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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Oct 10. 2024

929. 느리게 가는 속초

점봉산자락 한계령휴게소

 속초와 양양 등 동해안으로 여행을 자주 다니는 친구가 고속도로를 타고 속초에 가지 말고 중간에 국도를 타라고 알려줬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양양고속도로는 터널이 많아 운전하기 지루하다고 생각했었다. 터널 개수가 왕복 120개가 넘는다 하고 인제양양터널은 10,965미터로 국내최장이다. 터널을 지났다 싶으면 다시 터널이 등장하길 연속이다.

 내린천휴게소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31번 국도를 타고 인제 방향으로 진행하다 44번 국도를 타면 굽이굽이 산길이며 눈도 시원하다. 속초로 바로 들어가려면 미시령 쪽으로 가고 양양으로 가려면 한계령으로 가야 한다. 여행계획이 양양에서 속초로 올라가는 것이라 한계령휴게소로 향했다. 점봉산자락 한계령휴게소는 해발 920미터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휴게소로 운전자를 위한 휴게소가 아닌 등산객을 위한 휴게소다. 대청봉으로 가는 등산객들이 애용한다고 한다.

 양양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울진에서 영주 가는 불영계곡길 또는 태백에서 호산으로 넘어가는 길을 운전하듯 360도 턴을 해야 하는 곳이 많다.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니라 오고 가는 차량이 드물어 서행하거나 갓길에 세워 경치를 구경해도 민폐는 없다. 코스를 변경하니 운전하는 재미도 있고 눈도 시원하다. 단점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것이지만 백수는 남는 것이 시간이다. 50km, 1시간 30분 정도 더 소요되니 투자할 만하다.


 숙소를 속초항에 잡았지만 아침은 양양 감나무집 황태국밥을 먹기로 했다. 한계령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택했기에 늦은 아침이 되었다. 아침도 아니고 점심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임에도 여전히 손님이 많다.

 휴휴암을 거쳐 낙산사에 들렀다. 한 달 전에 같은 곳을 찾았기에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식사시간에 맞추기 위해 한 템포 늦췄고 아내에게 분당에 없는 풍경을 보여주기로 했다. 낙산사주차장에 몰려있는 상가마다 제비집이 있다. 한 달 전에는 집을 짓고 있었는데 둥지 안에는 새끼제비들이 가득하다. 

 제비가 박 씨를 물고 와 흥부가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전래동화 탓인지 인간과 제비는 매우 친숙하다. 낙산사주차장 수많은 상가 모두에 제비집이 지어져 있다. 주인들은 제비집받침을 만들어주고 제비를 보살펴 준다. 속초중앙시장에도 제비집이 많았다.  


 낙산사 의상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의상대 옆 해송이 없었다면 밋밋했을 텐데 해송이 그림을 살린다. 앞이 트인 홍련암에서 보는 바다보다 의상대에서 보는 바다가 운치 있다.

 설악항 ‘재진이네’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기에 저녁으로 감자 옹심이를 먹기로 한 계획이 취소되었다. 속초관광수산시장에서 간식을 구입해서 저녁식사를 대신하기로 했다. 속초항을 둘러보고 도착한 관광시장은 생각보다 붐비지 않았다. 유튜브에 난리 난 것처럼 줄을 길게 서지 않고 일부상점만 줄을 섰다. 

 옛날 맛은 아니지만 술빵을 보면 매번 집어 들게 된다. 일부 빵집은 매진되어 문을 닫았으니 제일 맛없는 빵집의 술빵을 삿을 가능성이 많다. 이번에도 추억의 맛은 아니었다. 요즘은 ‘새우아저씨’가 잘 나가는지 튀김집중에 줄을 선집은 ‘새우아저씨’ 정도다. 외국 젊은이들도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것을 보면 유튜브의 힘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관광시장 명물은 닭강정인데 우리 부부는 닭강정을 좋아하지 않는다. 주요 간식거리는 튀김류, 도넛, 뚱삼겹말이, 어묵 등으로 기름지고 튀긴 음식은 아내가 좋아하지 않는다. 덜렁덜렁 거리는 술빵 한 덩이만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오션뷰 숙소를 얻었으나 해가 정면으로 들어와 동트는 것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아침식사는 하얀 순두부를 먹었다. 순두부집이 몰려있어 웨이팅이 길면 다른 순두부집으로 가려했으나 손님이 많지 않았다. 비수기인가? 불경기 탓인가?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손쉽게 올랐다. 정상인 봉화대까지 걸어서 10분 정도 소요된다. 멀리 공룡능선도 보이고 울산바위, 동해안도 보인다. 설악산은 언제 봐도 멋있다. 어릴 적 광안리 바닷가를 지겹도록 보고자란 아내는 바위산을 좋아한다. 봉화대에 올라오니 발을 딛고 선 곳도 바위산이고 멀리 보이는 공룡능선부터 나한봉, 장군봉, 울산바위까지 모두 바위산이다. 태어나서 사진을 제일 많이 찍지 않았을까 싶다.


 점심으로 산채비빔밥을 먹으려다 날이 더워 속초 항아리물회를 찾았다. 다시 시내로 내려간 김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올 때 역순으로 가기로 했다. 한계령휴게소를 둘러 다시 한번 맑은 공기 마시며 아름다운 능선을 구경했다. 필례온천에 둘러 필례약수를 한 모금 하려 했으나 음용부적합 판정으로 마시지 못했다. 

 내린천휴게소까지 오는 동안 마주친 차량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휴가 절정기에는 모르겠으나 시간에 쫓기지 않는 분들은 고속도로보다 운전 재미가 있는 국도를 이용하는 것도 좋을듯하다. 다음에는 백담사가 있는 미시령으로 넘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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