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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May 22. 2024

-15. 스스로 알아서 일하는 직원들이 되길...

 타 팀이나 타 사업소 근무하는 직원들이 가끔 질문한다. ‘전기팀 냉장고에는 먹거리가 넘쳐나고, 사보 내용처럼 재미있게 생활하고 있습니까? 정말이라면 저도 근무해보고 싶군요.’

 항상 그럴리야 있겠습니까? 단편적인 것만 이야기하니 항상 재미있게 생활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요. 냉장고가 비어있을 때도 있다. 우리 팀 식구들이 생활하는 것을 그려낸 것이나 가끔은 이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인 내용도 있지요.‘ 

 ‘전부가 성인이고 집에 가면 존경받는 가장이자 아빠인데 공개 석상에서 누구는 잘못했고, 누구는 잘했으니 본받아라 할 수는 없습니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전달은 빨라도  역효과가 많으니 우회적으로 우리 팀 식구들에게 해야 할 이야기를 쓰는 겁니다.’ 짧게 대답했으나 예를 들면 이렇다.

 집안 행사가 있는 직원들은 꿀떡 한 박스씩 해오는 것이 통상적인 경우이나, 아이 백일이라고 백설기를 두 박스나 해온 일용직원이 있었다. 한 박스면 40명이 먹기에 충분하나 덩어리가 크다 보니 40덩어리가 되지 않아 누구는 한 덩어리를, 누구는 반 덩어리를 먹게 되었다.

 물론 내 몫으로는 한 덩어리를 예쁘게 썰어 접시에 담아왔다. 전 직원의 입을 즐겁게 해 주려 떡을 해온 것은 보기 좋았으나, 나눠 먹는 과정이 보기에 좋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백설기를 해오지 말던가, 40덩어리 이상을 갖고 오던가라고 말을 하면 서로가 쉽게 알아들을 텐데, 한 덩이든 반 덩이든 맛있게 먹고 있는 백설기 맛이 떨어질까 봐 조금 참고 며칠 후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공고를 붙였다.


 해병대 배식을 아십니까?

 요즘은 배부르고 따뜻하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대는 항상 배고프고 추운 곳이었지요. 특히 훈련병시절의 배고픔은 참기 힘든 고통 중의 하나입니다. 야외훈련 나가서 식사시간이 되면 전 대원이 국과 밥통을 앞에 놓고 줄을 서서 자율배식을 하게 됩니다. 바위라도 씹어 삼킬만한 건장한 청년들이 허기져 있으니 밥과 국 냄새에 정신이 혼미해져 양껏 퍼갑니다. 반수 이상의 대원들이 남아있는데도 밥통의 밑바닥이 보이자 빨간 모자 교관이 ‘동작 그만 원위치’를 외칩니다.

 그러기를 몇 차례, 드디어 마지막 대원까지 먹고도 남을만한 밥이 남았으니 재식에 성공했지요. 수저로 한 숟가락을 입에 넣기도 전에 ‘동작 그만 식사 끝!’이라는 구령 한마디에 전 대원이 굶고 말았죠. 해병대는 밥을 먹는 것조차 훈련입니다. 협동 단결하는 전우애와 어려움 속에서도 남을 배려하는 자세를 훈련시키기 위함인데 우리 팀은 어떠합니까?


 물론 떡 한 덩이 못 먹는다고 굶어 죽지도, 발전소가 정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일 할 때도 나는 모르는 분야니까, 어제 과음해서 피곤하니까, 나 말고도 다른 직원들이 있으니까 하면서 안이한 생각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노파심에서 공지문을 게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팀 식구들 사고는 매우 건전해서 나의 노파심은 기우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은 직원들을 특별히 배려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간접화법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내 정신건강에도 좋습니다. 우리 팀에서는 전달사항이 있는 경우 공고를 붙이고 내용에 따라 식구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이야기하다 보니 지난번 ‘전기팀장은 정말로 화도 안 내고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나요’라고 전화하셨던 그분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빠진 것 같네요. 또다시 전화하는 것은 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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