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시원하고 마음까지 시원해진 것은 아이스아메리카노 덕분이 아니라
2024.05.23 남양주 조안면 수종사는 분당에서 40km 1시간 거리다. 지인에게 남양주 금선사가 뷰맛집이며 색다른 절이라 이야기했더니 수종사도 예쁘다며 소개해줬다. 귀에 익은 사찰이며 멀지 않기에 아내와 가보기로 했다.
45번 국도에서 수종사로 올라가는 길은 포장도로지만 상당히 가파르다. 국도에서 주차장까지 1.8km는 승용차로, 주차장에서 수종사까지는 500미터를 걸어 올라간다. 주차장까지 올라가는 도로가 가파르다. 초보 운전자들은 굴곡이 많고 가팔라 진땀깨나 흘릴듯하다. 올라가는 길은 나무 숲을 이루고 있어 맑고 더운 날이었으나 그리 덥게 느껴지지 않는다.
운길산자락 수종사에서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 바라보는 풍경이 장관이다.
등산 좋아하는 분은 운길산역에서 등산로 따라 3km 정도이니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좋을 듯하다.
규모가 아담한 수종사는 조계종 봉선사의 末寺(말사)라고 한다. 어쩐지 국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아담하고 말사에 지나지 않지만 수종사 기원과 역사는 규모보다 깊고 크며 이채롭다.
태조 왕건이 우물 속에서 범종을 발견해 水鍾寺라고 이름 지었다는 설화도 있고 세조와 얽힌 설화도 있다. 부스럼을 앓던 세조가 오대산 상원사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깨끗이 낫고 한강을 따라 환궁하는 도중 양수리에서 묵게 되었다. 갑자기 종소리가 들려 다음날 조사해 보니 운길산에 고찰의 유적이 있다 하여 가보았다. 바위굴속에 16 나한이 있었으며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암벽에 울려 종소리처럼 들린 것을 알게 되었다. 1459년 이곳에 돌계단을 쌓고 절을 지어 水鍾寺라 칭했다 한다.
하지만 대웅전 옆에 1439년 만든 태종 이방원의 딸 정의옹주 사리탑이 있어 역사는 더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차장에는 ‘운길산 수종사’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출입문이 있으나 大雄寶殿(대웅보전)으로 들어가는 진짜 출입문은 500미터를 걸어 올라가면 나타나는 解脫門(해탈문)이다. 출입문 명칭이 범상치 않다. 모든 번뇌를 문밖에 놓고 들어오라는 것인지 아니면 해탈문에 들어서는 순간 번뇌를 잊게 된다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경내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모든 것을 잊게 해 준다. 전자보다 후자의 해석이 맞는듯하다.
水鍾寺에는 水鍾이 있기에 범종이 없을 줄 알았으나 우람한 범종이 있다. 범종아래에는 1459년 수종사를 지을 때 심었다는 수령 500년이 넘은 거대 은행나무가 있다. 은행나무가 얼마나 큰지 나무 아래 여러 개의 벤치를 모두 그늘로 만들어준다. 벤치에 앉아 멀리 한강을 내려다보며 갖고 간 커피를 맛나게 마셨다. 눈이 시원하고 마음까지 시원해진 것은 아이스아메리카노 덕분이 아니라 解脫門을 지나 경내에 들어온 덕분일 것이다.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山靈閣(산령각)은 아마도 망자들의 위패를 보셔 놓은 곳인 듯하다. 계단을 오르려다 ‘참배객 이외 출입 금지’ 팻말을 보고 포기했다. 하지만 大衆(대중)을 따라 규칙을 위반하기로 했다. 올라가는 길은 고급스러운 작약향으로 가득하다.
산령각 앞에서 망자들을 위해 간단하게 기도를 올렸으므로 규칙위반에 대한 죄는 씻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올라온듯한 사람은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고 있다.
제일 높은 곳이니 뷰가 좋겠지만 그늘이 없어 더웠다. 은행나무아래에서 커피 마시며 내려다본 두물머리 경치가 으뜸인 것 같았다.
출발 전 검색한 주변 맛집은 주로 장어, 소고기집으로 굳이 남양주까지 가서 먹을 음식은 아니다. 또한 순두부집은 얼마 전 방문했으므로 패스하기로 했다. 집으로 오는 길, 두물머리에 위치한 ‘평창 장국밥’에서 아내는 장터국밥을, 나는 연근비빔밥을 주문했다.
장터국밥은 대파를 큼지막하게 썰어놓고 양지머리를 넣었다. 선지와 내장, 고기, 대파를 넣고 뻘겋게 끓여내는 옛날 장터국밥을 연상했으나 비주얼이 조금 다르다. 대파를 많이 넣어서인지 맛이 시원했다. 연근비빔밥에는 데친 연근이 들어가 있어 아삭하게 씹히는 식감이 좋았다.
싱겁게 먹기에 외식을 가려서 하고 가능하면 염분을 조절할 수 있는 메뉴를 정한다. 열무무침, 깍두기, 배추김치 반찬은 단출하지만 간은 그리 세지 않고 맛나다. 연근비빔밥에 따라 나온 황태국물도 진하고 개운하다. 혹시 다음에 방문한다면 황태해장국을 맛보려 한다.