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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Jul 25. 2024

896. 삶이 피곤할 때 씹는 자연산 회

설악항 회센터 21호 재진이네

 양양친구가 저녁을 예약한 집은 킹크랩 정식, 대게 정식, 회 정식을 전문으로 전형적인 관광객상대 횟집이다. 손님 접대용 식당이지 고락을 같이했던 친구끼리 가는 집은 아니다.  양양친구가 예약한 식당을 취소하고 같이 내려간 로스팅 사부 단골집이 있는 설악항 회센터를 찾았다.

 나주에 근무할 때 손님이 홍어를 먹고 싶다 하면 관광객을 전문으로 상대하는 홍어전문점에 갔다. 건물도 근사하고 상차림도 눈을 사로잡으며 종업원의 친절한 설명이 뒤따르지만 정작 맛은 한 단계 떨어진다. 동료들과 먹으러 가는 곳은 현지인들이 드나드는 허름한 식당이다, 건물은 허름하고 설명이 없어도 맛은 제 맛이다.


 설악항 회센터 21호 재진이네는 인간미 넘치고 친절한 횟집이다. 선장의 손은 투박하고 고된 노동으로 손가락 마디가 굵다. 오랜 친구 만난 듯 손님을 반기는데 과장된 몸집과 연출된 표정이 아니다. 회센터를 운영하는 여사장님은 열심히 회를 썰고 손님을 안내한다.  

 전화로 주문한 고랑치, 가숭어, 청어, 오징어를 썰어왔다. 고랑치는 쫄깃한 맛을 자랑한다. 모든 부위가 광어지느러미같이 쫄깃질깃하다. 가숭어는 개숭어라고도 불리며 이 시기를 지나면 맛이 떨어지고 비린내가 나서 먹지 않는다. 청어는 제철이 아니지만 서울에서 맛보기 어려운 생선이라 한 마리를 썰었고 요즘 오징어가 잡히기 시작했다 하여 오징어도 한 마리 썰었다. 


 설악항 회센터는 20여 개 횟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조는 대동소이하다. 재진이네는 가게 안에 테이블 다섯 개, 밖에 여섯 개가 있다. 가게 밖 테이블은 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식탁의자 일체형 나무 테이블이다. 식탁 뒤로는 배가 정박해 있는 선착장으로 식탁 뒤 비닐천막을 걷으면 바다 뷰가 아니라 바다가 코에 닿을 정도로 가깝다. 손님을 모실 분위기는 아니고 오랜 친구들과 소주 한잔하기 좋은 분위기다. 

 소위 말하는 기본상차림은 없다시피 하며 오로지 회로 승부한다. 술 고픈 사람에게는 주문한 회가 나오기 전 서비스로 내준 바다향 머금은 멍게와 아삭한 오이가 기본안주다. 회가 나오기 전 테이블세팅은 손님 몫이다. 수저를 놓고 고추장과 간장을 덜어놓고 된장을 비벼야 한다. 회를 먹어본 사람들은 날렵한 맛을 내는 초장보다는 된장과 마늘 간 것과 참기름으로 버무린 구수한 양념장을 선호한다. 재진이네는 된장이 맛있어 회를 더욱 감칠맛 나게 만든다.

 회를 모두 먹어갈 때쯤 가자미구이를 내왔다. 미주구리라고 하는 기름가자미는 동해안에서만 잡힌다. 기름가자미 회맛은 뛰어나지 않지만 회무침으로 먹으면 맛있고 튀김도 맛나다. 속초 대포항에는 튀김전문집이 몰려있는데 튀김전문집보다 좋은 맛을 낸다. 기름가자미구이는 남자 사장님 작품이다.


 세 명이 배불리 먹은 자연산회 가격은 9만 원이다. 여주인은 8만 원짜리 회를 먹으면 충분하다 했지만 오징어 한 마리를 추가해 9만 원이 되었다. 환상적인 가격이다. 매운탕은 별도 전문점이 있어 주문하면 배달해 준다. 만원이며 공깃밥 천 원은 별도다. 米質(미질)이 좋고 칼칼한 매운탕 맛도 일품이다.

 로스팅 사부가 단골집으로 삼은 이유 중의 하나가 부부가 열심히 사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였단다. 남편분의 투박한 손에서 삶을 대하는 진솔함과 성실성이 느껴진다. 장사가 잘되어 돈을 많이 벌어도 초심을 잃을 손은 아니다. 투박하고 거친 손과 성심을 다하는 모습에 한 표를 주기로 했다.

 마침 양양에 놀러 온다는 친구가 있어 재진이네 집에 꼭 오라고 당부하며 명함을 보내줬다.

‘야, 여기 아는 집인데 횟값도 저렴하고 맛도 환상적이야. 회는 모두 자연산이고 복어, 오징어, 고랑치, 줄돔, 광어, 돌도다리도 있다. 어제 왔던 3명이 소개해줬다고 하면 잘해줄 거야.’ 


 그날 수족관에 있는 줄돔, 복어, 가자미, 돌가자미, 고랑치, 미역치 등 모든 물고기는 자연산이었다. 설악항 회센터 21호 재진이네는 투박하지만 친절하고 감칠맛 나게 자연산 회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허름한 것이 흠이기는 하나 친구나 가족같이 격이 없는 사이라면 나름 復古風(복고풍) 포장마차의 운치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설악항이 아직 이름이 나지 않은 탓인지 손님들은 대부분 단골들이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한번 오신 분들은 잊지 않고 찾아 주신다고 한다. 


 삶이 피곤하다고 느껴질 때 동해로 훌쩍 떠나 쫄깃한 회 한 점 씹으며 주인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면 덩달아 열심히 살게 될듯하다. 


PS 2024년 5월 말에 재진이네를 찾았었다. 6월 말에 아내와 설악산 가는 길에 다시 찾았다. 사장님은 오랜 친구 만나듯 반겨주었고 마디 굵은 손을 다시 잡았다. ‘회는 맛있는 것 알아서 썰어주세요’ 했더니 가자미를 종류별로 썰어 냈다. 쫄깃함과 고소함이 남다르고 쌈장은 여전히 맛있다. 며칠 전 판교에서 먹은 양식광어와 비교되는 맛이다. 또다시 기름가자미를 맛나게 구워주셨다.

 회를 먹으면 매운탕과 공깃밥은 국룰인데 도저히 먹지 못할 정도로 회를 먹었다. 접시에 깔린 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아도 천사채없이 접시에 담긴 회는 보기와 달리 많다. 

 넷째 주 화, 수요일은 정기휴무다.(10월 제외) 

 6월 말에 찾았을 때는 노천과 다름없는 야외식탁이라 파리 한 마리가 포기할 줄 모르고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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