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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Jul 16. 2024

892. 친구 만나러 양양에

의상대에서 해송사이로 보는 동해바다는 언제 봐도 시원하다.

 퇴직 후 양양에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친구가 초대했다. 초대받은 두 명의 실업자는 무엇이 바쁜지 시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아 몇 번의 조율 끝에 택일이 되었다. 순로상으로는 내 차를 갖고 친구 픽업 후 양양에 가야 하는데 차에 엔진경고등이 들어와 친구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친구는 로스팅사부이자 신기하게도 전국의 맛집을 꿰고 있다. 퇴직하기 전에도 출장 다닐 때는 친구찬스를 여러 번 사용했었다. 아직도 전국의 숨은 맛집 상호와 메뉴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경이로운 수준이다.


 재직 중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했던 양양 친구는 퇴직 후에도 꼼꼼하고 섬세하다. 양양 친구집에서 지난 이야기 하며 잠을 자기로 했는데 도착하기 이틀 전 메시지를 보내왔다. ‘호텔명, 예약자, 예약번호’를 알려주며 ‘결재완료 및 환불불가’하다는 단서를 붙였다. 도착한 날 저녁메뉴, 다음날 아침메뉴, 관광지, 점심메뉴도 보내왔다. 저녁식사장소는 예약했단다. 처음부터 호텔에 재울 생각이었으며 호텔비를 내주기 위한 작전이었다.

 조율을 담당한 로스팅사부에게 이야기했다. ‘이러면 반칙이지. 다음에 내려오지 말라는 이야기 아니냐?’ 로스팅사부는 도착해서 정하겠다며 저녁식사 예약을 취소시켰다. 로스팅사부는 전국의 맛집을 두루 알고 있으며 양양과 속초를 자주 가기에 분명 복안이 있을 것이다.


설악항 회센터 21호 재진이네

 양양친구가 예약한 음식점은 호텔 앞에 위치해 있는 전형적인 관광객상대 횟집이다. 킹크랩정식, 대게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집으로 손님 접대용 식당이지 苦樂(고락)을 같이했던 친구들이 가는 집은 아니다. 그리고 양양까지 내려와 서울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난센스다. 양양친구의 예약을 취소했다. 호텔예약에 대한 반격이었다.

 로스팅사부 단골집이 있는 설악항 회센터 21호 재진이네를 찾았다. 주문한 고랑치, 가숭어, 청어, 오징어를 썰어왔다. 소위 말하는 쓰끼다시는 없으며 오로지 자연산 회로 승부한다. 회를 모두 먹어갈 때쯤 가자미튀김을 내왔다. 호텔 근처 대포항에는 튀김전문집이 몰려있는데 튀김전문집보다 좋은 맛이다.

 친구가 재진이네를 단골집으로 삼은 이유는 회도 맛있지만 부부가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였단다. 재진호 선장인 남편분의 투박한 손과 태도에서 삶을 대하는 성실함과 진솔함이 느껴진다. 장사가 잘되어 돈을 많이 벌어도 초심을 잃을 손은 아니다. 나도 투박하고 거친 손에 한표 주기로 했다. (재진이네 이야기는 별도로 쓸 예정이다.) 


물범이 안타깝게도 

 로스팅사부도 잠자리가 바뀌면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게다가 경추베개도 가져오지 못했다. 뒤척거리며 쪽잠을 자다 4시경 로스팅사부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동이 트기를 기다려 혼자 나왔다. 호텔옆 방파제 끝에 빨간 등대에서 일출을 보고 싶었다. 오늘은 날이 흐려 일출도 설악산도 잘 보이지 않는 날이다. 구름사이로 멀리 울산바위가 조금 보일뿐이다.

 등대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길, 아직 시간이 일러 건너편 어판장에 가보기로 했다. 마침 어선들이 들어오고 있어 구경거리가 있을듯했다. 어선 위에는 여러 개의 커다란 함지박과 수조 안에 방어, 대구, 가자미, 복어, 오징어들이 가득하다. 중매인들이 배 위에 올라가 경매에 참여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경매광경을 뒤로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바다 위를 보니 누워있는 물범이 꼼짝 않고 떠있다. 아쉽게도 움직임이 없어 속초 해경에 발견위치와 사진을 보내줬다. 20분 후 경찰이 출동하여 물범을 수거했다며 연락했다. 독도나 울릉도에서나 볼 수 있다는 물범이 연안 어딘가에 서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감나무식당

 저녁메뉴 선택권을 강제로 빼앗았기에 아침메뉴 선택권을 양양친구에게 양보했다. 감나무식당은 주차장이 넓지만 대기줄이 긴 만큼 주차장 사정이 여의치 않다. 100미터 정도 위에 위치한 평생교육원에 주차하고 걸었다. 서울과는 아침공기 맛이 달라 양양친구가 새삼 부러워졌다. 

 송이버섯을 넣은 황태국밥도 있지만 손님 대부분이 황태국밥을 시킨다. 레시피는 복잡하지 않을 것 같다. 들기름에 황태채를 볶고 뚝배기에 콩나물과 밥을 넣고 같이 끓여 나온다. 밥이 조금 풀어져 국물이 걸쭉하다. 술 먹은 다음날 속을 달래주는 기가 막힌 해장국이다. 술을 끊었기에 풀거나 달래줄 속이 없지만 편안하고 시원하다. 당귀무침 등 반찬도 깔끔하니 줄 서는 이유가 있는 집이다.


휴휴암

 휴일 맞은 휴휴암주차장이 붐빈다. 이렇게 유명했나 싶다. 포대화상 닮은 돌부처의 배와 가슴이 반짝반짝 윤이 난다. 로스팅사부는 치밀하게도 미리 천 원짜리를 준비했다. 모두 시주하고 배와 가슴에 윤기를 더했다. 하지만 내 소원은 들어주지 않을 듯하다. 가슴을 만지는데 니플이 너무 도드라져 외설스럽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괘씸죄에 걸렸을 거다. 

 바닷가 너럭바위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멀리서 보니 황어 떼가 몰려있고 사람들이 사료를 던져주고 있다. 이제야 생각났다. 휴휴암은 황어 떼가 몰리는 사찰로 방송에 나온 적이 있었다. 관광지나 음식점이나 매스컴의 위력은 어쩌지 못한다.

 예전 울진에 살 때, 황어는 맛이 없는 생선이라 잡으면 버린다고 했고 시장에서 황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는 버젓이 수족관내에 위치해 있다. 그새 맛있어졌는지?


낙산사

 낙산사가 화재로 소실된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범종터는 화재흔적을 그대로 보존해 두었다. 높은 강도를 자랑하는 화강암 주춧돌이 화재로 인해 剝離(박리)되고 부서져 화마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낙산사는 작지만 크다. 대웅전인 원통보전은 규모는 작지만 전체 사찰부지는 작은 편이 아니다.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671년에 창건했으니 역사나 유적은 깊고 크다. 해수관세음보살상을 지나 의상대에 올랐다. 의상대 주위 해송은 화마를 이긴 듯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의상대에서 해송사이로 보는 동해바다는 언제 봐도 시원하고 한 폭의 그림이다.

 이채로운 볼거리도 있다. 무산스님의 추상화가 독립건물에 전시되어 있다. 또한, 낙산사내에 개인에게 임대해 준 카페가 있으나 소송 중이라 한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으나 카페 앞에는 낙산사에서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쉼터가 있다. 원통보전 앞 정자에서도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니 카페 枯死(고사) 작전인지, 관광객에 대한 布施(포시가 아닌 보시라 읽는다)인지는 불명확하다. 속사정은 모르겠으나 관광객에게는 진귀한 볼거리다. 원통보전 앞 정자에서 따뜻한 율무차를 맛있게 마셨다.


실로암막국수 

 실로암막국수는 로스팅사부가 소개한 집이다. 1957년 개업했으니 역사 오랜 집이다. 예전 가게를 허물지 않고 옆으로 현대식 디자인의 건물을 신축해 막국수집이 아닌 카페 또는 레스토랑처럼 보인다. 친구가 선택한 메뉴는 비빔막국수로 같은 것을 시키는 것이 현명하다.

 60년 넘게 지켜온 내공이 막국수에 담겨 있다. 추가로 시킨 수육은 잡내 없이 부드럽게 삶았고 곁들여 나온 쪽파무침과 무말랭이 무침이 특색 있게 맛나다. 동치미국물에는 사이다가 들어가 발효된듯한 독특한 풍미가 있다. 다음에 기회 되면 백김치를 맛보란다. 

 로스팅사부가 내려온 맛난 커피가 아직 남았다. 예전가게 툇마루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서로 건강하자는 덕담을 나눈다. 양양친구도 한참을 고생해 체중이 10Kg이나 빠졌단다. 하지만 세월이 거꾸로 흐르는지 더욱 핸섬한 얼굴로 변했으니 다행이다. 


양양 오빵쇼

 오빵쇼는 프랑스 유학파가 빵을 구워낸다. 빵집 주인장 부친이 양양친구와 일을 같이 하지만 친구는 주인장에게 그런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 연줄로 빵을 할인받거나 덤을 얻는다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친구다. 어떻게 보면 세상을 너무 곧게 살아가는 것이고 요령을 모르고 살아가지만 친구만의 멋이자 장점이다.

 로스팅사부와 나는 플레인 깜빠뉴와 치아바타류를 좋아한다. 깜빠뉴를 한 개씩 집어 들었으나 크로와상 등 이것저것 넣어준다. 양양친구는 마지막까지 치밀하다. 아마도 이것까지 준비한 멘트였을 것이다. ‘사모님용입니다.’ 

 치밀하고 견고하게 짜인 계획은 이기기 어렵다. 반격할 멘트를 찾지 못하고 두 친구는 빵을 받아 들었다. 


 점심 먹고 출발하리라 생각했지만 벌써 오후 4시가 되었다. 


PS. 오빵쇼 깜빠뉴에 들어간 베리와 너트가 실하다. 크로와상은 취향이 아니라 맛을 평가하기 어려우나, 깜빠뉴를 먹은 다음날 속이 편한 것을 보면 깜빠뉴에는 질 좋은 효모를 사용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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