 轉勤(전근)이었지만 첫 출근은 항상 설레고 흥분되었는데 새 직장이라 가슴이 제멋대로 나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오랜만에 맨 넥타이는 역시 어색하고 거북하지만 이것도 첫 출근이니 감수해야 한다. 러시아워 없는 시골에 살다가 혼잡한 강남으로 출, 퇴근해야 하는 부담이 생겼으나 최적 방법을 찾기 위해 시행착오를 몇 번 겪다보면 익숙해 질 것이다.


전 직장에서 산전수전을 겪었다 해도 신입사원과 진배없으므로 얼굴 익히고 업무 파악 하는 것이 우선이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들이 있을 것이고 알고 있는 것보다 배울 것이 많을 것이다. 2년이란 기간은 길지 않기에 조급함이 앞설 수 있지만 바늘허리에 실을 맬 수 없다. 지난 35년간 해왔던 것처럼 느려도 한발 한발 꾸준히 걷고자 한다. 사실 내 장점은 독하게 질기고 꾸준한 것 밖에 없다.


지난날을 되짚어보니 선친의 행로와 닮은 면이 있는듯하다. 365일 신문이 발간되는 시기였기에 달력에만 빨간 날이 존재했지 명절에도 길게 쉬지 못하던 직장이 신문사였다. 물론 틈틈이 낚시를 하셨고 언론인 낚시대회, 연예인 낚시대회를 만드는 데에도 관여하셨다. 요즈음 생각해보면 당신이 공식적으로 낚시 하기위해 대회를 만든 것이 아니었나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것은 전방시찰이 끝난 후 잠시 짬을 내서 초병 경계 하에 낚시하실 정도로 낚시광 이셨기 때문이다.

선친은 정년 퇴직 후 쾌재를 부르셨다. 매일 낚시 다니시며 ‘이렇게 좋은 것을, 진작 그만둘 걸’이란 말을 자주하셨는데 회춘하신 듯 목소리도 좋아지셨다. 한이 맺힌 듯 낚시와 술로 소일하시더니 6개월 만에 백기투항하시고 논설위원으로 재취업하셨다. 논설위원도 전공이 나뉜다. ‘정치’나 ‘경제’를 담당한 논설위원들은 대두된 issue에 발 빠르게 논설을 써야하므로 원고마감시간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나 선친은 ‘문화’를 담당하셨기에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셨을 듯하다.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인생3모작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50대 은퇴 후 재취업하며 2모작을 하고, 60대에는 사회공헌활동으로 3모작을 해야 한다고 한다. 61세 은퇴 후 재취업했으니 매우 느리게 2모작을 시작한다. 선친은 인생 2모작 후 아파트 화단 가꾸기로 3모작을 하셨다. 손재주 없는 나의 인생 3모작은 2모작을 하면서 생각해 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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