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내년에도 손, 발톱을 깍아드릴 수 있을까
숫자에 밝으셨던 어머니는 이제 계산도 잘 못하실 정도로 총기가 흐려지고 노래로 다져졌던 카랑카랑한 목소리도 가라앉았다. 아버지 술손님이 넘쳐나 연희옥이라 불렸을 만큼 수십 년간 여러 가지 술안주를 만드셨던 어머니는 손수 음식 만들 일이 줄어드니 레시피도 거의 잊어버리셨다. 언젠가는 해파리냉채에 어울리지 않는 소고기를 넣으셨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된장찌개 드시고 싶다면 우거지에 된장 풀고 멸치, 다시마, 양파, 마늘 넣어라 하며 감독하시는 정도다. 가끔 약식을 만드시는데 ‘제대로 재료를 넣으시는지? 맛은 예전과 그대로인지?’로 어머니의 간접적인 정신 상태를 가늠하기 위해 말리지 않고 있다. 집사람도 ‘그나마 약식을 하실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며 고맙게 받고 감사히 먹고 있다.
100세 시대라지만 89세의 어머님은 암수술과 몇 번의 저혈당 쇼크, 뇌출혈, 낙상으로 인한 골절로 기력이 많이 쇠하셨고 고혈압, 갑상선, 관절염 등 많은 병을 앓고 계시다. 정신적으로도 많이 약해지신 반면 고집은 세 지셨다. 물론 판단력이 흐려지실 때도 되셨고 아마도 그것이 노인성 치매 전조증상 이라고 해도 더 급한 병들이 많아 드시는 약이 한 움큼이나 되니 치료 순위에서 밀린다.
건강을 잃으시기 전에는 일산에서 홍제동까지 지하철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교회를 다니셨다.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교회 다니시기 불편해지자 교회 옆 아파트로 이사하셨다. 지팡이 짚는 것이 창피하다 하시더니 이내 지팡이 신세를 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까운 거리인데도 차를 타셔야 했다. 이제는 바깥출입은 못하시고 겨우 집안에서만 비틀거리며 힘겹게 다니신다. 듣도 보도 못했던 장애인용 물품과 친해져야할 시간이 된 것이다. 아기 보행기 같은 워커, 변기에 설치하는 손잡이, 목욕용 의자, 곳곳에 안전손잡이와 미끄럼 방지매트를 설치했다. 저혈당으로 의식을 잃는 경우가 있어 CCTV로 모니터링도 하고 있다. 체력관리를 위해 좌석이 높은 일반형 헬스자전거가 아닌 좌식 헬스자전거를, 주기적으로 병원에 다니셔야 하니 외출용 휠체어도 구매했다. 아침에 네발, 점심에는 두발, 저녁에는 세발인 동물이 사람이라는데 세발을 지나니 늦은 저녁용으로 네 바퀴가 기다리고 있었다.
요양보호사가 있지만 자식들이 1박2일씩 돌아가며 수발을 들었다. 나는 때맞춰 퇴직했기에 시간도 많고 코로나19로 바깥활동이 줄어드니 딱히 시간 보낼 일도 없었다. 책 한권 들고 어머니 댁에 가서 수발들고, 하루 세끼 챙기고 빨래, 청소, 식사준비 하다보면 책 몇 장 넘기지 못하고 하루해가 저문다. 수발 든다 해도 몇 번을 넘어져 골절상을 당하셨다. 문턱이 있는 가정집 구조에서는 골절상을 예방하기 어렵다.
아마도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기전 마지막 효도를 받으시려는 듯 용케 해를 넘기신 어머니는 다행스럽게도 기력도 좋아지셨다. 자식들에게 신세지지 않겠다는 것은 어머니 생각이다. 그리고 우리를 그렇게 키우셨다. 거동이 더 불편해지면 요양병원에 들어가신다며 이미 입원비까지 준비하고 계시다. 당신도 요양병원 입원하시면 집에 다시 돌아오시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에 혼자 움직이려 노력하지만 세월의 풍파는 인간의 의지를 서서히 갉아먹을 것이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하늘나라로 가신 친척 분들을 여럿 봤다. 요양병원에서는 주로 누워계시니 근력이 떨어지기에 퇴원해서 혼자 생활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작은고모는 낙상에 의한 골절로 장기 입원하셨다가 퇴원하셨으나 운동부족으로 근력이 떨어져 일상생활이 불편하자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지하에 장례식장이 있고 꼭대기 층에 교회가 있던 요양병원을 보고는 미처 돌아가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괴물처럼 보였다. 평일에는 입원실에 누워 계시다가, 주말에는 위층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돌아가시면 지하실 장례식장에서 요단강을 건너라는 것이 도덕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생활해보니 괴물처럼 보였던 그 요양병원 구조가 신박하게 다가왔다. 병원 내에서 휠체어만 타면 천국에 까지 갈수 있으니 말이다.
얼마 전 책을 보다 최근 내 모습과 똑같은 글을 읽게 되었다. 매번 늙은 어머니 발톱을 깎아드릴 때마다 한편으로 속상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이 먹먹했었다. ‘내가 언제까지 깎아드릴 수 있을까? 과연 내년에도 ‘움직이지 마세요.’하면서 손, 발톱을 깍아드릴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도 부모 자식의 관계는 바뀌지 않지만, 그 위치는 바뀌게 됩니다. 자식이 부모의 보호자 위치에 서게 되는 날이 오는 겁니다. 보호자였던 부모님이 그러하였듯, 이제는 우리가 부모님의 보호자로서 사랑과 정성을 바쳐야 하죠. 이제는 내가 부모님의 발톱을 깎아드려야 할 때입니다. 조그만 발을 쥐고 또각또각 발톱을 깎습니다. 발톱을 깎으며 자식이 말합니다. ‘가만히 계세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말해놓고 보니 어디서 많이 듣던 말입니다. 어릴 적 내 손발톱을 깎거나, 당신 무르팍에 놓인 내 귀를 파주셨을 때면 늘 하시던 어머니 말씀을 이제 제가 어머니께 하는 겁니다. -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정찬재著, 인플루엔셜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